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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모세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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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세의 결단

본문: 사도행전 7장 20-23절, 히브리서 11장 24-26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람이 자기가 가진 기득권이나 자기의 이익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들이 자기가 가진 기득권이나 이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또한 이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공산주의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브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싸움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도 빼앗으려는 것, 지키려는 것의 싸움입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 한참 시끄럽고 떠들썩한 이동통신 문제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합법적인 특권을 이용하여 자기의 사돈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위치와 특권이 안 주어져서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할 위치라도 너와 나나 모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조원의 돈을 만지고 벌 수 있는 이익을 물론 여론에 의해서 할 수 없이 그랬지만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모세 부모의 믿음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모세는 마땅히 죽어야만 될 운명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구원받고 더구나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위치와 특권을 포기했습니다.

더구나 세계 제일의 강대국인 애굽의 왕이 될 수 있는 위치와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는데 40세까지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2절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그 당시 궁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가 배운 애굽 사람의 학술은 이방신적이며 세속적인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중에;서의 이 40년간의 교육이 모세의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로부터 받아 마음 속 깊이 심어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자기 동족에 대한 사랑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사도행전 7장 23절을 보면 "나의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 볼 생각이 나더니"

애굽의 궁중에서 40년동안 하나님 없는 애굽의 이방신적이고 사람 중심의 교육을 받았지만 이 교육이 모세의 마음속에 품어져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사랑을 결코 빼앗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그의 친어머니를 통해서 교육받은 기간은 불과 4년 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동안에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과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람이 심기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랐습니까?

그래서 유아 교육이 중요합니다.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 부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 여러분! 빨리 손을 쓰십시요. 마귀가 당신의 자녀들에게 죄를 가르치기 전에 하얀 종이 같은 그 깨끗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신앙을 빨리 심으십시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빨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영아나 유치부 교육을 별로 중요시 안하고 신경을 안 씁니다.

큰일 날 일입니다.

가끔 심방을 가보면 남편은 예수 믿지 않고 어머니가 유치부에 4,5살 난 아이만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 꼬마 아이가 식사 때만 되면 아빠에게 "왜 아빠는 밥 먹을 때 기도 안하고 먹느냐?"고 질문합니다.

어떤 가정은 금년에 처음 믿는 가정인데 심방 간다고 아침에 전화에 전화해 놓고 오후 3시쯤 갔을 때 5살난 딸아이가 하루종일 목사님 오신다고 기다립니다.

저희가 심방 가니까 성경, 찬송과 갖다 놓고 예배 드리려고 무릎 꿇고 저희 앞에 앉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빨리 신앙의 교육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귀가 손을 쓰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을 심어 줘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아이들을 7세까지만, (7세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우리 카톨릭 교회에 맡겨라 그리하면 그들을 일평생 카톨릭 신자로 만들겠다" 


어린아이의 신앙 교육에 대해 무관심하는 부모님들이여

우리의 아이들에게 빨리 하나님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기 바랍니다.


모세는 그가 아주 어린 시절에 짧게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하나님과 조국 사랑에 대한 교육이 그에게 중대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모세는 합법적으로 애굽의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이 되는 조건은 두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적자이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후궁이 아닌 정실 부인 왕비에게서 태어난 아이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왕은 전통적으로 남자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양어머니인 공주는 바로의 무남독녀 외딸입니다.

그녀는 왕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여자이기 때문에 자기의 배다른 형제와 결혼하여 남편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주의 양아들인 모세가 애굽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위대한 결단을 통하여 애굽의 왕 되는 거절합니다.

고대 역사에 의하면 모세가 바로의 후계자로 왕위에 즉위할 수 있는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합니다.

이것을 가르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 봄이라"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위대한 결단 세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 애굽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명예가 있다면 아마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칭이었을 것입니다.

