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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남] 네 마음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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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미주동부노회 제70회기 춘계 정기노회가 4월 27일(월) 오후 4시에 뉴저지 팰리세이드파크 소재 서울영광교회(담임 홍상화 목사)에서 열렸다. 노회장 이창남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이 목사의 설교를 정리한 것이다.


설교 제목: 네 마음을 지키라

본문: 잠언 4장 23절

설교: 이창남 목사


오늘 본문 말씀은 ‘내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은 감정적인 열정이나 지적인 동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 마음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전심’이라는 말은 마음 전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은 마음 전체를 다해 하나님을 구하고 계십니까?


혹시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하고 피곤해서 잘게 쪼개진 마음으로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어떤 일 때문에 산산이 부서진 마음으로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전심이라는 것은 갈라지지 않은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이 이중적일 때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투명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숨김이 없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악한 것이 사람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살피는 사람은 죄의 뿌리를 먼저 발견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정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영적 민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시편 51편 1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을 정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적인 사람이며,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미제라블과 자베르의 마음


여러분, ‘레미제라블’을 잘 아실 것입니다.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쓴 고전입니다.


그 작품에 장발장이 나옵니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 하나를 훔쳤다가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19년이 지나 사회로 나왔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도둑으로 보았습니다. 사회는 그를 냉대했고, 계속 범죄자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 장발장의 인생이 극적으로 변화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신부를 만나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 장발장은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이름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장발장을 끝까지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베르 경감입니다. 자베르는 장발장을 계속 과거의 범죄자로만 봅니다.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다”라는 생각으로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자베르가 장발장을 조사하면 할수록 장발장에게서 좋은 이야기, 미담만 나옵니다. 심지어 장발장은 자베르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그의 목숨을 살려 줍니다.


그럼에도 자베르는 장발장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발장이 선한 사람으로 변하면, 자베르가 붙들고 있던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자베르 안에는 “나는 의롭고, 너는 죄인이다”라는 구도가 굳어 있었습니다.


그 구도가 깨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타인의 구원조차 불편해하는 위선의 모습입니다.


장발장은 변화된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베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위선의 벽에 부딪혀 세느강에 몸을 던집니다.


이 모습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장발장은 영원히 범죄자여야 하고, 자베르는 늘 법의 집행자여야 한다는 구도 속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의롭고 너는 죄인이다”라는 마음의 틀이 깨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그런 고정된 틀을 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변화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셨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베르 같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 저도 죄인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베르는 그 자리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요나의 마음


요나 선지자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나서 4장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


그러자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꼬여 있습니까? 요나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 기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니 니느웨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는 자기 프레임 속에 하나님을 넣어 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프레임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신 분입니다.


요나가 보기에 니느웨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금식하며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니느웨 백성의 구원보다 자기 감정의 보상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더 위에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이 자기 분노보다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긍휼로 니느웨를 품으시는데, 요나는 그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신앙생활과 목회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나의 공정심과 감정보다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 프레임 밖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니느웨 성 전체가 회개하는데, 정작 회개하지 못한 사람은 요나였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던 요나 자신이 끝까지 자기 고집을 깨뜨리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마음의 문제


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중진 아홉 명이 있었는데, 그중 다섯 명이 계속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으려 했습니다. 저는 교회 재정이나 물질 문제에는 손대지 않으려고 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런저런 문제를 만들어 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허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이상하게 평온했습니다. 그들을 향해 미워하기보다 기도만 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소천하시고, 어떤 분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결국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하게 목회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한 분을 장로로 세운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다른 교회에서 이명해 오신 분이었고, 여러 면에서 장로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무엇을 말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다른 교회로 나갔습니다. 제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그분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젊었을 때 있던 질병이 나이가 들어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병문안을 가려고 했더니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주변에 친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소천하기 얼마 전, 가족들을 다 불러 놓고 웃으면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마음속에 “내가 당한 것이 얼마인데?”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내 분노와 감정보다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이 참 공평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나의 분노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죄의 문제도 마음에 있고, 생명의 근원도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목사님들,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안녕하십니까? 부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성령의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이중적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자기 의와 고정된 프레임에 갇히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키는 사람,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는 사람, 다른 사람의 변화와 구원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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