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꿈은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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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꿈은 결코 죽지 않는다
본문 : 창세기 37장 12-24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런던 뉴 칼리지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1863년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런던 시외의 조그만 교회에서는 그를 아시아의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는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하여 대동강을 거쳐 평양까지 왔지만 조선 관리와 미국 선원들 사이에 싸움이 붙어 결국에는 조선에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27살의 젊은 나이로 대동강변에서 목이 잘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가 바로 토마스 목사님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꿈과 죽음은 헛되지 않아서 조선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생겨 났고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대교 앞에 절두산 성지가 있습니다.
조선 말에 대원군 통치 시절에 이 땅에 복음을 받아 들인 팔천명의 사람의 머리가 잘려 참수형을 당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병인 양요라고 하는데 ‘머리가 잘린다’는 뜻으로 그 곳이 이름이 ‘절두산’입니다.
이 땅의 초창기에 많은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복음 때문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 때문에 젊은 피를 흘리고 죽어 갔습니다.
단지 그 땅이 예수 믿는 사람을 가득 찬 복음화되는 꿈을 가지고 죽어 갔습니다.
그 꿈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하는데 그 결실은 아름답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라크에서 우리 나라의 가나무역 직원인 김선일 형제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어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중동 지방 선교사를 꿈꾸면서 아랍어를 전공하여 중동에 복음 전할 준비를 하며 꿈을 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꿈을 펼치기도 전에 그만 죽음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애통한 일입니까?
우리 대한 민국 국민이 얼마나 비통하고 울분에 찼습니까?
그러나 먼 훗날 이라크가 복음화 되었을때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한국의 김선일 형제의 순교의 피가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가져왔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 땅의 복음화를 위해 순교의 재물이 되었습니다.
그 땅이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순교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지만 그 꿈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꿈의 사람은 동시에 고난의 사람입니다.
역사속에서 위대한 꿈을 이룬 사람들은 고난의 긴 여정을 통과하면서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를 원하지만 고난는 원하지 않습니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과정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지 않으면 그 꿈은 개꿈으로 끝나 버립니다.
꿈이 진정한 비젼이 되려면 그 꿈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고난의 값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은 고난을 지나서 이루어집니다.
고난 없이 얻어지는 꿈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요셉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꿈 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꾸는 사람은 미움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꿈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것을 방해하는 도전이 있습니다.
그 꿈을 없애려고 하는 사단의 음모와 도전이 생깁니다.
악의 세력들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 우리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주고 어려움을 주어 꿈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인데 하나님이 주신 꿈이 죽는다면 그 사람이 죽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 가는 인생이 성공합니다.
정말 멋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순종하는 성실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12, 13절,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 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러 심부름을 시킵니다.
세겜에서 양 떼를 치고 있는 형들에게 가서 형들과 양 떼가 잘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합니다.
요셉은 ‘내가 그리하겠나이다’하면서 순종합니다.
요셉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명을 따라 세겜까지 갑니다.
요셉이 있는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80km나되는 먼 곳입니다.
그 곳에 갔더니 형들이 없어 헤매다가 도단에 있다는 말을 듣고 25km나 더 갑니다.
그의 모습을 보세요. 그는 17세 소년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교통도 나쁘고 험난한 곳인데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갑니다.
아마 며칠을 걸렸을 겁니다.
더구나 세겜은 자기의 형들이 누이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인하여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원수관계로 놓여 있는 곳입니다. 아주 위험한 장소입니다.
요셉은 지금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형들이 그를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몰매를 맞을 수 있는 험악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순종합니다.
그는 형들이 미워하든, 위험에 처하든,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할 일만은 묵묵히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세겜까지 갔다가 없으면 그냥 돌아 올텐데 기어히 도단까지 찾아갑니다.
성실한 요셉입니다.
요셉은 환경이 변해도 바뀌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바뀌지 않고, 처음에 맡은 일은 반드시
끝까지 해내고 마는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람들은 다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배우거나 돈 많은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자기의 맡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실하고 성실하게 주님의 뜻을 이행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그 일은 크거나 유별난 일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 생활에서 평상시에도 일어나는 지극히 작은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화려한 사건이 아닙니다.
