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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한 사람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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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 사람 찾으신다

본문 : 사도행전 13장 22절, 시편 89편 20절
설교 : 이혜진 목사(아틀란타 벧엘교회)


제가 요새 여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경험한 일입니다. 요새는 다 찬송가를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고 PPT에 찬양 가사가 나오잖아요? 어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이 찬양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이 찬양 아시죠? PPT를 준비하신 분이 마음이 띄고 상한 자를 이라고 해야 되는데 마음 띄고 이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이라고 해놨습니다. 대박이죠. 한참 그 가사를 보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마음 이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그런데 또 계속 그걸 불러요. 처음에는 대박이다, 그랬는데 한참 그 가사를 들여다보는데 너무 은혜로운 거예요. 그렇지. 우리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한 자’만 고치시는 게 아니지. ‘마음 이상한 자’도 고치시지. 할렐루야!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마음 이상한 자’가 더 많아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하시면서 사람 마음 밭이 4종류라고 말씀하셨는데 4개 중에 3개가 ‘이상한 마음’입니다. 길바닥 같은 마음, 마음이 닳고 닳았죠?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상한 마음이에요. 돌밭 같은 마음, 아멘으로 받지만 뿌리를 내리지 않는 마음. 참 이상한 마음이에요. 가시 밭 같은 세상의 유혹, 재물의 유혹에 막혀서 역시 결실하지 못하는 마음도 이상한 마음이거든요.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 세우셨는데 마음이 상한 자도, 마음 이상한 자도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오늘 다윗에 대해 설교할 건데 다윗과 사울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얼굴은 사울이 낫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은요. 키도 크고요.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 컸고요. 얼굴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보다 더 준수했어요. 아이돌처럼 생겼다 이 말이에요. 다윗은 아담 사이즈였어요. 사울의 옷이 안 맞았잖아요? 그러니까 face를 놓고 보면 사울이 다윗보다 나아요. lace는 어떻습니까? 입고 있는 옷은, 사울은 왕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목동의 옷을 입었고 나중에 장군의 옷 정도 입었겠죠. 옷도 사울이 입고 있는 옷이 더 낫죠. 놀라운 것은 face도 사울이 낫고 lace도 사울이 나은데 다윗이 사울을 질투하는 게 아니고 사울이 다윗을 질투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는 거죠. 그 이유는 grace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혜를 주니까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face, lace 보다 grace 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은혜 입은 자구요. 오늘 특별히 성경에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사람 다윗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제 우리 Marc Choi 목사님이 다윗이 지은 시편을 가지고 설교했고 큰 은혜 받았습니다. 저는 다윗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 놀랍게도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하느냐면 ‘내가 내 종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 시편 89편 20절에 따르면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냈다’ 여기서 ‘찾아냈다’라고 번역된 ‘휴리스코’는 관찰하여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으시는데, 그러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많을까요? 적을까요?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내 종 다윗을 만나니 참 좋으셨다는 말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드디어 맞는 사람 하나 만나서 너무 좋으셨다는 얘기겠죠. 


그럼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고맙게도 우리는 다윗 시대의 인구가 어느 정도 되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는 통계 자료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말년에 잘못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 인구조사는 고맙게도 저같이 설교해야 될 사람한테는 좋은 자료가 되는 거예요. 성경에 버릴 것이 없어요. 역대상 21장에 이런 인구조사 통계가 나옵니다.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110만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는 47만. 그런데 이 숫자에는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게 다윗 말년에 한 157만 명 정도. 두 지파를 제외했다면,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한 150만 명 정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합리적인 추론이죠. 


150만 명 정도 되는데, 하나님이 150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다 살펴보시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다윗을 만나니 하나님이 너무 좋으셨다고. 이런 애가 있구나, 내 마음에 꼭 맞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기쁨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5천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있다고 하죠. 대한민국에 예수 믿는 사람, 한 천만 명 된다고 하죠. 지금 그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는 몇 개나 될까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건강한 명사에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죠. 명사가 건강하면 굳이 형용사가 필요 없어요. 예를 들어 ‘엄마’ 여기에 무슨 형용사가 필요합니까? 그냥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찡하잖아요? 저도 어머니가 5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코로나 때 돌아가셨는데. 제가 장례식에 가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엄마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해요. 원래는 ‘교회’, ‘목사님’ 앞에 형용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명사에 문제가 생기면 형용사가 필요해요. 요새 이상한 엄마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애를 굶겨 죽인 엄마들이 나와. 이상한 엄마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이제 형용사가 필요해졌어. 좋은 엄마. 이상한 교회들이 있기 시작했어. 이상한 목사님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제 형용사가 필요해요. 좋은 교회, 좋은 목사, 좋은 성도. 


