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우리는 왜 기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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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는 왜 기뻐해야 하는가?
본문 : 빌립보서 3장 1-9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인생을 살아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편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고달픈 이민 생활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 가져온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그것은 ‘기쁨 상실’ 같습니다.
우리 삶에 그리고 우리 가정에 기쁨이 상실됐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렵다 보니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람은 평생동안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환경의 영향을 벗어나기란 무척 힘듭니다.
사실 환경이 나쁘면 우리 삶 전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인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인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고 환경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환경에 따라 인생의 삶을 살아 왔습니까? 아니죠?
우리는 환경 때문에 살아 온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살아 온 사람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호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
넘어지는 내 연약함을 붙잡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성공케 하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지켜 주신 것이 주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붙잡아 줍니다. 이 은혜를 체험하고 산다면 우리는 환경을 그복하며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환경을 그복하며 산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 상당한 부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학문적인 업적과 권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복음 하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 던집니다.
그는 세계 곳곳에 다니며 예수를 전하다가 때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고 때로는 돌팔매질을 당합니다.
여러 번 투옥되어 매를 맞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것만도 세 번이나 됩니다.
복음 때문에 그는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자기가 개척했던 유고슬라비아쪽에 있는 작은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자기는 매우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자기처럼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그가 행복한 조건과 환경입니까? 아닙니다.
환경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짤막한 편지에는 기쁨이나 기뻐하다라는 단어가 16번이상 나옵니다.
이 편지가 바로 오늘 본문의 빌립보서인데 본문의 1절 말씀에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무엇하랴?) 기뻐하라”
여기서 종말로라는 말은 결론적으로 라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한 말을 요약해서 종합적으로 말하는 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그렇습니다. 여기 기쁨의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진정한 기쁨의 삶, 진정한 행복한 삶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이유를 살펴 보면서 날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기븜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좋은 조건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랆들은 좋은 부모 만나고 좋은 환경을 가지면 행복은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부모 만나는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기쁨에는 조건이 따로 없습니다.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기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불평합니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다고 합니다.
바울은 좋은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4,5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울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랑할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할례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의 표시입니다.
종교가 중심이 된 사회에서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 났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순수한 히브리 혈통을 가지고 명문 가정에서 태어 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런 좋은 조건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다메석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좋은 환경, 이 좋은 조건의 출발이 그에게 행복이나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한평생 조건 타령만 하다가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부모만 조금 잘 만났더라면”
“남편 잘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이 모양 이꼴은 아닐테데”
‘내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만 태어 났어도 뭐 좀 해서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하면서 평생 조건만 탓하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태어 난나고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을 보세요
그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까? 아니죠?
그는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일찍 어머니까 돌아가셔서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건을 뛰어 넘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습니다. 시력도 나빴습니다.
천식을 앓았고 호흡 곤란 때문에 앞에 있는 촛불을 끌 힘도 없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에 나갔습니다.
열한 살 되던 날, 아빠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네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는 드디어 23세 되던 해 뉴욕 주 의회에 의원이 됩니다.
그리고 28세에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얼마 후에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됩니다.
1906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데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좋은 환경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쁜 환경이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나쁜 환경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아주 나쁘고 불리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과 기쁨은 반드시 좋은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리 가운에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조건이 나쁘고 어렵더라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외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성취 본능이 있습니다.
무엇을 이루고 달성 했을 때 기쁨을 맛 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예수 믿기 전에 상당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5절 끝부분에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바울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지만 그들은 유럽을 날마다 읽고 그대로 지키면서 살고자 했던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굉장히 존경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바울은 그 당시의 최고 궡위자였던 가멜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그리스도인을 처벌할 수 있는 공적인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는 상당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권세가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도덕적인 성취도 있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굉장한 고백이죠?
누가 감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울은 성공한 사람이었고 성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혈관에는 그리스도인을 죽이기 위한 뜨거운 살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이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세 번째로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해야 할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7-9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 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 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내가 가진 의는 율법으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 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 ”
이것은 바울의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바울이 다메석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그 순간, 바울의 일생을 뒤집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가치관이 송두리채 무너져 내립니다.
그가 지금까지 자랑하던 모든 것이 다 쓰레기 같다고 선언합니다.
지금까지 출세를 위하여 성공을 위하여 권력을 얻기 위하여 달려 왔던 바울이 하는 고백입니다.
