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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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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라함

본문 : 창세기 12장 4-9절

설교 : 백의흠 목사 (엘림교회)


몇 주 전에 제가 안 권사님을 라이드하러 필라델피아 노인 아파트에 갔습니다.

그런데 항상 제가 오는 시간보다 일찍 나오셔서 저를 기다리시는 권사님이 안 나오셔서 제가 5분을 기다리다가 권사님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아파트 11층에 가니 권사님이 교회에 가시려고 아파트를 나왔는데 마침 당이 떨어지셔서 휄체어를 끌고 아파트 복도를 힘없이 방황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부축하여 아파트의 침대에 앉히고 물을 갖다 드리니 조금 정신이 드시는데 권사님의 첫마디가 “교회에 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이 떨어져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교회를 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에게 “권사님, 오늘은 여기서 저와 같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죠”라고 하면서 찬송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제가 가려고 하니까 권사님이 “오늘은 주일이니까 내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께 “지금 여기서 예배를 드렸으니까 권사님 오늘은 쉬세요”라고 말하니까, 권사님이 일어서려다가 힘이 없어 그냥 앉더니 “목사님, 오늘은 교회에 못 가겠네요”라고 말을 하십니다.

87세난 권사님, 항상 아프신 몸을 이끄시고 예배에 꼭 참석하십니다.

일년 12달, 52주, 몸이 아파도 예배에 안 빠집니다.

우리 교인 전체가 멀리 갈 때, 같이 가실 수 없으니까 일년에 한번 정도를 빼놓고, 그 때는 근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시며 주일 예배를 꼭 참석하십니다.

권사님에게는 예배가 생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하고 잘 한 것을 꼽는다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제 삶의 일부였고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을 빼놓고는 제 일생을 말 할 수 없습니다.

믿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는 저의 삶의 전부였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밥 먹는 것만큼 중요한 삶이었습니다.

매일 아침에 가정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우리 어머님의 신앙이 저희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제가 주일 예배를 거른 적이 한번 밖에 없습니다.

다섯살 때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이사와서 6살 때 노량진 이모댁에 가서 주일날 예배를 빼먹었습니다.

그 때 내가 교회를 간다고 얼마나 떼를 쓰고 울었는 지 모릅니다.

이모와 사촌들을 전부 전도관에 가고 나 혼자 이모 집에 남아서 교회를 못갔다고 울었습니다.

그 후에 군대에 가서도, 어디 있던 지, 주일날 예배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군생활 중에 훈련 나가 예배를 못 드리면 혼자 산 속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예배는 가장 중요한 신앙과 삶의 요소입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옵니다.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포악하고 우상을 섬기는 음란한 가나안 사람들이 우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환영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을 이끌고 정착지를 찾아 헤매어야 했습니다.

5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갔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이 아니라 어렵게 순종하면서 갔고, 가나안 땅까지 가는 길도 어렵고 힘들게 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큰 기대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갔지만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고 오히려 낯선 이방인이 왔다고 냉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형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따라 살아도 우리에게는 시련과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고 우리에게 탄탄대로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순종하며 갔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아직 정착할 곳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기고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세상 바라보지 않고 세상이 주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서 어려움이 오면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한 순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봅니다.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본을 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믿음은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이다.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의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을 좇아 순종하는 순간부터 믿음이 생깁니다.

내 믿음이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면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믿음이 자랍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다보면 내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만큼 큽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기부터 그의 믿음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히브리 가자는 그의 순종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어디로 갈 바를 알 지 못하고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매 순종하고 그냥 갔습니다.

가는 목표가 정해져 있으면 가기가 좀 쉽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도 모르고 가면 힘듭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나, 일할 할 때도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향해 참으면서 나갑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으면 참 힘듭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 안 해야 하나?” 하면서 회의가 생기고 방황합니다.

그런데, 목표도 없이, 가는 곳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단지 가라고 했으니까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삶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야 합니다.

교회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사람을 좇아 다니면 나중에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망과 상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만 합니다.

그 외의 것은 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내  옆에 좋은 사람이 있다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옆에 신앙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내가 저절로 신앙이 좋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가 그 영향을 받아 내 신앙도 좋아 질 가능성이 있읍니다만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는 그 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중도에 좋은 땅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쉼없이 계속 달려야만 합니다.

도중에 포기하거나 하차하면 안 됩니다.

목적지에 도달 할 때까지 계속해서 가야합니다.

목적지까지 가기 까지는 힘들일이 많습니다.

유혹과 고통도 많습니다.

그래도 모든 유혹을 이기고 그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면서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중도에서 하차했었지만 다시 시작했습니다.

도중 하차했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에는 늦는 것이 없습니다.

다시 시작하는데에는 늦은 나이가 없습니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용기이고 믿음이고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나그네 길에는 힘들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나의 목표지인 저 천성까지 가는 길에는 많은 유혹도, 많은 고통도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좌절을 맛보고 포기하고 픈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고통의 길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그 길을 계속해서 가야만 합니다.