이 그리스도인, 좋은 성도라는 이름 자체가 이상해져 가요. 이 시대도 좋은 성도를 찾는 거죠. 하나님은 더더욱 좋은 성도를 찾고 계심을 믿습니다. 참고로 다윗은 평신도였어요. 다윗 목사님 아니에요. 여러분과 똑같이 직업이 있었던 다윗도 two job 인생이었습니다. 양치기 하면서 궁중 악사를 했던, 아르바이트했던 사람, 이 평신도였던 다윗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그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게 꼭 맞았을까? 우리가 사람을 본받자는 게 아니고요.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거든요. 다윗이 무수히 많은 실수가 있지만, 그래도 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맞았다면, 나도 그 모습은 좀 닮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에 합하다’가 영어로 'a man after my own heart' 라고 되거든요. 그러니까 내 마음을 쫓아갔다. 내 마음과 똑같다는 거죠. 다윗의 긴 인생을 시간 관계상 다 얘기할 수 없어서 몇 개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양치는 시절 다윗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하나님 마음에 맞았을까?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은 사무엘상 17장 34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여러분, 이런 목자가 세상에 어딨어요? 여러분이 양을 친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성경에 따르면 몇 안 되는 양을 쳤답니다. 양을 치는데 사자가 나타나서 그 양을 물어가면 어떻게 하실래요? 동물원에tj 보던 사자 말고, 진짜 사자가 내 앞에서 양을 물어가면 어떻게 하실래요? 뭘 어떻게 해요?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잖아요? 안됐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정상이죠. 그런데 이 다윗이라는 목자는 다른 목자와 좀 다르게 양을 치는데, 세상에 사자가 물어가는데 쫓아가는 목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이 모습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그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남다르지 않았을까요? 이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여러분, 제가 애가 다섯이에요. 우리 막내가 4살이에요. 제가 우리 막내를 데리고 우리 조지아 아틀란타 동물원에 갔어요. 갔는데 실수로 이 아이가 고릴라 우리에 빠졌다고 칩시다. 우리 애가, 4살짜리가 고릴라 우리에 빠지면 제가 어떻게 할까요? 안됐다, 어떡하냐? 그럴까요? 아니죠. 내 새끼인데 고릴라가 문제예요? 막대기를 들든, 돌을 들든 해서 달려들지 않겠어요? 내 새끼니까. 다윗이 그 마음으로 양을 친 거거든요. 하나님이 놀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이스라엘은 내 양떼’라고 그랬거든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왕은 내 양떼를 돌볼 목자인데, 그렇게 양을 치는 다윗을 만나니 좋으셨던 거예요. 


여러분 놀랍죠? 아무도 다윗이 그렇게 양치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셨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고 계십니다. 이어령 씨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 ‘작은 것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전부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멋진 말을 했어요. 잘 보세요. 영어 단어 small에 all이 들어가 있네요. 여러분, mall이라고 그러잖아요? mall, 왜 mall인 줄 아세요? 다 있기 때문에 mall이에요. 여러분, small이 절대 작은 것이 아니고 작은 것엔 사실 나의 전부가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분 건강검진 받을 때 피 다 뽑아요? 요만큼만 뽑아요. 그렇죠? 왜 요만큼만 뽑죠? 그 조금에 나의 건강 상태가 다 들어있거든요. 원래 그런 거예요. 수질 검사할 때 바닷물 다 검사해요? 아니에요. 조금만 검사하는 거예요. 나의 삶의 한 단면은 나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 가지고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마!’ 미안하지만 나의 하나하나 작은 모습에 나의 삶의 전부가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몇 안 되는 양, 그 작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쳤어요. 그게 하나님 마음에 맞았던 거예요.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Attitude determines altitude. 여러분의 지금 작은 일에 대한 태도가 여러분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합니다. 


