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유혹의 눈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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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혹의 눈짓
본문: 창세기 39장 6-10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나의 마음과 눈을 빼앗아 가는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것의 황홀감에 도취하여 한번 빠져 들어가면 헤어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무 저항없이 맥없이 유혹에 넘어집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Philadelphia 인근의 Atlantic City의 카지노는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단 한번에 해결해 보려는 우리의 허망한 꿈을 자극하여 피땀 흘려 애써 벌은 돈을 잃게 만들어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 갑니다.
유혹은 매혹적이며 달콤하여 나의 마음과 생각과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합니다.
결과가 분명한데도 당장에 주는 쾌락이 너무나 달콤하여 그 즐거움만 만끽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 ‘분홍신’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이 동화 속의 분홍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신발인데 더욱 더 매력적인 것은 누구든지 이 신을 신으면 춤을 아름답고 멋있게 출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홍신은 마술사가 만들었는데 누구든지 한번 그 신을 신기만 하면 벗을 수 없이 일생동안 춤을 춰야 하는 마법의 신입니다.
그런데 한 소녀가 그 신에 매혹되어 그만 신을 신게 됩니다.
소녀는 날렵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황홀하였고 하늘을 날아 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려한 거리에서 많은 청년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집 앞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이제 그만 춤추는 것을 멈추고 집으로 들어 오라”고 애원하지만 분홍신의 마력은 소녀를 어디론가 이끌고 갔고 결국 소녀는 지쳐 죽고 맙니다.
유혹이 바로 그렇습니다.
유혹은 분홍색처럼 처음 보기에는 아름답고 신어 보고 싶지만 한번 신었다 하면 다시는 쾌락의 마력에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 유혹의 가면 뒤에는 절망과 죄가 하마처럼 큰 입을 벌리고 우리를 삼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의 늪에 빠진 사람마다 죄의 종이 되어 파멸로 치닫고 맙니다.
유혹은 고난보다 더 무섭습니다.
한번 빠지면 나를 완전히 망칠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나의 육체와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유혹을 받은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형들에 의해 팔려 애굽에 노예로 끌려 옵니다.
그 곳에서 주인의 신임을 받아 이제는 살만해 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시험이 닥쳐 왔습니다.
주인의 부인이 요셉의 잘 생긴 모습을 보고 동침하자고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젊은 청년에게 성에 대한 유혹은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는 주인의 명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종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을 받게 됩니다.
물질적인 유혹, 쾌락의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등, 뿌리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유혹들이 우리 앞에 몰려 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유혹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욕망 때문에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성에 대한 감각적인 유혹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짓는 죄를 보세요. 돈과 성에 대한 죄가 제일 많습니다.
요셉에게 찾아 온 유혹도 바로 이 육체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요셉의 나이 이십대 후반의 총각입니다.
거기에다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독과 향수에 지쳐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찾아 온 이 유혹, 이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이 유혹을 멋있게 극복했습니다.
이 유혹을 물리침을 통해 더 어려운 고난을 겪었지만, 그가 이 유혹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되고 자기 가족과 애굽 사람들을 구하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요셉에게 다가온 유혹의 특징들을 살펴 보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도 요셉과 비슷한 유혹이 얼마든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유혹에서 이기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이 유혹은 전적으로 예상 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7절,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여러분!
요셉이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예상했겠습니까?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안주인이 자기와 동침하자고 요구합니다.
남자 주인들이 여자 종에게 동침을 요구하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안주인이 종에게 동침을 요구하는 일은 드뭅니다.
더구나 상대는 애굽의 최고 실권자의 부인입니다.
요셉에게 ‘이것이 웬떡이냐?’하면서 좋아할 사건입니까? 아니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명백한 죄일뿐만 아니라 자기의 목숨이 날아갈 위태로운 사건입니다.
조금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에게 다가 온 시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부터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은 전혀 예고 없이 닥칩니다.
오늘날 우리가 넘어지는 시험들을 보세요.
어떤 시험은 뻔히 알면서도 넘어지지만 많은 시험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당합니다.
이것은 마치 번갯불이 치듯이 순간적으로 다가 옵니다.
내가 예상하고 있고 준비 되어 있으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을 텐데 전혀 생각도 준비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다가옵니다.
