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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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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본문 : 마태복음 6장 9-13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면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생활속에서 혹은 기도속에서 말끝마다 ‘하나님이 뜻대로 행하겠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외칩니다. 

기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뜻대로 해주셨다’하면서 감사하고 슬픈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이겠지 뭐’ 하면서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러는지 혹은 모르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자주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뜻을 외쳐 댑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발견하는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선택하고 행할 수 있을까? 심히 고민하며 여기저기 조언도 구하고 책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하면서 만족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도 책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몰라도 나는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시간에 우리 주님도 우리를 향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배 때마다 혹은 일주일도 수십번씩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내 욕망이고 내 소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합니다. 

주기도문의 첫번째 내용부터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내용도 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어진 것같이 이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주옵소서” 

나의 뜻 나의 소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요구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원해서기 보다는 나의 욕심에 의해 내가 그것을 구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장래 일이나 미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이 내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누구나가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도 치러 다니고 예언기도도 받으러 다닙니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는 ‘헬리헤성 컴퓨터 점’이 유행해서 컴퓨터 점을 친 용지를 가지고 친구들끼리 돌려 보며 재미있다고 히시닥 거립니다. 

요새 또한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시험이 있어 상당수 신앙좋은 열성파 어머니들이 “우리 아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가면 붙을 것인지” 용한 예수 점쟁이들에게 예언기도 받으로 다닙니다. 

그리고 무슨 대답이 그 입에서 나올까 하고 가슴 졸이면서 기다립니다. 

행여나 나에게 어떤 희망적인 대답을 해 주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의 미래를 알아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 점쟁이에게서 나오는 말 한마디를 오들오들 떨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왂게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신 18:9-)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앞일을 알아 내려는 동기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미래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해롭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나의 미래를 알아서 무엇합니까? 

가령 내년에 나의 자식이 죽는다고 합시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내 자식을 살릴 수 있습니까?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알았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삼상 28장에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옵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자 사울이 겁이 나서 신접한 여인 곧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 여인을 통해 사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일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빼앗아 다윗왕에게 주고 그와 그의 아들들이 내일 전쟁에서 다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은 완전히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자신의 미래의 일을 알자 그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몰락의 시작입니다. 

아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알고 또 언제 죽을 것을 알므로 그동안 그날을 준비하여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하며 전도하며 좋은 일을 하겠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일들은 나의 죽음에 대한 날들을 알지 못하고도 지금 그리고 매일의 삶가운데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일 죽어서 주님 앞에 섰을때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으로 오늘을 살면 됩니다.


두번째로 나의 미래를 알면 그 결과로 인해 하나님의 향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집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고후 5장 7절에서 자기의 신앙생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 

신앙생활이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내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실 것으로 신뢰하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서 믿음으로 담대하게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 기도 받으로 다니는 것이나 점을 치는 것은 앞일을 미리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합시다. 

우리의 앞일을 알아 놓으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 믿음을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내가 나의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장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도를 구합니다. 

나의 장래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전능하신 그분의 손에 맡기고 늘 의지하게 됩니다. 

나의 연약함 부족함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붙들고 도와 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의 미래를 알면 하나님께 부탁하지도 기도도 안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아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를 아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미래를 내가 알지 못함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미래는 내 수중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시다. 

어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나 욕망을 가지고 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이땅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호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합니다.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만 합니다. 

단지 나의 어떤 이기적인 욕심을 가지고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해 놓고 하는 말이 “이왕이면 하나님의 뜻이 내뜻과 같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뜻이 내뜻과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같으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아야 합니다. 

나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오늘 나의 친구를 만나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내가 오늘 불고기가 먹고 싶어서 요리를 할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성경은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달라고 구하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뜻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믿고 구원 얻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같이 성경을 찾아 봅시다. 

요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의 뜻은 택함 받은 우리가 다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믿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내가 거룩해지지 않고 영적인 성장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든지 거룩하고 성결한 생활을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에 성경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외워 볼까요? 

살전 5:17-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항상 기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십니까? 

모든 일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십니까? 

성경은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약 1:20) 

결국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주님 믿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때 하나님은 만족해하십니다. 

성도들의 삶속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기도가 있을때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변화되어 갈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성경은 내가 영생 얻는 것, 내가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 내가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나타나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데 성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령 내가 직장을 선택하는데 두개의 직장중에 어느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는 문제입니다. 

결혼 상대자가 나타났는데 그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우리가 고민하는 하나님의 뜻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저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합니다.


첫째로 성경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때 언제나 성경을 묵상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결정을 내리기에 급한데 언제 성경을 읽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나타나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놓고 기도할때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매일의 삶속에서 말씀에 영향을 많이 받지 못하시는 분들도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입니다. 

