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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믿음의 시련을 겪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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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의 시련을 겪는 아브라함

본문 : 창세기 12장 10절 ~ 13장 4절

설교 : 백의흠 목사 (엘림교회)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난하고 남편을 잃은 어떤 분이 자기 친구에게 예수 믿드라고 전도를 합니다.

"예수 믿어라. 예수 믿으니까 이렇게 좋더라" 말나니까 그 친구라는 분이 하는 말이 "그렇게 좋은데 왜 너는 가난하고 남편이 죽었냐?"리거 반문해서 더 이상 전도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고민입니다.

"에수 믿고 교회 나가면 내가 복을 받고 내 삶이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시작했는데 예수 믿어도 내 생활이 더 나아진 것도 없고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더 어려움만 당해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일까?" "정말 이 신앙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하는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한 그 차제가 후회 스럽고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신앙 생활을 안할 걸!"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에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 나오고 예수 믿었다고 해서 항상 내가 복 받고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고 내려 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 땅이 어느 땅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지시한 약속의 땅, 그 곳에 가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너로 복의 근원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기 싫었지만 그래도 억지고 "내가 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기대를 가지고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가나안 땅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 들어오면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곳에 들어와서 먼저 제단을 쌓고 감격의 예배를 드렸는데 때 이런 기근이 찾아와서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게 하며 인도한 땅이 고잘 기든에 뒤덮힌 궁핍과 기갈의 땅이란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당연히 풍년이 있어야만 합니다.

기근과 흉년이 없고 기름지고 풍성한 열매로만 가득한 옥토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었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시 그 약속의 땅을 버리고 육신의 삶을 위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이라고 해서 고통이 없고 나쁜 일이 없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고 예수 믿었다고 해서 하나님은 "너에게는 어려움이 없고 항상 기쁘고 좋은 일만 있다"라고 ㅁ라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기근과 같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과 삶을 단련시키고 성숙시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예수 믿고나서도 내 삶의 축복이 없고 오히려 어려움이 닥치면 이것저것을 곰곰히 생각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을 과감이 포기하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 갑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을 더욱 더 자라게 하기 위해서 주신 시련인데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보다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디 있는가?" "내가 어떻게 하면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하면서 자기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피해 애굽을 향해 우리의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신앙을 버리고 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세상으로 간다고 해서 내 앞길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서 실패하면 생활에서도 실패합니다.

영적인 삶에 실패하면 육적인 삶도 실패합니다.


11-13절올 보세요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롤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를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내는 나를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면 이제 모든 일이 잘 되고 풍부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더한 어려움에 빠집니다.

아브라의 아내 사래가 잘 생긴 여인이었기 때문에 애굽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어 버릴찌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에게 치사한 부탁을 합니다.

"여보! 누가 당신과 나의 관계를 묻거든 내 누이라고 대답을 하시오"

얼마나 한심스럽고 형편없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까?


이러한 어려움에 부갇쳤을 때 오히려 아브라함은 "내 삶에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런 어려움이 생길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한 것인가?"라는 진지한 신앙적인 물음을 물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는 신앙적인 반성을 전혀하지 않고 기발하고 치시한 아이디어로 자기의 살 길을 찾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치사하게 살고자 하는 본능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굴해 지기도 하고 때로는 남을 무참히 짓밟기도 합니다.

또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분이나 신분과는 전혀 상관없이 몸부림치고 발버둥 칩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남편이란 자가 자기 아내를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목숨이 아까와서 아내에게 누이라고 거짓말을 랑요하다니 그래서 자기 아내를 남에게 내어 주다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정말 '아더매치 남편'입니다'

여러분, 아더매치가 뭔줄 아세요.

아는 아니꼽고, 더는 더럽고, 메는 메시꼽고, 치는 치사합니다.

정말 아브라함은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꼽고 치사한 졸장부의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감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고 이런 쫀쫀한 방법을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고 위기를 만나면 아브라함과 똑 같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면 "내 신앙이고 뭐고, 하나님이 뭐고"  다 때려 치고 신앙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내가 위기에 몰리게 되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다 집어치고 나도 속인이 되어 똑같이 거짓말하고 똑같이 남을 속이고 똑같이 욕하고 싸웁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하나님은 전혀 생각치도 않고 나의 술수와 계획과 방법으로 모든 일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얕은 술수와 형편없는 모습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욕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더라고 아브라함의 형편없는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습니다.

18,19절,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띠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띠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위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잘못하면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먹고 하나님의 영광이 먹칠을 당합니다.

나의 형편없는 모습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합니다.

'작은 예수'인 나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이 욕봅니다.

그리스도인인 나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럽혀 집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립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나를 불신하고 욕할 때 내가 욕먹는 것 때문에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까지도 귀를 막고 듣지 않습니다.

