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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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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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본문: 창세기 39장 19-23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저는 역사를 아주 좋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역사에 관한 책들을 아주 많이 읽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이와 반면에 나쁜 사람들도 많고 특별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선 시대 때 모함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자기 뿐만 아니라 일가족이 몰살 당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최근의 한국 역사 가운데도 1975년도에 일어난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죄가 없는 데도 간첩으로 몰아 사형 선고를 내리고

그 다음 날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혹은 내가 죄를 범해서 그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혀 잘못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모함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벌을 받을 때는 억울합니다.


고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해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고난은 견딜만 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견뎌 내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모함이나 오해를 받아 고난을 겪게 될 때 우리는 곤혹스러워 하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 바로 그랬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옷을 붙잡고 동침을 요구하여 옷까지 벗어 던지고 도망 나왔는데 주인의 아내가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남편에게 고합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요셉을 감옥에 가둡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적반하장입니다.

요셉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말씀 지키며 의롭게 살았습니다.

죄를 거부하고 시험을 이긴 그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보상은 고사하고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감옥이었습니다.

단 한번 마음조차 먹어 보지도 않았던 일을 했다고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통곡할 일입니까?

피가 꺼꾸러 흐르는 것 같은 심정일겁니다.

더구나 요셉은 노예로 끌려 와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이제는 살만해 졌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자기를 믿었던 주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자기가 가진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항거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실망했을 것입니다. 아니라고 변명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고난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고 소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공적인 감옥 생활을 합니다.

결국 요셉은 자신을 감옥에 가도록 만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일을 통해서 선한 역사를 만드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요셉은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아버지도 못 만나고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가진 사람을 그것을 이룰 때까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이 온다고 하더라도 꿈이 있고 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여기서 완전히 자빠지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 납니다.

내가 지금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억울한 일이 일어낫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역전시켜서 그 사람에게 축복이 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형통한 사람이고 감옥에서라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요셉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 보면서 때로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혹시 우리의 삶이 감옥과 같이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고 좌절하지 말고 여기에서도 성공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19절,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정욕에 눈이 어두웠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거절을 당한 후에 그녀의 사랑은 미움과 분노와 보복으로 바뀌고 맙니다.

여인은 자신의 계획이 무산되고 자존심이 상하자 분노와 복수의 칼을 내밉니다.

욕망이 거절 당했을 때의 분노는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파멸시켜야만 만족이 됩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저지른 모든 죄를 요셉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우리의 삶에도 예기지 않은 고난과 모함과 억울함과 비난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 때 혈압이 올라가고 잠 못 이루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공정한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부당한 보상을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사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만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주님이 그렇게 당하셨습니다.

세상은 주님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5:18)

세상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실망합니다.

우리의 기대를 채워 주실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에 따라 보상이 있고, 거부하면 어려움이 뒤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요구를 거부한 이유는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까?

그것은 보상 때문이 아닙니다.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게 손해가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이 받은 댓가는 감옥입니다.

꿈의 댓가, 정직하고 바르게 산 댓가, 하나님을 신뢰한 대가가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의 고통은 선행의 결과였습니다.

의를 행하고 선을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은 불공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유혹을 극복했는데 그에게 찾아 온 결과는 감옥행이었습니다.


요셉은 지금 이중적인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와 좋은 평판을 얻었는데 하루 아침에 그 모든 것을 잃고 가장 파렴치한 강간 미수범으로 전략한 것입니다.

오늘까지 요셉은 양심 하나는 깨끗하게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숙하지 못한 여자의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고 파렴치한 위선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태양이 볼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거기에서 살아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노예로 애굽에 팔려 온 것이 고난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더 낮은 곳으로 내려 가야만 했습니다.

거의 완전한 죽음의 장소 다시는 살아 나올 수 없는 곳, 모든 사람들이 무덤이라고 부르는 무서운 정치범 수용소에가지 내려 가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완전히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종종 이런 경험을 합니다.

선한 일을 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오히려 오해와 비난을 받습니다.

우리가 펄쩍 뛰고 괴로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공식과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고, 공정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식에 안 맞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정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 계획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것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이런 때에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처와 아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이런 시련을 통과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버림받고 고통을 당할 때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의 상한 감정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와 고쳐 주십니다.