이것을 선택하여 이렇게 하면 참 편합니다.   그리고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일은 참 올바른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자면 어렵고 고통이 뒤따릅니다. 

이런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때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벧전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일이지만 고통이 뒤따르는 경우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가? 할때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고통이 뒤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죄가 있다면 죄를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옆에서 말씀하시고 지시하셔도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바치고 헌신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제 저에게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를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시 25:4-5)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다윗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주의 도를 제게 보여 주십시오. 주의 길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의 진리로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주의 교훈으로 나를 교훈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원하는 진지한 기도를 드릴때 주님은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루터는 깊은 근심에 쌓였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온전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루터의 마음속에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하다. 왜냐하면 종교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 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뜻은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신하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가운데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번재로 기도하면서 더 나아가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 앞에 나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은 나의 뜻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뜻, 자기의 소원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모범을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 당하기 전날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은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깊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잔이 내게서 물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쓴잔을 당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원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쓰리고 아픈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원입니다. 

주님은 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원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내 원을 박살내 주시옵소서. 내 원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원이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라고 밤이 맞도록 기도했습니다. 

주님도 인간적인 고통 때문에 그잔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하기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내가 열심히 하면 내 소원을 따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위대한 응답을 하십니다. 

내가 요청한 응답보다 더 위대한 응답입니다. 

그것은 내가 기도할때 내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이 못된 내가 부서지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주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도 응답해 주지만 그보다 앞서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원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주여 내 속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세력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처럼 내 뜻은 무너지고 우리 아버지의 뜻이 내속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모든 기도의 원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내 소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어떤 철학자가 말하기를 “기도란 하나님이 내게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총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꾸어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오히려 은총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고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에게 우리가 잘 아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시작되어서 많은 병사가 죽을 때마다 동족이 죽는 쓰라린 아픔때문에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북군은 병사의 숫자도 많고 또 여러가지 여건으로 보아서 남군보다 다 유리한대도 남군의 용장 로버트 리 장군에게 늘 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하루에 두 세시간씩 기도합니다. 

어느 날 북군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위로합니다. 

리셉선장에서 같이 이야기하다가 한 북군의 교회 대표가 링컨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각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북군편이 되어서 북군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온 교회가 날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랬을때 링컨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어서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대통령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내 축복의 창고를 채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막힘이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뜻이 나에게도 막힘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처럼 내 자신을 부인하고 주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만을 앞세워 거기에 복종하며 나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한가지 권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이 문제 때문에 너무 고민하고 초조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이루어 나갑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바른 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나의 능력, 나의 환경, 나의 소원을 살피시면서 때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실 내 문제이기 보다는 주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요 10장이나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게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양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양은 얼마나 무지합니까? 

이 양이 얼마나 무력합니까? 

양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양은 내어 보내면 집을 못찾습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 양과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어 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문제 앞에 설때마다 우리는 당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양처럼 길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길을 잃어 버릴때 그것은 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이 길을 잃어 버리는 것으로 인해서 사실은 목자가 더 많이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양이 길을 잃어 버리더라도 목자는 다시 그 양을 제 길로 데려다 놓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비록 잘못된 결정을 하더라도 주님은 다시 나를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결코 주님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설령 내가 잘못 결정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우리들이 두려워하거나 초조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순수하게 주님 앞에 서 있기만 하면 결국 주님은 나를 잡아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으실 것이라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인생의 사사건건의 문제 앞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 뜻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너무 지나치게 초조해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 일이 잘못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과 결혼했다가 후일에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혹시 하나님의 뜻이 나라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학공부를 하라는 것이나 아닐까?’ 

 '내 자신을 전부 팔아 헌금하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때 자식이 최선의 좋은 것으로 잘되길 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우리의 취미나 능력 그리고 환경과 우리의 앞일의 모든 것 까지 모두 다 아시며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초조해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까지 맡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예로서 한가지만 이야기를 드리고 오늘 설교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엡 1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내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 사도가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그가 다메섹으로 갈때 하나님께서 그를 때려 눕히시고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 당시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바울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 자신이 자기가 이스라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다니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당신은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요’라고 말하면서 기름을 붓습니다. 

사울 자신은 사실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쓰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결국 그를 쓰신 것입니다. 

이 일은 누가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보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고민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만일 성실하게 날마다의 삶을 살고 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신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생활 가운데 일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인도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까지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의 의지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이나 노력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의 뜻을 이 세계의 역사와 나라와 개인속에 이루시기 위해서 주권적인 뜻으로 나라와 개인들을 섭리하십니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우리의 책임있는 선택과 결단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소원에 맞도록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바른 삶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이 이땅위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지배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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