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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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
본문 : 창세기 25장 19-26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저는 가끔 제가 목사로써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주위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요새 사회적으로 신학대학이나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에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 내 신앙이 나의 삶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합니다.
언젠가 반포에 있는 성구사에 갔다가 그 곳에서 우리 그리스인들의 한 단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어떤 손님인 여집사님이 자기 교회의 성가대에서 입을 가운을 맞추었다가 찾아 가는데 원래 주문했던 것과는 좀 달라서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성구사 주인인 집사님이 화를 벌컷 내면서 윽박지릅니다.
그래서 손님이 여집사님이 "집사님!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시는 분이 좀 은혜로와야죠?"하니까 그 주인 집사님이 당장이라도 그 여집사님을 때릴 것 같이 욕을 하면서 싸우자고 달려 듭니다.
"손님이면 뭐 다냐?" "마음 안들면 다른 곳에 가지, 누가 여기 오래!" "잔말 말고 당장 가지고 꺼져!"
저는 이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단편적인 모습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슬펐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 옷을 만들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성의를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서 사용하는 성구들을 파는 사람이 과연 저래도 되는가?"
"하나님의 일들을 들먹이면 장사하는 사람이 과연 저럴수가 있단 말인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가게에 가도 손님에게 저렇게 하지 않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겉으로는 거룩한 것 같은데 거룩하지 못하고 사람이 좋고 진실된 것 같은데 진실도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남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형편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셔서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게 만드나"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뻐!" "예수쟁이들이 더 지독해!"
우리들 모습 가운데도 그가 신자인 것은 분명한데 영 한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좀처럼 변화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항상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게 무슨 신자냐?"라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을 대하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왜 저런 사람을 선택하셨을까?"
"예수 믿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수 믿으도 천국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생활의 모습은 그 모양, 그 꼴이란 말인가?"하면서 회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고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처럼 간사하고 형편없는 사람도 선택하셨구나?"
"야곱도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많이 체험하면서도 그방 변화된 것이 아니었구나!"
야곱은 별로 잘난 것이 없습니다.
잘한 것도 없고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일평생을 속이며 속고 살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셨고 그에게 축복하셨고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메시아까지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보잘 것 없고 간사한 야곱을 선택하여 사용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분명히 자구 실패하고 넘어지는 나를 사용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일일이 다 살펴보아도 잘한 것이라고는 별로 없습니다.
뱃속에서부터 형과 까우고 또 형의 장자 명분을 배앗고 그것도 부족해서 아버지를 속여가며 형의 축복을 모두 빼앗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형의 눈을 피해 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가서는 간사한 방법으로 삼촌의 재산을 갈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도 까막득하게 잊어 버리고 자기가 편한대로 생활합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그래도 비교적 괜찮다고 하는 것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붙잡았다는 것과 말년이 생애 뿐입니다.
야곱이 환날 중에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도 자기가 하나님을 찾고 싶어서 찾은 것이 아니라 이제 자기가 꼼짝없이 죽게 되고,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 나 좀 제발 살려 주세요"라는 투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잘 것 없고 비열한 야곱의 생애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합니다.
저는 야곱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있으므로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노아나 요셉하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들과 나는 비교할 수도 없고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야곱하면 괜히 한번 재 보고 싶고, 제가 야곱보다는 좀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리도 합니다.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비열한 야곱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축복하셨는데 야곱보다는 우리가 더 낫지 않습니까?
그래도 야곱보다는 더 하나님 안에서 신실하게 살려고 발버등치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사용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보잘 것 없고 간사한 야곱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자주 실패하고 넘어지는 우리를 사용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궁금증을 가짓빈다.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도 큰 자가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책하셨습니까? 어린자, 다시 말하면 야곱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장자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차자를 선택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례에 의하면 언제나 장자가 아버지의 혈통을 잇고 장자가 아버지의 모든 재산도 상속받으며 또 하나님의 일을 계승하는 가장 으뜸되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그런 기대와 관습을 깨뜨리시고 장자가 아닌 둘째 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보세요.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하나님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시기심을 가지고 "내가 너보다 나중에 나갈 수 없고 내가 네 동생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형의 발꿈치를 붙들고 늘어졌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시기의 사람이고 욕심의 사람이고 약탈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이면 이런 사람을 선택하셨을까요?
우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생각은 "택할만하니까 택했다"는 것입니다.,
"상줄만하니까 상줬다" "회장할 만하니가 회장했다" "장로될만하니까 장로로 선택됐다"
그런데 야곱의 모습에서는 완전히 예외입니다.
야곱은 선택될만하니까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선택될만한 조건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로,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전혀 선택될만한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는 간사했고 비열했도 사기꾼이었고 저짓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아닙니까?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 입니까?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선택받을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나는 보잘것 없고 그렇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내 욕심을 따라 빤질거리며 실패하고 넘저지고 죄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책하여 지옥불에서 천국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추하고 불길하고 더러운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의 이 모습, 나의 노력가지고 내가 구원받는다면 우리 중에 아무도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강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의 상식을 깨뜨리시고 강안자가 아닌 약자를 사용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강자보다는 더 많은 약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더 많은 우리 같은 약자들에 대한 축복이고 격려입니다.