두 번째, 다윗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꼭 맞았을까요? 시편 18편 1절은 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 다윗이 어떤 사람이냐면요. 심심하면 양을 치면서 하프를 뜯으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의 상당수가 다윗이 쓴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모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사무엘.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 최초의 인물이 다윗이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아브라함이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죠.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순종했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께 ‘사랑한다’ 말하지는 않았어요. 


이 다윗이 정말 독특한 친구예요. 심심하면 이 친구가 들에서 양을 치면서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 소원은 무엇이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이 무엇이냐? 내 평생의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며 살고 싶다는 것. 


하나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계명을 단 두 가지로 정리하셨죠. ‘예수께서 가라사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구약의 모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같아요.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첫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두 번째가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하나님이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오고 짜증이 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공통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우선순위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고 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되는데, 이것이 먼저인데 그냥 일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짜증나요. 대표적인 예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예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예수님이 그 집에 방문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서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 말씀 듣는 게 너무 좋아서 그 발 앞에서 말씀을 들어요. 주님을 사랑해서. 그런데 마르다는 열심히 일을 하는 거예요. 막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떻게 돼요? 짜증이 나. 예수님께 막 따지죠. 나 좀 도우라고 하라고.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충격적인 얘기를 하시죠.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그런데 여러분, 과연 마르다는 일했고 마리아는 일 안 하고 예배만 드렸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일도 하고 예배도 드렸어요. 마르다는 예배 못 드리고 일만 했어요. 제가 그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예수님이 집에 가시고 돌아가시고, 설거지 누가 했을까요? 설마 마르다가 설거지까지 했을까? 분명히 마르다가 그랬을걸요. ‘설거지는 니가 해!’ 그러면 마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면서 일 했을 것 같아요. 왜? 먼저 주님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깨달아지세요?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시간 없이 일만 하면 지치고요. 번아웃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게 뭐냐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예배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는 것은 티가 잘 안 나요. 그런데 내가 사람을 사랑해서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고 하는 것은 티가 나. 그래서 자꾸 이 두 번째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싶어 해요. 


오늘부터 잘 들으세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떼를 맡기시면서 유일하게 물어보신 것은 한 가지, ‘나를 사랑하느냐’ 였습니다. 주님이 단 한 번도 ‘내 양떼를 사랑하느냐’ 고 안 물으셨다는 것. 주일학교 교사분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하신다는 분들, 아이들이 항상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끝까지 그 일을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스펙이 중요한 것 같아도 주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여러분, 다윗 시대 그 무력이 지배하던 시대에 장수로서 최고의 스펙을 가진 사람은 골리앗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좁히면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스펙을 가진 자는 사울입니다. 사무엘상 9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인지가 나와요.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어요. 집안이 좋아요. 그의 조상이 5대까지 추적될 정도로 뼈대 있는 집안이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키는 거의 190이고 외모는 아이돌급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이보다 어깨 위가 컸대요. 이런 청년 교회에 등록해 봐요. 여기저기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여, 저 사람입니까? 그런데 어마어마한 스펙이 나오는데 눈을 씻고 읽어봐도 하나님이 ‘참 impressive하다’ 라는 감탄이 없어요. 단 하나의 comment도 없어요. 주님이 별로 감동하지 않으세요. 스펙 때문에 주님이 감동받지 않으신다는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울은 주님과 보낸 시간이 없었다는 거죠. 여러분, 이 땅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비결 알려드릴게요. 스펙보다 주님과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어떤 말씀이 있냐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한 것 같으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우리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일 것입니다. 성경은 상세하게 이 괴물 같은 골리앗의 등장을 묘사하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될 사실은 이 골리앗이 도대체 왜 등장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사실 골리앗은 불순종의 열매였습니다. 원래 가나안 땅에 거인족속인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었죠. 정탐꾼들이 그 거인족들 때문에 놀랐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낙자손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1장 22절에 이렇게 되어있네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는데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남겨둔 거예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낙 자손들을 다 진멸하라고 했는데 다 진멸하지 않고 남겨두었더니! 그러면 골리앗의 고향이 어딘지 아세요? 가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다면, 애초에 등장하지 않았을 사람이 골리앗이예요. 여러분, 내가 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가사에서는 들릴라가 나와서 삼손을 무너뜨리고 가드에는 골리앗이 나왔던 거죠. 