그 앞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장래 기업으로 받을 축복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이다.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하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여기서 “단”은 “제단”을 말합니다

제단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짐승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곳이 제단입니다.

짐승의 피를 흘려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예표합니다.

제단은 희생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헌신이 있는 희생입니다.

제단을 쌓은 것은 오늘날의 예배를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은 것,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를 먼저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 이땅은 네 땅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인하여 단을 쌍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고 교회 일에는 열심을 내는데 예배는 등한시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회의에 빠집니다.

참된 예배 없이 사역을 하면 탈진도 되고 시험에도 빠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열심을 내었느냐?가 믿음의 척도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배의 근본 정신은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위해 예배 드릴 때 상상할 수 없는 복으로 응답하십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예배를 때워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해치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해치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 안 드리면 찜찜하니까, 

예배를 드리고 할 일이 많으니까, 빨리 예배를 해치우고 내가 할 일들을 하고,

즐기고, 놀러 갈 곳에 가고.


예배는 우리 신자의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분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그 변화된 삶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배 드리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민족과 국가가 복을 받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았습니까?

미국의 초기에는 예배가 우선시 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초기 청교도인들이 메이 플라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 땅에 와서 교회부터 지었습니다.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그 다음에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드리고 다른 것에 우선해서 예배를 먼저 드리겠다는 정신입니다.

굶어 죽어도, 추워 죽어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먼저 하겠다는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이 어떻습니까?

주일 아침에 보면 park 마다 운동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찹니다.

mall마다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찹니다.

주일날이 장사 제일 잘 되는 날입니다.

이제 정기적으로 주일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10%대 입니다.

미국이 점점 어려워 지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예배 드리는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6.25 이후에 한국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북에서 피난  온 성도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회를 짓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자기들은 셋집에 살면서도 교회는 잘 짓었습니다.

자기들은 굶어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열심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도 성장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고 거의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배 중심으로 사는 사람, 예배 제일 주일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저는 지금도 인천 화랑 교회에서 홍근섭  목사님의 간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이 제가 중학교 때 우리 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 하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 하나하나가 마치 불이 되어 저의 가슴에 와 닿는데 일주일동안 그 설교를 들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혀 무수한 고문을 받았는데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불에 달군 인두로 자기 손 등을 짓어 혈관이 터져 피가 쏫구치니까 고문을 끄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목사님은 밤새도록 그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공산당원들이 홍목사님이 죽은 줄 알고 시체를 말을 가마니를 가지고 왔다가 홍목사님이 살아 있고 손이 나은 것을 보고 놀라 누가 그랬냐고 물었니, 홍목사님이 ‘하나님이 고챠 주셨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공산당들이 할수 없이 홍목사님을 풀어 주면서 예수 미친쟁이라는 글으 써서 등에다 붙여 주었습니다.

홍목사님이 북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몇 몇의 교인들과 남하를 하다가 주일 날이 되어 산 속에서 예배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피난민들은 갈 길이 바쁘다고 빨리 가자고 하면서 먼저 떠났습니다.

홍목사님의 일행은 주일 아침에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조금 쉬면서 오후에 떠났는데 가다 보니 예배를 드리지 않고 먼저 떠난 사람들이 공산당의 습격을 받아 다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제일 주일, 예배 중심 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필요한 복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면 긍휼하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 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께 단을 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위해 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하여”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집을 위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자기 명예를 위해 단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복 받을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찾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도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 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이다.

8절,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성경에 나타난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상의 이름을 부르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우상을 찾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장난으로  혹은 망령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 ! 맙소사!”

‘God.  Damn”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부른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시며, 전능하신 구원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누구입니까?

우주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세상의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나를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십니까?


아무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창조자로, 유일신으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 주시는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엘로힘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야 훼) – 약속의 하나님 !

여호와 이레 하나님-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쉬- 우리의 깃발이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바- 상황과 현실속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살롬- 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 –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때를 인도하는 목자이신 하나님

여호와 체바오트- 달려 오시는 하나님.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하나님은 나를 홀로 들판에 두시지 않으시고 내 곂네 계셔서 나를 붙드시고 나를 간섭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

얼마나 놀라운신 하나님이십니까?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아무도 나를 도와 주는 것 같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내 입에서 “하나님!” “주님!” “예수님!’이라는 단어가 끊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구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시기 바랍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항상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시고 낚아채서 새로운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때로는 우리의 걸음을 낚어채서 완강한 고집을 꺽고, 교만을 꺽고,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들을 꺽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빨리 변하지 않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빨리 이룩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자기가 설득되지 않으면 절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실컷 조언을 해 주어도 대부문은 자기 생각대로 해 버립니다.

이만큼 고집이 쎈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십년에 걸쳐서 우리를 설득하시고 이끄시며 때로는 사랑의 매를 치시면서 조금씩 믿음의 자리로 이끌고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다루실 때 거역하지 마시고 순종하면서 따르세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복을 나누어 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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