우리가 이 시험을 방비하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을만한 아무런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나를덮칩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유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이 다가와서 나를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축복을 주지만, 마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유혹을 주어 우리를 넘어 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상시에도 준비하고 있고 조심해야만 합니다.
평소에도 우리의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죄는 생각에서 부터 생깁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다가 여기지 않은 기회와 환경이 주어지면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 져 죄를 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부터 죄된 생각을 멀리해야 합니다.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것은 유혹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지막도, 그렇고 세상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예고없이 갑자기 오신다고 했습니다.
예고 없이 도둑이 찾아오는 것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시간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어느 한 순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고 없이 기대하지 않았을 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여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그리고 예고없이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찾아오는 유혹을 맞을 준비를 해서 유혹에서 이겨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두번째로, 유혹은 좋은 여건과 상황속에서도 옵니다.
7절,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여기에 “그 후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 후가 언제입니까?
바로 앞 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있어서 그를 형통케 하시고 주인이 그를 신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기고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주인의 집에 축복을 주신 후입니다.
고난의 세월이 지나고 성공의 정상에 올라간 때입니다.
이 때 요셉이 얼마나 좋고 이제는 고생을 벗고 살만한 때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유혹이 닥쳐 왔습니다.
물론 유혹은 고난의 때에, 힘든 때에 많이 옵니다.
그래서 실패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타락속에 망가져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범죄속에 빠져 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유혹은 실패보다는 성공의 때에 찾아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공이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힘든 때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고난의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공했을 때에는 고난속에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자만에 빠집니다.
“내가 이 만큼 성공 했으니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지!”
성공이 우리의 무장을 다 해제하게 만듭니다.
사탄이 이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사탄이 나를 노리고 있다가 나의 틈새를 보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그 틈새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이 어느 때 가장 약해 져 있는가, 어느 때 가장 넘어지기 쉬운가 그 챤스를 기가 막히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엡 4:27)
이제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조심해야 될 순간입니다.
인간은 역경의 순간이 아니라 번영의 순간에 약합니다.
사람은 인정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반면에 인정 받은 후 찾아 오는 유혹 앞에는 약합니다
요셉의 유혹은 성공의 때에 찾아 온 유혹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려울 때도 조심해서 신앙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잘 될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뭔가를 조금 성취하고, 이제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조심해야 될 순간입니다.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환경이 어렵고 추울 때가 아니라, 따뜻한 날일 때,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을 때 우리는 쉽게 허리띠를 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내 도덕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고 내 신념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고, 내 신앙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고 달콤한 쾌락과 방탕속에 자기 자신을 던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고전10:12)
나를 둘러 싼 환경이 잘 된다고 생각할 그 때에, 내 심장과 삶의 한복판에 다가오는 이 사단의 화살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만월의 보름달이 되면 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언제 넘어 졌습니까?
그가 사울왕의 손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이 되고 나라도 부강하여 싸움에도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됐을 때 그는 유혹에 넘어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않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면 우리는 영적으로 나를 넘어 뜨리려는 유혹의 손길 앞에서 넘어져 죄악된 길로 빠져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삶이 힘들고 어렵지는 않습니까?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의 삶이 잘 되고 이제는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 때 더욱 조심하시고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힘들 때 한시간 기도했으면, 평안 할 때는 두시간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시험에서 승리하시는 비결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기도하시지만 평안하고 문제 없을 때도 항상 하나님께 매달려 모든 삶속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세번째로, 이 시험은 성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젊은 요셉에게 육체적인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요셉도 정욕이 있는 젊은 남자입니다.
그런 그를 향하여 성에 굶주린 탐욕적인 한 여인이 다가 옵니다.
이것은 요셉을 넘어뜨기에 너무나 적합한 유혹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노예입니다.
노예한데 무슨 인격이 있습니까?
여주인이 눈짓으로 부르면 얼른 대령해야지 노예가 어떻게 감히 거절할 수 있습니까?
출세하고 싶으면 오히려 여주인의 말을 듣는 편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6절 끝부분에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준수했다’는 말은 ‘체격이 좋았다’는 뜻입니다.