어쨌든 이 거인 골리앗이 등장하는 것이 사무엘상 17장 이야기인데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떱니다. 키 때문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앞인 사무엘상 16장에 이새의 집에 사무엘이 기름부으러 가서 그 유명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용모와 무엇을 보지 말라? 그 용모와 무엇을 보지 말라? 미혼 청년들 잘 들으세요. 성경 말씀에 신장을 보지 말라, 그랬어요. 그런데 다 신장 보고 있는 이야기가 17장입니다. 바로 앞에서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그랬는데 이 사무엘상 17장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의 키 보고 있어요.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요. 이 사람의 키 보고 두려워하는 거예요. 사실 골리앗이 단 한 명도 안 죽였어요. 그냥 말로만 떠들었거든요. 지레 겁먹고 있는 거예요. 


골리앗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문제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 문제가 얼마나 큰지를 봅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 골리앗의 신장을 보지 않고 골리앗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아요. 그가 다윗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왠지 이 말이 하나님께 꼭 드셨을 것 같아요. ‘이 할레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와의 이름으로 온다’ 할렐루야! 다윗은 골리앗의 크기를 보지 않아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고, 지금 다윗이 너무 화가 나는 것은 니가 뭔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행하냐는 거예요. 여러분, 이 모습이 하나님 마음에 꼭 들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이 뭐예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갓흥민’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뭐만 잘하면 ‘갓’을 갖다 붙이는데 그런 거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어떤 기억이 있냐면 제가 태어나 보니 목사님 집안이더라고요.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를 드린 집안이에요. 다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제가 한글을 깨우치고 나서는 성경을 읽는데 언제부터인가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뜻은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그 뜻을 알았는데 그냥 그 표현이 너무 좋아서 제가 어떤 일을 했냐면, 계산을 해보니까 3절 뒤에 ‘만군의 하나님’이 나와. 제가 자리를 바꿔 앉았어요. 그거 읽고 싶어서.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읽으면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여러분, 이 시대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시대,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진 이 시대에, 하나님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찾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는요. 어떤 자부심이 있냐면 ‘이 할례 받지 못한 이방 사람이’ 이 말에서 무엇을 알 수 있죠? 나는 할례 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이 있으세요? 옛날에 친구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혹시 보셨어요? 아주 폭력이 난무해 가지고 그냥 저는 좀 재미없었어요. 별로였어요. 그래서 그냥 거의 졸면서 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영화보다 은혜 받았어요. 유오성 씨가 깡패잖아요? 깡패. 그런데, 마지막에 자기가 다 지은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는 거 아세요? 그러니까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니 와 그랬노? 너 왜 변명 안 해? 왜? 니가 다 한 것도 아닌데 니가 왜 다 뒤집어써?’ 그런데 유오성 씨가 뭐라 그런 줄 아세요? ‘건달이 쪽팔리게?’ 난 은혜 받았어요. 졸다가 깼어요. 아니 건달이 쪽팔려서 그렇게 못하겠다, 건달이 저런 자존심이 있구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뭔지 아세요? 건달만한 자존심이 없어요. 우리도,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내가 집사인데, 쪽팔리게 그렇게는 못 살겠다, 내가 창피하게 그 죄는 못 짓겠다, 이런 마음만 있어도 오늘 한국 교회가 이렇게는 안 됐을 것 같아요. 건달만한 자부심이, 내가 건달인데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자부심마저 우리에게 없는 거예요. 여러분, 다윗에게는요. 나는 할례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어.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자존감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이 된 후, 왕이 되자마자 다윗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거, 아세요?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이 왕이 되거든요. 왕이 되자마자 사무엘하 5장에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가고요. 사무엘하 6장에서는 언약궤를 찾으러가고요. 사무엘하 7장에서는 나단에게 내가 하나님의 전을 짓고 싶다는 소원을 얘기해요. 이게 다윗이 왕이 되자마자 한 세 가지 일입니다. 여러분, 왕이 되자마자 국정 과제 세 가지를 얘기한 거는 평소에 이 생각을 했었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왕이 되자마자 이것부터 한 거잖아요? 3가지가 뭐라고요? 첫 번째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두 번째 방치된 언약궤를 찾으러 가고, 세 번째 하나님의 전을 짓고 싶다는 거예요. 첫 번째 사건이 사실 충격이죠. 예루살렘이 아직 이스라엘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것부터 충격 받아야 돼요. 여러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한 게 400년 전 일이예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성경에 하나 알려주는데, 그곳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땅인데, 그 한가운데 예루살렘 성이 아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거죠. 왜 그런지 아세요? 여호수아 15장 63절입니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4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역을 다 점령했는데, 오직 한 곳 예루살렘 성은 점령 못 했어요. 여부스 족속이 그때까지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 이유를 아세요? 예루살렘 성이 천연의 요새예요. 기드론 골짜기, 또 센트럴 골짜기, 400년 동안 감히 여기를 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이 여부스 족속이 자신감이 강했는지, 다윗이 이 예루살렘 성을 치러 올라갈 때 여부스 사람이 뭐라고 조롱했는지 아세요?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아무도 여기 공격 못 했다는 거예요. 여호수아도 점령 못 했어요. 지난 400년간 아무도 이곳을 점령 못 했고요. 사실 사울은 40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여기를 공격할 생각 자체를 못 해요. 다윗이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여기 쳐들어가요. 다윗에게는 거룩한 분노가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는데, 견고한 진을 치고 있는 저 세력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사람이 다윗이라고. 사울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다윗은요, 어렸을 때부터 이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에피소드를 하나 찾았어요. 여러분, 놀랍게도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잖아요? 사무엘상 17장에,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력하는데 이 다윗이, 10대 소년이 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대요. 여러분, 골리앗과 싸운 장소는 엘라 골짜기입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이 어린 애가 물맷돌 던져가지고, 기절시킨 다음에 목을 베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블레셋 사람들 노략하는데 이 애가 무섭지도 않은지 이 골리앗 사람의 머리를 들고 저벅저벅 걸어서 어디 갔대요? 얘는 왜 이 머리를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갔을까요? 제 상상입니다만, ‘다음은 너다!’ 아닐까요? 골리앗같이 꿈쩍하지 않고 지난 400년간 서 있는 견고한 성, 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이 그 머리 들고 거기까지 갔다는 이유는 나 나중에 여기 쳐들어갈 거다, 이런 뜻 아니었을까요? 여러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땅을 다 차지하지 못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다윗은 어릴 적부터 그 예루살렘이 마음에 있다가, 왕이 되자마자 거기를 쳐들어갔어요.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았을까? 