이 위치는 한나라의 왕위를 계승하는 위치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꿈 꿀 수 있는 야망 가운데 이보다 더 높은 야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모세는 자기를 기른 그 공주, 양어머니에 대한 애정도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명예도, 이 야망도, 인간에 대한 애정도 더 높은 가치를 선택하기 위하여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명예와 야망이 그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성경은 야망 그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좋은 야망, 선한 야망도 있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나도 사랑하며 그들을 지도하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장소로 가게 하는 것.  그것은 선한 야망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주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이러 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것 그것은 선한 야망입니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명예나 어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보다 중요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가로 막는 벽이 될 때 그것은 마땅히 거절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명예나 야망, 권력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흔들리게 한다면 그것은 그 순간부터 우상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는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합니까?

나의 신앙 생활에 방해가 되는 나쁜 습관들, 죄악을, 모두 거절하십니까?

잠깐의 즐거움과 이익 때문에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함으로 나중에 신앙까지도 잃어 버리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군대에 가면 제일 먼저 부닥치는 것이 술 문제입니다.

군대의 회식은 거의 다 술파티인데 신병 때 고참들이 술을 권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술을 못합니다"라고 말하면 고참들이 "임마 ! 나도 예수쟁이야. 괜찮아 먹어!"라고 유혹 합니다.

그래도 거절하면 위협하기도 하고 기압을 주기도 하고 구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믿는 청년들이 고참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먹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술고래가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되먄 그리스도인인 쫄병들에게 더 악날하게 술 먹는 것을 강조합니다.

약간의 고통과 어려움 때문에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앙은 완전히 팔아 먹고 제대할 때는 완전한 불신자가 됩니다.

참된 신앙은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들을 거절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삶속에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 했습니다.

히 11:25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의 결단은 거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단하는 믿음은 곧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해야 할 것을 취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 믿으면서 내가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은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거짓말도 안하고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이런 저런 나쁜 일도 안 합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봉사도 안 합니다.

사랑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도 사모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적극적으로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안 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결단은 안 하는 것을 안해야 하지만, 해야 될 것을 더욱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하고 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는 사람은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에게 지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나를 향하여 욕하고 손해 끼치는 사람을 싫어 합니다.

그래서 같이 욕하고 같이 미워합니다.

같이 싸우지 않고 보복하지 않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같이 보복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적극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수 안에서 축복을 얻기 위해서 매달리며 붙잡은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붙잡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기뻐했습니다.

무엇보다 더 기뻐했습니까?

잠시 죄악의 낙을 즐기는 것보다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있어서 놀라운 결단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까지는 죄악의 낙이 훨씬 더 좋아 합니다.

죄를 짓는데에는 즐거음이 있고 낙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죄를 짓습니까?

죄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낭만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나에게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쾌락 앞에 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잠시'라는 것입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죄의 허무와고통의 열매를 씹어야만 합니다.

죄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유혹의 미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잠시 죄악의 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바른 안목, 바른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욱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는 무엇 하기를 더 좋아하십니까?

나의 이익과 쾌락을 즐기기를 더 좋아 하십니까?

아니면, 비록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싲는 일을 하기를 더 좋아하십니까?

죄의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그 후에는 파멸이 있고 고통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약간의 고난은 있지만 그 후에는 영광이 있고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셋째로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지금의 자기 삶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아주 흥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모세가 누구를 위해서 능욕을 받았다고 말씀합니까?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세는 아직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앞으로 오셔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 간다는 뜻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삶입니까?

본문 히브리서 11장 25,26절을 보면 

25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과 26절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곧 그리스도로 표기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산 삶을 그리스도를 위한 삶,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끔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까?

단순히 교회에 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합니까?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주님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분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사셨고 또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하고 주께서 섬기신 사람들을 우리도 섬기고 주께서 인도하시기를 원했던 사람들을 우리도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삶입니다.

예배당을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몰랐습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삶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신 그 사람들을 믿음 안에서 키우고 양육하고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그 사람이 신앙이 성장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눈물과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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