‘아담했다’는 말은 ‘얼굴이 잘 생겼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체격도 좋고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섹시했고 꽃미남이었습니다.
여기 사단의 간교함을 보세요.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노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장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 뜨립니다.
돈 잘 버는 사람은 돈 벌다 유혹에 빠집니다.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은 미모 때문에 시험에 빠집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으면 그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미모가 시험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관능의 미보다는 경건의 미가 더 중요합니다.
관능의 미는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미는 사람을 섬깁니다.
관능의 미로 대표적인 여성은 아마 마릴린 몬로입니다.
그녀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창 나이에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마더 테레사 수녀는 경건의 미를 가졌습니다.
그 여인의 미는 사람을 섬기고자 하면서 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모가 빼어나고 잘 생긴 사람들은 그 외모를 통해서 유혹을 받습니다.
돈 많고 풍족한 사람들은 그 돈 때문에 유혹을 받습니다.
돈 없으면 죄도 안 지을텐데 그 돈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여건들이 시험의 동기가 되고 자랑할 만한 것들의 유혹의 미끼가 됩니다.
내가 가긴 장점들과 자랑 거리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장점들을 이용하여 오히려 죄의 미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장점들을 늘 살피며 조심해야 합니다.
그 좋은 장점, 좋은 머리, 좋은 미모, 많은 돈들이 나를 넘어 뜨립니다.
모세를 보세요.
성경은 모세를 가르켜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무엇에 넘어졌습니까? 화를 내서 넘어졌습니다.
온유한 사람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 속에서도 그동안 잘 참아 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아우성 칠 때 화를 내서 바위를 두번이나 내려 칩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그렇게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갑니다.
모세는 그의 장점에서 넘어 졌습니다.
우리의 장점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무엇이 있고 무엇을 갖추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바람 앞에 낙엽과 같은 것입니다.
순식간에 무너지고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장점을 하나님께 맡기고 간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몸의 약한 질병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는 약할 때에 강하게 하게 하시고 부족할 때에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마시고 나의 약함을 통해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요셉의 잘 생긴 얼굴 때문에 보디발에 아내가 그에게 마음이 끌려 유혹을 합니다.
성적인 욕구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다른 욕구과 함께 성적인 욕구도 선천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욕구를 개인적으로 자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유혹 그 자체도 죄가 아닙니다.
유혹이 오는데 어떻게 합니까? 느껴지는 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죄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새들이 날아 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새들이 내 머리 위에 둥우리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도덕적인 양심과 용기를 가지고 나는 이 유혹의 새들이 내 머리 위에 죄악의 둥우리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성적인 욕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죄는 막을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보디발의 아내의 시험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 환경에 있습니까?
그는 지금 외롭습니다.
그런데 여주인이 돌보아 주겠다고 즐기자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단호했습니다.
8, 9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의 대답이 얼마나 멋있고 단호합니까?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요셉이 주인의 아내로부터 관심을 사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가 그 주인의 아내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녀가 남편에게 잘만 말하면 종이 아니라 나라의 관리로서 출세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은 그 어느 것도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이 유리한 조건으로부터 눈을 감아 버렸고 하나님이 그에게 가르쳐 주신 도덕적인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는 항상 하나님이 우선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몸을 음행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적인 죄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No,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처음에 성적 죄에 대하여 ‘아니요’라고 말하면, 그 다음에 오는 죄도 거절하기도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지면 계속해서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No,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No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Yes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No’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Yes’라고 말할때,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결심을 실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어떤 성적인 유혹에도 No라고 확실하게 대답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네번째로, 이 유혹은 집요했습니다.
10절,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여인이 날마다” 입니다.
12절, “ 그 여인이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 정신 나간 여자입니다.
잘못되기 시작하면 여자가 더 무섭습니다.
유혹의 성격은 단 한번에 오지 않습니다. 매순간 지속적으로 찾아 옵니다.
우리가 유혹을 한 번 거절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런 유혹들을 매일 매 순간 받고 있습니다.
요셉은 매일 같이 집요하게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고난보다 더 고통스럽고 무서운 유혹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이 당한 고난은 거룩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여기서 범죄한다면 지금까지 받아 온 고난은 뜻이 있는 고난이 아니라 생고난에 그치게 됩니다.