두 번째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에요? 방치되었던 언약궤. 여러분, 이것은 사무엘상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사무엘상 3장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투인데 지거든요. 그러니까 마치 부적처럼 그 당시 엘리와 홈니와 비느하스 제사장 때의 일입니다. 마치 부적처럼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갔는데 전쟁에서 패하죠. 궤를 뺏기죠. 그런데 이제 다곤 신당 앞에 뒀는데 그 다곤 신당이 막 무너지고 다곤 신들이 그래서 막 독종도 막 일어나고 그래서 벳세메스로 가는 암소 이야기 어렴풋이 들은 것 같죠? 원래 있어야 될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때부터 나와서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었어요. 사울은 40년 왕으로 통치하면서 언약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그 언약궤를 찾으러 온 거예요. 평소에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궤가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 궤가 있어야 될 데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 사람, 그래서 그거 돌아올 때 춤추며 예배한 거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다윗은 마음이 남달랐던 사람이에요.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세 번째, 그가 했던 일이 무엇이냐면, 궤를 성으로 모셔왔는데, 자기는 백향목 궁에서 자는데 하나님의 궤가 휘장에 있는 게 너무 아쉽다는 거예요. 죄송하다는... 너무 귀한 마음 아니에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너 안 된다’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의 전, 아무나 못 짓습니다. 너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너는 지을 수 없다는 거예요. 거절해요. NO 한 거예요. NO. 다윗도 하나님의 NO를 경험해요. 대신, '내가 너의 집을 세워주겠다. 너의 집에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겠다' 이 말을 듣고 사무엘gk 7장에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해요. 그런데 잘 들어보세요. 읽어보세요. 분명히 다윗도 하나님의 NO를 경험했잖아요? 안 돼. 소원에 거부당했잖아요? 그런데 사무엘gk 7장에 자기의 소원이 거절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얘기안하잖아요? 오히려 주신 것, 앞으로 나의 후손들에게 주신 약속 때문에 감사해요. 여러분, 사람이요. 누구나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고, 누구나 하나님께 못 받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가 뭐냐면요. 하나님께 받은 거 가지고 얘기 잘 안 하고요. 못 받은 거 가지고 얘기해요. 하나님, 난 왜 이렇게 얼굴이 별론가요? 난 왜 키가 안 큰가요? 나는 왜 뭐가 없나요? 대부분 못 받은 걸 가지고 얘기하는 게 우리예요. 그런데 다윗이 귀한 게 뭔지 아세요? 자기가 못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아요.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 할렐루야! 우리도 갖지 못한 것들 있잖아요? 갖지 못한 재능, 갖지 못한 학벌, 외모 따지지 마시고, 주신 것 가지고 얘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짓지 못하는데 진짜 귀한 게 뭐냐면 아들 솔로몬이 지을 수 있도록 다 준비해요. 다윗이 문짝못과 거멀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못을 준비하고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해요. 또 역대상 22장에는 무슨 말을 하냐면 내가 환란 중에 어려운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10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재목과 돌을 준비했대요. 그러면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진짜로 하나님께 아끼지 않은 사람이에요. 여러분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들 너무 많아요. 그런데 다들 마음이 달라요. 여러분 하나님께 아끼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지고 보면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누가 주신 거예요?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거죠?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이 어떻게 먹을 수 있었던 거죠? 물고기 두 마리가 고래여서가 아니라 이 아이가 자기 먹을 점심인데 계산하지 않고 드렸기 때문이죠. 제 이야기에서 죄송해요. 태어나 보니 개척교회예요. 소위 말하는 만년 개척교회. 지하, 상가 지하 아니면 2층, 3층 예배당 눅눅하고 냄새나고 습기찬 그곳에서 저희 아버지 토요일마다 철야 기도하셨어요. 이만한 강대상에서 몸 다 펴지지 않는 곳에서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하셨어요. 그러나 교회 부흥은 오지 않았어요. 우리 어머니 매일 3시에 또 기도 시간이 있으셔서 그래도 부흥은 오지 않았어요. 저희 부모님도 5남매를 두셨어요. 그때 저희가 서울 살았는데 반지하 18평짜리 방 두 칸짜리 집에 일곱 식구 살았어요. 방 하나에 엄마 아빠 막내 자고 방 하나에 우리 넷이 잤어요. 어느 날 잠이 설 들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 것을 엿듣게 됐어요. 이런 얘기예요. 당시 우리 교회가 보증금 3천만 원에 렌트 100만 원 월세 낼 땐데 그 월세 100만 원을 못 내면 보증금에서 깎여 나가잖아요? 들어보니까 교회가 계속 렌트를 못 내서 이제 몇 달 안 남았다는 얘기예요.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교회가 어려운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그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제가 나중에 크면 돈을 벌 수 있으면 제가 저 렌트비 감당하고 싶어요’ 하나님 은혜로 좋은 대학에 입학을 했고, 3월에 입학했는데 4월부터 과외를 3개씩 했어요. 그 당시 시세가요. 일주일에 두 번 가서 가르치면 30만 원 주고 일주일에 세 번 가서 가르치면 40만 원 줄 때요. 제가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과외를 두 개 하고 세 번 가는 과외를 하나 하면 정확히 100만 원이에요. 제가 매달 과외 3개 한 거 헌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요. 헌금할 때마다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너무너무 기쁘더라고. 한 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계산하지 않았어. 그뿐인가요? 대학 가서 운전면허증 따서요. 봉고차 몰았어요. 성도님들 많지 않으니까 주일 아침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성도님들 모셔오고 오후 예배 끝나고 나면 집에 모셔다 드렸어요. 원래 우리 아버지가 하던 일을 제가 했어요. 계산하지 않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많은 은혜를 주고 계시더라고요. 하나님께 계산하지 않고 드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더라고요. 