나를 불신한다고 내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구원의 말씀까지도 불신하고 거절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못하면 불신자들로 부터 큰 망신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요나 때문에 배가 큰 풍랑을 만났고 배에 탔던 불신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요나를 향하여 "네가 아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면서 요나를 꾸짖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도덕적인 면이나 모든 생활에서 자기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과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이 뭐 저런가?"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다워야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빌려 주었더니 그만 속았어요;'

"교회 다닌다고 해도 다 마찬가지예요" 

심지어는 "교인들이 더 해요"라는 말들을 자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도덕한 행실과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에 침이 투기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는 사건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욕을 먹고 더렵혀 지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자주 죄를 범하므로 예수님을 슬프게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날마다 깊이 기도하면서 신령하게 하나님과 교재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 한번 보고 싶어! 예수님을 좀 저에게 나타나서 한마디만 말씀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루 밤에 기도하는 중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얼마나 좋고 놀랐겠습니까?

너무 기뻐허 가까이 가서 주님을 바라보니 옛날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처럼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두 발에는 여전히 못 박힌 그대로 아직도 손과 발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가슴에다 손을 대신 채로 점점 가까이 오시더니 앞가슴을 펼쳐 보이시는데 주님의 가슴에는 못들이 박혀 있는데 하나 둘이 아니라 크고 작은 수다한 못들이 총총히 박혀 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나는 주님께서 양손과 양발에만 못에 박힌 줄 알았는데 주님의 심장에 박힌 못은 어이 된 못입니까?" 울면서 물어 보았더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냐, 내 사랑하는 종아. 나의 양손, 양발에다 박은 못은 나를 믿지 않는 자들이 박은 못이지만 내 심장에 박힌 이 무수한 못들은 너희 믿는 자들이 박아 준 못들이니라"

이 말을 듣고 "오 주여! 이 못된 자식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또 다시 못 박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심장에 대못을 갖다가 꽝꽝 박고 또 조그마한 바늘 못을 갖다가 꼭꼭 찔러서 박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손과 발에 한번 못 박은 것으로 족합니다.

더 이상 박지 마십시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다 못 박아 버렸는데 또 죄를 지면 자꾸 자꾸 예수님의 가슴에 못 박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나의 못된 행실 때문에 자꾸 예수님의 이름이 먹칠되고 예수님의 가슴에 또 못을 박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비열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 답지 않는 행동으로 이방 사람인 불신자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그런데 우리가 계속 성경을 살펴보면 아주 이상하고 생각 밖의 일이 발생합니다.

지금 이 사건 속에서 누가 잘못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누구에게 회초리를 대시겠습니까?   당연히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이 회초리가 아브라함에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누가 터집니까?  애굽왕 바로입니다.

바로왕은 그 시대의 전 세계 문명의 최고의 통치자입니다.

그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하나 뺏은 것 때문에 밤새 터집니다.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났는 지 "다 데리고 가라"고 하고 금은 보화까지 줍니다.

바로는 "아브라함아!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터졌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누가 가장 놀랍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바로가 이렇게 터진단 말인가?"

거기서 비로서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의 첫 눈을 뜨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었구나"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기 아내 앞에서 못된 일을 했고 죄악된 세상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아혀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못되고 죄를 짓고 빤질거려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을 안 듣고 못되게 굴어도 아픔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때로는 나를 때리면서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 옵니다.

그리고 그가 가나안 땅에 돌아 와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13장 3,4절,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매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불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오자마다 그는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애굽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아내를 건지신 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하나님이시고 나의 모든 개인의 삶을 간섭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시지는 않지만 역사 속에서 살아 계셔서 나를 반드시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잘못된 것을 반드시 고치게 만드시되 그러나 때로는 징계보다도 더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며 회개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마치 돌아 온 탕자의 모습과 똑 같습니다.

재산을 다 날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거지꼴이 되어 돌아 온 아들을 만약 여러분이 아버지라면 어떻게 맞아 주시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안 듣고 고집 부리고 나가더니 그 꼴이 뭔냐? 네가 집에 들어 오려면 네 행실을 다 고쳐야 한다. 

네 잘못을 다 회개했느냐?"

이렇게 야단치고 따진 다음에 받아 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집을 향해서 오는 아드을 아버지가 먼저 발견하고 나가서 품에 안고 아무 조건없이 맞이 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좋은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입니다.

허랑방탕하다가 돌아 온 아들을 조건없이 맞으시는 아버지 앞에서 이 아들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미안하고 죽을 지경이고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기가 민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마음 속에는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이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각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는군요, 저도 별수없이 어려운 위기속에서도 거짓말하고 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아내까지도 밟아 버린 추악한 죄인이고 별수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의 이 무능함과 나의 죄악 때문에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 가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귀한 것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통 때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를 잊고 삽니다.

그러나 위기를 당할 때 연약하고 무력하고 부패한 자기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아브라함도 다시 제단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고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 이제는 제 마음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제 중심에 모시고 살겠습니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삶을 살리고 작정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세요.

가나안 땅에 찾아 왔던 이 기근은 아브라함에게는 비록 어려웠지만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비록 실패했지만 그는 이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라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기근은 닥쳐 옵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어려움을 닥쳐 옵니다.

이 때마다 우리는 "내 삶에 다가오는 이 기근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가?'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기근속에서 실패하지 마시고 오히려 나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손길을 발견하세요.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 보세요.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의로 많이 보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고 일어나서 이 기근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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