“내가 이룩했던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것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더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데 방해가 된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차라리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것이다”
제 동기 목사 가운데 선우형식이라는 목사님이 게십니다. 이 분은 고대 병원 이비인후과 과장이며 고대 의대 교수입니다. 그의 사모님도 소아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예수님을 아록 이 좋은 지위를 다 버리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고 사모님과 어린 딸을 데리고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갔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성공이나 명예가 그에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고 그 분안에서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에서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잠깐입니다. 그것은 다 쓰레기와 같고 배설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려고 하면 나중에 우리에게 남는 거은 허무와 실망 뿐닙니다.
세상적인 출세와 명예도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참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에수님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 아십니까?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느냐? 예수님 밖에 있느나?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제가 40년 전 1월에 훈련소 10주 훈련을 마치고 연대를 거쳐 중대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곧 소대에 배치되고 몇 일 있다가 야간 보초 서러 나갔습니다. 그 날 기온이 영하 31도입니다. 저는 그런 추위를 행전 처음 느꼈습니다.
추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 뛰었습니다.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2시간 보초를 서고 교대가 되어 내무반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 살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 강하게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까는 정말 추웠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 추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내무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기온은 그대로 있고 밖은 영하 30도가 되지만 내가 춥지 않은 이유는 내부반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군생활하는 동안에도 내가 주임 안에 있기만 하면 아무리 밖으로 힘들어도 나는 괞찮겠구나”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은 파고가 칩니다. 근심, 걱정, 염려, 문제들이 나에게 밀려 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예수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 무너지지 않는 평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속에 풍성히 쏟아 부어 주시는 그 생명의 감격들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미얀마에 복음을 전한 저드슨 선교사를 아십니까?
그는 로드 아일랜드의 브라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자 그의 모교에서 교수로 초빙했는데 목사가 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가 신학교를 나오자 보스톤의 가장 큰 회중 교회의 당임 목사로 청빙 받았는데 그것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서 많은 애를 썼는데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을 바꾸어 미얀마로 선교지를 바꿉니다. 미얀마에서 7년동안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7년이 지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주변의 냉대와 박해가 심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 나올 수 없다는 깊은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7년 만에 한 사람이 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두 아들이 풍토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마자 병으로 죽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무덤에 묻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친한 친구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저드슨, 너무 낙심하지 말게”
그러자 저드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낙심이라고? 예수 안에서 소망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네”
그는 7년동안 아무 소득이 없었을 때 단 한명의 위로자였던 아내마자 잃어 버렸지만 예수 안에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버어마-영어 사전을 편찬하고 버어마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몸이 너무 쇠약해 져서 미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가 미국에 왔을 때 사람들이 그의 설교와 간증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의 설교의 내용은 자기를 위해 죽으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언젠가 3,000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은 모여서 저드슨 목사님에게서 감옥에 끌려들어 가서 죽을 뻔 한 이야기, 밀림속을 헤매며 목숨을 건진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드슨 목사님은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목사님! 미얀마에서 있었던 다른 재미 있는 말씀을 해 주세요”하고 부탁을 했다. 그 때 저드슨 목사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라요? 저에게는 저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의 이야기 보다 더 재미있고 감격스러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나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뒤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만 떠 올려도 감격에 찹니다. 내가 또 이야기 한다면 예수님 밖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저드슨 목사님의 마음에는 예수님으로 가득찼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구속을 참으로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나를 위해 주셨던 그 사랑을 날마다 기쁨과 감동으로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아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놓아 질 때에 사람들은 생명이 소생하는 힘을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는 곳에 사람들의 심령이 주님 주시는 기쁨을 소유합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놓아 자는 곳에서 무너집니다.
예수 남에 사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자랑입니다.
주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을 갖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나 어떤 다른 조건이 우리의 기쁨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측권입니다.
이 특권은 예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시작이 예수님이고 과정도 예수님이고 또한 끝도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감옥에 있지만 감옥이 내가 처한 환경이 아니다”
에수 안이 내가 처한 환경이다. 예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이켜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수많은 조건들을 주셨습니다.
귀한 자녀들을 주셨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주셨고 가정을 지켜 주셨고 직장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감사는 예수 없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 많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 떠난 다음에도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황홀한 행복도 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해 해서 날마다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삶이 우리 모두의 삶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