요란스러운 행사를 통해서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매일 하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일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꿈이 전개될 때에 때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 벌어집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아래로 떨어지는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18-20절, “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머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이 형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날을 헤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요셉은 반가와서 형들을 향해 기쁨의 소리를 쳤을 덴데, 그 기대와는 달리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는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경멸적인 조롱하는 말입니다.
“꿈꾸는 나쁜 자식, 꿈만 꾸었다 하면 이상한 개 꿈을 꾸는 그런 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라고 말합니다.
한 피를 나눈 자기 동생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동생을 죽이는 것은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런데 이것은 무서운 생각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요셉의 꿈을 좌절시키려는 생각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꿈을 무너 뜨리려는 무서운 영적 음모입니다.
하나님의 꿈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 꿈을 와해시키고 무너 뜨리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사단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는 악하고 불의한 세력들의 방해와 도전을 받으면서 나아갑니다.
저는 이민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때로는 무서운 생각들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나 한국인 사회를 보면 대견할 정도로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장과 발전에서는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성장과 동시에 그것을 쉽게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건물을 잘 지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면서도 동시에 올라가는 건물을 자기 손으로 무너 뜨립니다.
이민 교회를 보세요.
열심있는 성도들에 의해 교회가 개척 설립되어 아름답게 성장합니다.
그런데 또한 그들에 의해 교회가 분열과 붕괴를 겪습니다.
자신의 모든 정열과 노력과 돈을 드려 세운 교회를 순식간에 스스로 허물어 버립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애쓰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갈등이 생겨 교회를 떠날 때에는 자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기가 충성한 교회를 욕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교인들을 떠나게 만들고 교회를 무너 뜨려 문을 닫게 하려고 합니다.
죽도록 쏟은 온갖 정성이 오히려 교회와 다른 성도들을 향한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자기자신이 세운 자신의 교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범죄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스스로 마귀의 하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 대한 미움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전복시키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스스로 사단의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기를 꾀하면서 한 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을 계획합니다.
여기 인간의 모습을 보세요
사람들은 악한 일에는 쉽게 잘 뭉칩니다.
좋은 일은 단결이 잘 안 되는 데 악한 일에는 단결을 잘합니다.
왜 이토록 요셉을 죽이는데 한 마음이 되었을까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더군나 동생입니다.
이들은 요셉에 대한 원한이 감추어져 있다가 기회를 포착하니까 폭발한 것입니다.
인간의 감추었던 감정과 원한은 언젠가는 폭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터져 버립니다.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에는 원한을 터뜨릴 수 없었습니다.
동생에게 나쁜 말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멀리 떠나 있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쁜 일을 도모합니다
얼마나 인간의 모습이 사악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비단 요셉의 형들만의 모습입니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 자신도 똑 같습니다. 우리도 요셉의 형들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꿈을 간섭합니다.
그리고 남의 꿈이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나 보려고 합니다.
꿈꾸는 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참 무섭습니다.
인간은 선한 일에는 열심을 내지 않고 악한 일에는 열심을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미움이 나에게 왔을 때 절대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사단은 우리를 잡아 먹겠다고 숨어서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꿈으로 펼쳐 주실 때에 우리 앞에 화려한 꽃밭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너 뜨리려는 사탄의 공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까?
가장 가까운 피를 나눈 형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때로 우리의 꿈에 가장 큰 치명타를 주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꿈을 좌절 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세워 주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아론과 훌이 모셍의 손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격려 하면 도와 주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서로 형통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좋은 사람들을 주는 것은 축복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나를 세워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내 주위에 나를 도와 주고 나의 꿈을 성취시키는 사람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의 꿈을 좌절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꿈의 성취를 도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떨어집니다.