출애굽기 35장을 보면, 성막을 만들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막 가져오라 그래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데 제가 참 감동이 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가 가져왔대요. 여러분, 이게 왜 감동인 줄 아세요? 이 실과 가죽은요, 옷을 만드는 재료고요, 신발을 만드는 재료거든요. 출애굽기 35장의 배경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하는 중이에요. 광야 길을 걷다가 그 모래바람에 옷이 해어지면 실이 있어야 돼요. 이 실로 옷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광야의 모래밭을 걷다가, 자갈밭을 걷다가 그 가죽 신발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하면 이 가죽을 가지고 있어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이 가죽으로 신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감동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고 가져오라고 하시니 세상에 이들이 앞으로 옷 만들어야 될 실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거예요. 앞으로 신발을 만들어야 될 가죽을 아까워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드렸다는 거예요. 여러분, 노예 시절에 언제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신발 신어봤겠어요? 해달의 가죽은 패션의 완성이 아니었겠어요? 이거 드리기 쉽지 않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이거 있어야 우리 자식 옷 만들어 입힌다니깐요. 이거 있어야 우리 자식 신발 입힌다니깐요. 그런데요. 이들이 이거를 아까워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다고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 알려드릴게요. 신명기 8장 4절입니다. ‘이 40년 동안에 내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내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고’ 제가 눈물이 울컥 났어요. 40년 동안 모래바람에 의복이 낡아져야 정상인데요. 이상하죠? 의복이 낡아지지가 않아요. 40년간 그 돌밭을 걸어가면 신발이 떨어져야 정상인데요. 신발이 이상하게 떨어지지 않아요. 그 이유를 알려드릴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산하지 않고 앞으로 옷 만들어 입을 실을 하나님께 드렸거든요. 앞으로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가죽을 하나님 성막을 위하여 드려버렸더니, 하나님이 정말 40년간 그들의 옷을, 그들의 신발을 책임지셨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주님께 여러분의 것 드리면, 인생이 어려워질 것 같으세요? 내 미래를 위한 것, 주님께 깨서 드리면, 인생이 어려워질 것 같으세요? 아니에요. 주님이 내 인생 책임지세요. 막 헌금 많이 드리는 사람 막 푼수 같고, 주책 같아요? 주책 맞아요. 주님이 책임지세요! 제가 이 설교하고 우리 교회 성도인들 많은 분들이 카톡 프로필을 ‘주책 인생’으로 바꿨더라고. 바꾸세요. 