그가 받은 연단도 다 헛수고고 노예 생활도 무의미해 집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얼마나 받습니까?
지금까지 잘 참아 왔는데, 마지막 한 번 화 낸 것 때문에 지금까지 참은 것이 다 수포로 돌아 갑니다.
지금까지 다 잘 해 주었는데, 마지막 한 번 못 해 준 것 때문에 지금까지 잘 한 것이 다 허사가 되 버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비참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어려움 가운데서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범죄하면 지금까지 아름다웠던 모든 고난이 엉망이 됩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잘 참아 왔다 해도 범죄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한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넘어지면 그 때까지 붙들고 있던 모든 믿음이 와르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비참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난이나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러한 유혹입니다.
이것은 비단 성적인 유혹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잘 참아 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게 아닐지도 몰라.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지 않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합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하면서 잘 견뎌 왔는데 기도 응답이 늦어지자 “기도해도 소용없다!”
단정해 버리고 기도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기도한 것도 내 믿음도 다 허사가 됩니다.
응답이 없고, 해결할 소망이 없고 답답할지라도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매 마침내 응답해 주십니다.
그것은 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나에게도 가장 알맞은 좋은 때입니다.
우리 가정에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민의 삶속에서 얼마나 살기 힘듭니까?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울 때 싸움까지 하게 되면 정말 비참해 집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일수록 남편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보듬어 주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당신이 최고’라고 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힘들다고 서로에게 분노를 터뜨리면 그 때부터 시험이 진짜 시험이 되고, 위기가 진짜 위기가 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아내나 남편을 공격하지 마세요.
진짜 싸우고 싶으면 어려움이 끝나고 나서 싸워야지, 돈도 없고 외부적으로 막 눌리는 상황에서 서로 화내고 싸우고 각 방을 쓰면 정말 비참해 집니다.
요셉이 이 여자의 집요하고도 무서운 유혹 앞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모습을 보세요.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의 존귀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몸은 비록 노예였지만 그의 마음만은 결코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귀함을 놓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러운 여자의 일시적인 충동의 노예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주신 꿈을 포기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자 하였지만 요셉은 하나님께 대하여 청렴하고 깨끗한 삶을 유지해 왔습니다.
만약 그가 보디발의 아내와 시험에 빠져 버렸다면 역사는 완전하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국무총리도 못되고 자기 가족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성적인 시험을 받을 때 ‘그것을 용납하느냐 거절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남은 생애는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적인 죄를 범하면서도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랑’ ‘로맨스’ 혹은 ‘인죠이’란 단어로 얼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이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까”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번 한 번 뿐이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는 유혹의 말 속에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온 ‘나’라는 자아는 사라지고 죄악의 용광로 속으로 나를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들’, ‘별 거 아닌 것’ 에서 내가 무너집니다.
큰 것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만 딱 한번이니까”라는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가져다 줍니다.
한 번 죄를 범하면 그것이 두번이 되고, 그 다음에는 겉잡을 수 없이 나를 죄악의 진흙탕속에 내어 줍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이 어려움 가운데서 자기를 지켜 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버림 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버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으로 부터도 버림을 받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바라 볼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을 도우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가서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도움이 끝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이 끊어지면 그 때는 정말 끝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참아 왔는데 지금 넘어지면 너무나 비참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심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혹시 신앙적인 유혹이든 혹은 성적인 유혹이든, 물질적인 유혹이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적인 유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무도 없는 데서 이루어 진다.
이 성의 유혹에서 승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지켜 갈 수 있고, 우리의 가정을 지킬 수 있고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것이 성적인 범죄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성의 관리와 사용은 우리의 성취를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가정과 미래를 지키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성적인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범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지만, 그러나 혹시 범죄했을 지라도 이것이 영영 용서함 받을 수 없는 죄는 아닙니다.
주님은 용서하시를 원하십니다.
넘어져서 실패했더라도 나는 끝장 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주님 앞에 엎드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잘못과 죄라도 주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 해 줍니다.
간음과 살인죄를 범한 다윗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때 그는 용서함 받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일 아직 그런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신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계속 유혹에서 승리하도록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혹의 손길은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적인 유혹에서 자유함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