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희] 떠나가라(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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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떠나가라(GO)
본문 : 사도행전 22장 21절
설교 : 원천희 선교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또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말씀을 나누기 전에, 제가 사역하고 있는 바누아투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드리고, 그 다음에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선교사 원천희입니다. 아내 김난주 선교사와 함께 2007년도 말에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총회에서 파송을 받았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바누아투는 지도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나라입니다. 태평양의 넓은 바다 가운데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바다 영토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넓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섬나라입니다. 그중에서도 저희가 사역하는 곳은 산토섬이고, 그 안의 산속 부족 지역입니다. 지도상으로는 작은 점처럼 보이지만, 그 산 안에 100개 가까운 부족 마을이 흩어져 있습니다. 가까운 마을은 30분, 1시간 거리이고, 먼 마을은 반나절, 하루를 걸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매우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족들은 키가 작고 몸에 털이 많고 곱슬머리입니다. 머리에 볼펜을 꽂으면 그대로 꽂힐 정도입니다. 여성들은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남자들은 천이나 나무껍질로 몸을 가립니다. 집도 나뭇잎으로 지붕을 얹고, 대나무로 골조를 세워 지으며, 창문은 없고 문만 앞뒤로 하나씩 있습니다.
주식은 뿌리작물입니다. 카사바, 타로, 얌, 바나나 등을 삶고 찌고 구워 먹습니다. 전기가 없는 지역이 많아서 냉장 시설도 없고, 단백질 공급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곳에 학교도 세우고, 유치원도 세우고, 보건소도 만들고, 교회도 세우고, 선교사 숙소도 세워가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족 사역은 저희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고, 짐도 올릴 수 없고, 건축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건축 자재를 나르고, 물탱크를 만들고,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을 통해 이 사역을 붙드셨고, 또 바누아투 현지인 선교사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저희는 여러 섬에서 현지인들을 불러 훈련시킨 후 다시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5년 정도 산속에서 사역하도록 하며, 생활과 사역을 전부 돕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보내주신 헌금과 기도가 바로 이런 선교사들을 세우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흐름과 사도 바울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2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장면은 사도 바울 사역의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기억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그 자리에 청년 사울이 등장합니다. 처음 등장할 때 그는 복음의 동역자가 아니라 오히려 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에 들어가면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들이고 교회를 무너뜨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변화됩니다. 그리고 훈련을 받다가 13장에 가면 선교사로 파송을 받습니다. 그 이후 사도행전 후반부는 사도 바울의 선교와 고난, 그리고 결국 로마로 가는 마지막 여정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어디까지 확장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끝까지 가는 복음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땅끝 선교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이 복음서에서 긴 분량을 차지하듯이, 사도행전도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복음이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완성된 복음이 이제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셨고, 사도행전은 그 이루어진 구원이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어진 부르심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붙잡히고, 맞고, 고난을 당하고, 천부장 앞에 서는 이 장면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담대한 복음을 어디서 배웠을까. 그리고 답은 스데반에게서 찾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교자의 믿음이 세월이 지나 사도 바울의 삶 속에서 그대로 다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2장에서 그는 천부장 앞에 섭니다. 천부장은 당시 대단한 권력을 가진 군인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갈 수 있었을 사람입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했고, 젊은 시절 탁월한 리더십도 가졌고, 총독의 편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잡으러 다닐 정도의 권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붙잡힌 죄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왜입니까? 그는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을 보면,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저는 이 말씀과 오늘 본문을 연결해서 묵상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에 고난이 있다는 것, 그 고난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자는 사명이 있는 동안 죽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이단 사역과 말씀 사역을 하시면서 참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감옥도 가셨고, 책도 많이 쓰셨고, 평생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늘 궁금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적당히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나이도 생각하시고, 건강도 생각하시고, 그만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명자는 사명이 있는 동안 죽지 않는다.
젊을 때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19년 동안 사역하면서 그 말씀이 제 안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고, 아직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복음이 로마까지 가게 했습니다.