다윗은요. 주책 인생이었어! 주님께 아까워하지 않고 드렸어! 그랬더니, 그의 삶을 하나님이 책임지셨어! 여러분, 다윗의 삶을 보면 하나님 마음에 꼭 맞을 것 같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다윗이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우리예요. 지금도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다윗과 같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 이런 말씀을 들으면 도전이 돼야죠. 나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 돼야겠다. 작은 일은 작은 게 아니에요. small에 all이 들어있다고요. 내가 하는 작은 일에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SNS만 하지 마시고 SNS 영어잖아요. 실수로 한글을 한번 쳐보세요. '눈'이에요. '눈' 


우리는 사람들의 SNS '눈'을 의식하잖아요? 사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해야 돼요. 하나님과 즐거이 교제했던 다윗처럼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견고한 진에 대한 분노가 있으셔야 돼요.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되고 춤추는 예배자이기를 원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세요. 하나님께 아끼지 않는 자 되신다면, 이 시대의 다윗과 같은 사람 찾으실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여러분 한 단계 한 단계 높이시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방법은요. 기가 막혀요. 세상은 한 단계씩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요. 맨 밑에 있는 사람을 맨 위로 올리세요. 요셉 보세요. 죄수였던 사람을 총리로 올려버려요. 할렐루야! 무슨 수로? 가난한 소년이 총리가 돼요. 정상적인 루트는 뭐예요? 외국으로 유학 가야 돼. 유학 가 가지고 외국 대학 나와 가지고,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야 돼. 그러면 얘가 총리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돼요. 1칸. 1칸 가서 안 돼. 그런데 하나님이 한번에 그를 올려버리시잖아요? 다윗, 목동이었던 사람을 한 번에 울려버리시잖아요? .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주님께 있어요. 주님이 나에게, 요셉을 제일 밑바닥에 있던 요셉을 밀어 올리시고, 제일 뒤에 있던 다윗을 맨 앞으로 올리신 주님, 내게도, 내가 주님 마음에 합당하기만 하면, 나의 삶에도 그렇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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