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우리는 복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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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는 복의 근원
본문 : 창세기 12장 1-5절
설교 : 백의흠 목사 (엘림교회)
사람이 일평생을 살면서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싶고, 무엇을 받고 싶읍니까?
복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복을 받고 싶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복을 좋아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저에도, 장농에도, 베개에도, 집에도 복이라는 복 福자를 많이 새겨 놓았습니다
복 받기 싫은 사람 있습니까?
저도 복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 왜 믿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 가시고 나를 구원해 주셔서 그 감격과 기쁨 때문에 예수 믿습니까?
맞는 말입니다만 사실 우리는 복 받기 위해 예수 믿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아 천국 가는 복을 받기 위해 예수 믿습니다.
복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너무 “복 받으라”를 강조하니까 복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고 말하니까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에 대한 부정적인 많은 말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복은 좋은 것입니다.
영적인 복이든, 육신적인 복이든 복은 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인, 물질적인 복만 강조하다 보니, 복을 유치하게 생각하고 복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수준 낮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만 복은 좋은 것입니다.
복은 유치하고 값싼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육신적인 복, 물질적인 복만을 강조하고 여기에 치우쳐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해야 하고 그 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고생시키고, 나를 부려 먹고, 써 먹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복된 사람을 주시기 위해서 나를 부르신 것이빈다.
단순히 우리를 향해 “예수 잘 믿으라” ‘하나님 잘 섬기라”라고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동시에 축복의 약속도 하십니다.
이런 약속들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일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제안하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은총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절대적인 약속이며 은총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입니다.
허물많고 죄 많은 나를,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감동을 주셔서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시고 천국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는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내가 잘나고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가 하나님께서 무조건 나를 사랑하시고 무조건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도 아브라함이 달라고 기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얼마나 큽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바로 이렇습니다.
너무나 큽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기만 하면 이 약속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믿음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의 나이 75세입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65세입니다.
그런데도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고 이 약속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12 아들을 낳고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얼마나 큰 민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그와 개인적으로만 맺은 약속이 아닙니다.
그를 통해 그의 후손과 그 민족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개인과 약속을 맺은 것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그의 후손과도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해 죄가 모든 인류에게 온 것 같이 이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그의 후손과 모든 민족에게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그와 개인적으로만 맺은 약속이 아닙니다.
그를 통해 그의 후손과 그 민족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개인과 약속을 맺은 것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그의 후손과도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해 죄가 모든 인류에게 온 것 같이 이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그의 후손과 모든 민족에게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민족을 이루는 축복을 우리도 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큰 민족을 이루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는 이제 영적인 큰 민족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저는 한국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한국이 예수 믿을 조건이 별로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절반이상이 예수를 믿습니다.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이고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일본은 전체 인구에 기독교인이 0.5% 밖에 안 된니다.
그러나 한국은 1/4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이 먼저 들어 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오고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열매가 잘 맺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더 큰 민족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한 가정에 한명이 예수를 믿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그 한 명이 가족 전체를 예수 믿게 만듭니다.
예수 믿는 한 사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큰 민족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은 나 혼자 예수 믿다가 천국 가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축복해 주신 것은 그 축복을 나만 누리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구원의 축복을 같이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큰 민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큰 민족을 이룬다 할지라고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민족은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가 중세기에 기독교가 타락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 되었을 때 거대한 로마 제국은 분열되고 결국에는 이교도에 의해 멸망 되었습니다.
미국이 청교도의 신앙으로 건립되었을 때 하나님은 미국을 축복해 주셨는데 지금 미국 전반에 걸쳐 타락하면서 신앙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미국도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브라함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룬 것처럼 나를 통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큰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네 이름을 창대케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네게 복을 주어”
하나님께서 너를 꼭 축복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단지 복을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복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복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복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복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이 갖는 것은 저주와 아픔입니다.
세상이 죄와 저주와 죽음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주와 죽음이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벌을 주거나 고생을 시키기 위해서, 나를 부려 먹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축복을 주시고 그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나는 그저 시시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고생만 실컷 하다가 가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복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덩어리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도 복덩어리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복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저주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남에게 복 덩어리가 되어야지 근심 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복덩어리가 되었으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복덩어리가 되어야만 합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네 이름을 크게 만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널려 알려 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빛나게 하시고 명성을 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무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알아 주는 사람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창대케 되어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만큼 알려 진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 주요 종교인 기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는 아브라함을 전부 자기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떠 받들고 있습니다.
사람을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아 지려고 하는 하는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이 존경 받고 알려 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름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은 “백의흠” 혹은 “백목사’입니까?
우리의 이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름은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이름입니다.
내가 단순히 “백목사”로서 알려 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진정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내 이름이 창대해 지기를 원합니다.
“저 사람 그리스도인이라지!”
“예수 믿는 저 사람 정말 멋 있어. 우리가 본 받을 만해” “저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믿을 만해!”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이름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만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복들, 부, 권력, 명예, 건강, 장수 다 가져도 진정한 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복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복들을 못 가졌어도 예수 한 분만 가지면 복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의 야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입에서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이 흘러 나오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셔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소유하시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더욱 창대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아무개를 칭찬하며 위대하게 생각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 너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 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복이 되라고 명하시면 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애쓰고 노력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을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십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그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
어떤 사람은 주위의 사람에게 화를 나누어 주는데, 나는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복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영적인 복, 육신의 복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영적인 복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실지로 그 복이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가 구원을 얻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가 복이 되어 그의 가족까지도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어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위대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확실합니다.
그 약속은 그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 이루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쏟아 져야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나에게 고통일 수 있습니다.
손해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남는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얼마나 신납니까?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복을 받게 해 주세요.”
“내가 복을 받고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나의 자녀들도 일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남에게도 축복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손해 보는 것 같고, 나에게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나의 결국을 어떻게 하십니까?
엄청난 선언을 하십니다.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고 나를 저주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보호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그 댓가로 얻어진 귀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들입니까?
저는 이것을 생각하면 담대합니다.
제가 때로는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합니다. 고통도 겪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나에게 한 그대로 그 사람에게 갚아 주셨습니다.
저를 도와 주고 저에게 복되게 한 사람들은 다 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힘들게 하고 손해 끼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그대로 갚아 주셨습니다.
제가 심판하거나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니까요.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런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왜 복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 지는 증거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그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 사람이 고마워서 그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으로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시고 다 갚아 주셨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다윗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다윗이 친히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만 하소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저도 하나님께만 하소연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원수를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고 그 사람에게는 원수를 갚는 일입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덥하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회개 시켜 주시던지, 아니면 벌을 주시던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런 훈련을 시키나 보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요새 큰 교회의 목사님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의 목사님들은 고생을 합니다.
생활을 걱정하고 자녀 교육을 걱정합니다.
무척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그의 자녀들은 대부분 다 잘됩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목사님들의 자녀들은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합니다.
목사님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님 위해 헌신하며 많은 고생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자손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과 축복이 오늘 나에게도 이루어 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오늘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 그 약속대로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이런 축복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귀를 기울이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축복해 주시기 원하고 그런 약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 원하십니다.
내가 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어 나를 통해 주위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받고, 우리의 자손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받았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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