요셉이 옷을 두번이나 빼앗기고 두번이나 버림 받으면서 그가 받은 훈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훈련입니다.

세상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세상은 바라보고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우리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지만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잘 견뎠습니다.

그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이 진실을 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보상이 없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시험을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보이지 않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보상도 전혀 없이 항상 당하기만하고 손해만 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의 보상은 없지만 다른 보상, 하나님으로부터의 보상이 있습니다.

그 보상이 무엇입니까?

멈추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21-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옥에 누가 계셨습니까?

요셉이 감옥에 갇힐 때 그곳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으로 들어 갈 때 하나님도 그와 함께 감옥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세상이 요셉을 버린 것 같고 무자비하게 대우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보상, 하나님께서 직접 함께 하시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세요.

기막힌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셔서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과하는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시련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손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섭리하십니다.

요셉이 가야 할 감옥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서 당장 건져 주시지 않았으나 늘 그의 곁에서 계셨습니다.

오래전에 가이드 포스트에 이런 일화가 났습니다.

미국의 한 병사가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남편이 고통을 당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부인이 자기 아들과 같이 있는데 자기 아들이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타리를 쳐놓고 그안에 집을 하나 그려 놓은 것이었습니다.

“얘 이게 뭐니?” “응 아빠가 있는 포로수용소야!”

이 이야기를 들은 부인은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부인이 흐느끼니까 그 아이가 “엄마 왜 울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응 아빠가 그곳에서 혼자 계셔서 그래”

그러자 이 아이가 “엄마 울지마 이곳은 말이야 하나님이 계시잖아. 엄마 울지마.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이 아이의 한마디는 자기 남편이 포로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 엄마의 눈물을 씻어 주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는 편한한 마음이 됩니다.

우리는 낯선 곳에 가면 불안해합니다. 먼곳에 떠나면 걱정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 보내고 그의 부모는 편안한 잠을 못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셔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지켜 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가 실재 삶을 살면서도 그가 어디나 계시며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안해 하고 걱정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함께 하십니다.

어디나 계신 하나님은 그 무시무시한 공산당의 핍박 속에서도 계십니다.

1949년 중국 본토가 공산화가 되면서 공산당들은 소리쳤습니다.

“이제 중국에서는 기독교가 끝장이다”

한 선교사도 “하나님 이 땅에 200년동안 수많은 고생과 죽음속에서 복음을 뿌린 결실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납니까?”하면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중공에서 지난 50년 동안 그리스도인이 50배로 증가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중공에는 기독교인이 이미 5천만이 넘어 1억에 육박하고,

중국 본토가 공산당 될때보다 기독교인이 100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중국에도 계십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아무리 기독교를 핍박한다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에게 아무리 깊은 고통을 준다할지라도 이북에도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북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종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십수년 전에 제가 어떤 책자에 보니까 북한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집 마루 밑에 땅을 파고 그곳에 숨어서 하나님을 믿다가 들켜서 사형당한 기사가 났습니다.

얼마전에도 북한을 방문한 외국기자가 농촌가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을 부르니까 논에서 일하던 한 노인이 일하던 것을 멈추고 그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찬송을 따라 불렀다는 것이 기사에 났습니다.

북한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복음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앙이 그렇게 쉽게 죽어버린 적은 역사상 한번도 없습니다.

초대교회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형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할때까지 약 250년간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불에 태워 연회석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열번에 걸친 대박해가 있었습니다.

마치 틈이 없이 빽빽한 그물 저인방으로 송사리까지 깡그리 잡아 버리듯이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는 무시무시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박해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씨가 마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그들은 카타콤이라는 동굴에 밤마다 모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의 예수,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승리하는 주님, 죽음의 권세까지 이기는 주님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이 예수님 성도들을 지켜 그리고 어디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성도들을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불가운데를 지날 때는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하고 물위를 건널 때는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그 하나님이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며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감옥의 전옥이 서로 은혜를 주고 받게 됩니다.

요셉은 복의 사람입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주변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복의 근원인 하나님이 요셉에게 복을 주시고 요셉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 지라도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영광된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좋은 환경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가 최악의 환경을 최선의 환경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환경을 바꿉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바꿉니다.

좋은 환경에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환경에서 반드시 나쁜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 환경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환경에 너무 얶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나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성공한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공했습니다.