로마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가장 큰 군대, 가장 넓은 식민지,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위기를 기회로 보았습니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이 제국의 길을 따라 온 세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교지에서 배운 것
저도 뉴질랜드에서 사역하다가 어느 날 인도로 단기선교를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도행전 2장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 안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Leave your comfort zone.”
너의 안전지대를 떠나라.
처음에는 불안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까지 와서 잘 사역하고 있었는데, 또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날은 제 앞에 큰 광고판처럼 메시지가 지나갔습니다.
“Commit your life to Him.”
너의 삶을 그분께 드려라.
그때도 두려웠습니다. 저는 이미 목사로 안수받고 사역하고 있었고, 헌신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직이다. 네 삶을 진짜로 드려라.”
그 음성을 따라 선교지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교지에 가면 선교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지에 나가자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선교가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날씨도, 문화도, 언어도 다 달랐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더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1년은 나를 위해서, 1년은 파송교회를 위해서, 2년만 버티자.”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은 죄가 많아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말씀을 듣는데 화가 났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헌신하고 왔는데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제 눈앞에 제 죄를 보여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지은 죄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 죄가 내 눈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내 안에 죄가 있으니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이 감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 제자들처럼 눈이 가리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옆에서 말씀하시고 걸어가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올라가면 성령의 능력이 사라지고, 제가 내려가면 성령의 능력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제가 준비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선교지에 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해 여시는 선교의 문
선교지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부족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와서 아픈 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병원을 가야 할 사람인데 저에게 왔습니다. 너무 부담이 되고 두려웠습니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합니까. 저는 기도해서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을 주고 병원에 내려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너무 괴로웠습니다. 선교사로 왔는데, 정작 한 영혼 앞에서 믿음으로 서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어느 날 부족 마을에서 환영의 의미로 음식을 주는데, 그것이 박쥐였습니다. 너무 충격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걸 먹지 않으면 그 부족의 문이 닫힙니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어떤 노인이 와서 저를 자기 마을로 초대했습니다. “박쥐를 잘 먹는 선교사”라는 이유로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문을 여시는 방식이 내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또 아파서 누워 있었을 때는 부족 사람들이 전부 저를 찾아왔습니다. 건강할 때는 도망가던 사람들이, 제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니 다 찾아와서 먹을 것도 주고 말을 걸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때 또 배웠습니다. 내가 강할 때가 아니라, 내가 약할 때 복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그때부터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난아 와라”가 아니라, “이 고난도 주님이 쓰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고난 하나에 영혼 하나가 붙었습니다. 아픔 하나에 교회 하나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종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배웠습니다. 순종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인하고, 복음을 위해 손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인해 나에게 손해가 발생할 때, 그때부터 진짜 순종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희생하고, 내가 불편해지고, 내가 아파질 때, 그때 비로소 순종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사명은 목사와 선교사만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에게만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선교사만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목사와 선교사만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여러분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을 한국에서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왜 많은 도시 가운데 이곳에 살게 하셨습니까? 왜 많은 교회 가운데 이 교회로 인도하셨습니까?
그 질문 속에 여러분의 사명이 있습니다.
“왜 나를 이곳에 두셨을까?”
“왜 이 동네에 살게 하셨을까?”
“왜 이 교회에 보내셨을까?”
그 질문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질문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사명을 보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냥 편하게 살기 위해, 자녀 교육만 위해, 좀 더 나은 생활만 위해 이곳에 왔다면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을 넘어서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드러나야 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고, 그것 때문에 말씀이 선포되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맺는말
사도 바울은 “떠나가라”는 말씀을 붙들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떠난 다음에도 계속 떠났습니다. 죄수의 모습으로, 고난받는 모습으로, 모든 것이 끊어지고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떠났습니다.
그를 파송한 교회와도, 그가 세운 교회들과도, 그가 길러낸 제자들과도 단절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보며 “이제 끝났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사도 바울 안에 성령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역사할 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옥중서신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묻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두셨습니까?
그 사명을 찾고, 붙들고, 따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선교사가 되십시오.
Become a missionary.
꼭 외국에 나가는 선교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동네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이 복음을 살아내는 선교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을 떠나보내셨듯이,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을 사명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우리 모두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하시고,
떠나가라 하실 때 순종하게 하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