나같이 연약한 사람, 나같이 눌려 있는 사람, 하나도 잘난 것이 없고 뛰어나지 못한 사람, 인생의 그늘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보통사람인 나를,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쓰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가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예수는 안 믿지만 참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야!"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이런 사람들이 제일 예수 믿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의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는 바르게 살라는 말이 무의미하다." "천국이 있다면 내가 갈 것이다"
"내 삶은 이만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교만이 그의 속에 가득차 있습니다.
자기 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속에 자기 교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약함 때문에 우는 사람, 자기의 부끄러움과 더러움 때문에 우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은 붙드셔서 변화시켜 주시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뛰어나고 훌륭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상요하시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6절-28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이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은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은 절대로 쓰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들도 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똑똑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을 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계속되는 29절을 보세요.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중에 어떤 누구도 "내가 구원 받은 것은 나의 지혜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나의 뛰어남 때문에, 나의 재주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십니다"이렇게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없이 부족한 나를, 한없이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 나를, 한없이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그런 나를 하나님은 선택하셔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버려졌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세상에 포기했던 사람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조롱하고 멸시하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손으로 잡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입니다.
누구에게 영광 돌려야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멸시받던 나, 더럽혀져 있고 추한 나를, 부끄럽고 죄많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선택하여 구원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그런 나를 사용하시니 주님께 영광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이유는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형편없는 야곱을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를 점점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간사하고 형편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선택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들을 향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니, 목사가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야곱은 사기를 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기를 칩니다.
그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남을 속이고 거짓말할때도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울고, 후회하고 갈등을 겪습니다.
수없이 그런 고통과 갈들이 되풀이 되는 삶, 이것이 바로 야곱의 삶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이것이 죄인줄 알면서도, 나의 연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것이 분명히 나쁜 줄 알면서도 또 행합니다.
죄를 범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고 나서는 "내가 또 죄를 범했구나.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구나!"하고 깨닫고 나의 연약함 때문에 가슴 치고 울고 회개하고 갈등을 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선택함을 입은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하면서 경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만 합니다.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
내가 이렇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고 또 짓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럴 수 있는가? 선택받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는 질문보다 "내가 이런 형편없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라는 이 사실 앞에 놀라야 합니다.
형편없고 엉망이고 망나니인 나를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엉망진창인 나의 생애를 하나님이 분드셔서 나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가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광스럽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를 배워야 합니다.
이제 엉망이었던 이 야곱의 생애를 지켜 보세요.
그이 생애에 멈추지 않고 그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기대를 보세요.
하루 아침에 그이 삶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분간은 이 엉망이 삶을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의 평생을 두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홀연히 그의 삶은 달라지고 마침내 그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지끔까지의 그답지 않는 품성으로 변화되어 야곱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 하나님을 섬기며 모든 일을 신앙으로 대처합니다. 이런 야곱의 변화를 인하여 놀라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없는 야곱의 생을 이처럼 변화시키고 다시 만드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 때문에 놀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부족한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흥회 때 은혜 받고 내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부흥회때 울고 짜고 회개하고 은혜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또 그 모양일텐데"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의 변화는 은혜 받았다고 갑자기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계획과 기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내 속에 놀라운 선한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비천하고 더렵혀져 있는 내 삶속에서 역사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입니다.
이 날이 언제 입니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세상에 오시는 그 영광스러운 날까지 내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마침내 완성하고 말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만하고 중간에 그만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하기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한꺼번에 변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때마다 하나님은 가슴 아파하면서 기다리십니다.
내가 범죄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나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애야, 나는 너의 연약함을 안다. 네 무능을 안다. 네 더러움을 안다. 네 범죄함을 안다. 네가 자주 넘어지지고 실패하는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너를 놓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젖을 먹이는 아기를 버리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만은 "어미가 그 자식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실수하고 내가 부족하지만 이것 때문에 내가 버림받지 않습니다.
내가 넘어지고 죄를 범하지만 이것 때문에 내가 버림 받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우리는 매일 넘어집니다.
그러나 넘어지는 것보다 언제나 한번 더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절하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을 말씀 한마디로 지으신 그 능력의 위대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나에게도 찾아 소셔서 나를 붙으시고 간섭하시고 사소한 일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내 삶속에 역사를 시작하신 이상, 내 삶이 그 분 앞에 완성되고 거룩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세워지는 그 순간까지 그 분을 내 삶을 놓지 않고 나를 끌고 다니실 것입니다.
때로는 나를 때리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시며 채찍을 들어 나를 치는 순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분은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시빈다.
이것이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선택받을만한 조건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보잘 것 없고, 형편없고, 죄를 밥먹듯이 범하는 나를 선택하여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어 우리 속에 아름다운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 앞에 더욱 무릎끓고 엎드려 순종하면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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