요셉과 같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속한 곳을 축복의 장소로 변화 시킵니다.

그 사람이 나타나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때문에 주위의 모든 환경을 선하게 변화시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내가 이 환경에서 벗어 나기만 하면, 조금 더 좋은 조건이 주어지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장소에서 실패한 사람이 그 인격과 삶의 태도의 변화 없이는 다른 장소에 가서도 실패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패배적인 사람은 그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여전히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어떤 나쁜 환경이 주어져도 그 환경을 극복하고 다시 딛고 일어섭니다.

문제는 그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고 죽을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며 환경에 의해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하여 세상의 보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채워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성공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억울한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주인은 요셉의 인생을 망하게 했고 요셉은 그 망한 자리에서 다시 존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자의 악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선을 이루셨습니다.

이 여자가 정욕에 눈이 뒤집혀 요셉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않았더라면 요셉의 영광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지만 언제나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시고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보세요.

요셉이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할 수 있었는데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디발이 요셉을 믿은 것입니다. 노예가 안주인을 겁탈했다고 하면 당장 사형감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는데 왜 왕의 죄수를 가두는 자기 집의 감옥에 가둡니까?

만약 요셉이 아무 감옥이나 갇혔다면 그는 애굽의 총리도 못되었고 나중에 그의 가족들도 구하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보세요.

얼마나 오묘합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보혈의 피로 산 사람들에게는 언제 무슨 일을 하든지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옥에 가도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자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간다해도 감옥에 온 것은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주님을 인정하면 주님께서 모든 일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절대로 우연한 것이 없습니다.

고난에는 뜻이 있습니다.

그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이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으므로 결국에는 우리에게는 은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평없이 감사가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자기 혼자 어떤 사실을 믿어 버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나 편안할 때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늘 좋은 일만 생겼던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들도 있었고 절망적인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느꼈습니까?

그 어려움이 항상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일어 나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딪혀 보니까 의외로 쉬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짐을 함께 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연단 받는 당시에는 밤이 너무 긴 것 같고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는데 끝나고 보니 오히려 너무 짧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이 감옥에서 어떠했습니까?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절,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은 감옥에서 모든 일에 형통했습니다.”

여러분! “형통하다‘는 단어를 어떻게 느끼십니까?

형통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인생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잘 진행되어 갈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내 소원되어 되어 질때 쓰는 단어가 아닙니까?

요셉이 지금 형통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가 올바로 살기를 원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감옥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형통케 하셨다.”고 하십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형통케 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감옥에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왜 하나님이 요셉을 내 보내지 않으시고 감옥에 있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의 일에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되기까지 하나님은 절대로 그 사람을 풀어 놓지 않으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당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고난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환경을 아름다운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 창조적인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이 형통한 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 안에서 형통케 하셔서 다른 사람들이 요셉을 사랑하게 하시고 지혜로 감옥 안에 벌어지는 여러 어려움들을 원만하게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믿음은 바로 그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감옥 안에서나 감옥 밖에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세상은 경쟁의 시대이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가려고 합니다.

그것을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 걸음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철저하게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들어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이 세상을 뒤집어 엎으십니다.

일단 준비되기만 하면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최고로 끌어 올려서 이 세상을 변혁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던져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요셉의 생애는 완전히 끝장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안에서 썩지 안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었고 이것은 비약을 위한 준비의 단계였습니다.

때가 되면 높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의 삶이 어렵지는 않습니까?

왜 이렇게 고난이 끝나지 않고 고통만 되풀이 됩니까?

이것 때문에 안타깝고 눈물 흘리면서 괴로와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세요.

어려운 환경은 우리를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그 고난속에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손길이 있습니다.

그 고난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감옥과 같은 생활이지만 조금 지나면 국무총리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의 자녀들을 모두 ‘감옥의 요셉’으로 만드시지는 않으시지만,

우리 모두 ‘요셉과 같은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결코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눈물을 닦으시고 내 분함을 오히려 평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의 상황이 아무리 어둡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을 빛으로 만드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꿉니다.

밤중이 지나면 밝은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고난이나, 억울한 일을 당할다 할지라도 믿음 잃지 않고 더욱 주님을 의지해서 이 고난속에서 승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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