성경에서 구덩이는 희망이 없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희망이 없는 곳, 희망이 완전히 차단된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지옥 아닙니까?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입구에 가니까 이런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 오는 자는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웅덩이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요셉은 희망이 없는 곳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요셉이 껶어야 할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이 구덩이는 그가 앞으로 당할 환난과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구덩이는 누군가 줄을 내려 주면 올라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는 앞으로 더 깊은 구덩이 사람이 준 줄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집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과 억울한 누명, 가장 악명 높은 시위대의 감옥 살이라는 인생의 밑바닥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사람의 도움은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헤어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람이 꺼내 줄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뜨리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끄집어 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주 구덩이에 빠집니다.
그래서 갑자기 인생의 희망이 차단 당하는 절망을 경험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높이 올라가는 꿈을 가진 사람일수록 떨어지는 구덩이가 깊습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 큰 꿈꾸는 자는 시련의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 당한다고 결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마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꿈을 가졌는데 왜 나에게는 고통이 있지!”하면서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그 속에서 철저히 자기 자신이 깨집니다.
나는 무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단 1분 1초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내가 가진 그 꿈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꿈을 지켜 주십니다.
요셉도 그렇게 지켜 주셨습니다.
꿈을 가진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번째로, 고통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때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려고 합니다.
21,22절,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을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그 아비에게 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거룩한 꿈을 좌절시키려는 사악한 무리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갑니다.
요셉이 죽을 상황속에서 르우벤이 달려 들어 말려 요셉은 죽음을 모면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상인들이 지나가니까 유다가 요셉을 팔자고 제안합니다.
이 모든 사건의 속에는 요셉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솜씨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계획하고 실행하지만 이 속에는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이 우연히 된 것 같습니다.
우연히 그 곳에 이스마엘 상인들이 지나 갑니다.
형들이 요셉을 그들에게 팝니다.
우연히 그는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갑니다.
거기서 모함을 받고 감옥에 들어 가고, 또 그 감옥 속에서 우연히 애굽의 두 장관을 만나고,
이 모든 일이 있었기에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요셉에게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는 고통 같은 우연한 일들이 잘 풀려 애굽의 총리자리에 까지 오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치 흩어진 구슬들을 모아서 실을 가지고 하나씩 꿰어 나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우연한 사건들을 엮어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절묘한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이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의 능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재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노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우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납니다.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power ball 맞는 것도 안 맞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납니다.
때로는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앞에 닥친 고난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나는 하는 일마다 안 되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길을 막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복잡한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고, 지금 당장 일이 안 풀린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어렵다고 낙담하거나 괴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청사진을 가지고 하나님을 일을 추진해 나가십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청사진을 믿고 하나님의 솜씨를 의지라고 믿고 맡길 때 때가 되면 하나님의 걸작품이 탕생하게 됩니다.
여자들이 뜨개질 할 때 보세요.
뜨개질하는 과정이 이상합니다.
어떤 때는 빨간 실이 나왔다가 어떤 때는 파란 실이 나옵니다.
왔다 갔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뜨개질 하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뜨개질이 다 완성되면 얼마나 멋 있습니까?
거기에는 온갖 동물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혼돈을 일으칩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통과하고 어떤 때는 해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미래도 불투명하고 결론도 없고 모든 것이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이루신 결론을 보세요.
너무나 절묘하고 타이밍이 딱 맞습니다.
나에게도 알맞습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애굽에 팔려간 꿈쟁이 요셉, 그러나 그는 결코 팔려간 꿈쟁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솜씨를 멋있게 펼쳐 나가는 도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이 미국 땅에 보내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왜 미국 땅에 보냈습니까?
그것도 하필이면 이 필라델피아로입니까?
더구나 조그만 엘림 교회로 입니까?
저는 미국에서 살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유학오는 것은 꿈이었지만 미국에 사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이곳 필라델피아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뉴욕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도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 가려고 했습니다.
서울의 교회에서 “우리가 만장일치로 청빙을 가결했는데 왜 안 오시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갔습니다.
안 가고 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와 우리 엘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꿈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되기 전에 죽음의 처소를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외로울 때 그 때가 하나님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실 때입니다.
요셉이 죽게 된 것을 막으시고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유다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구덩이에서 지내었던 그 밤은 요셉에게 있어서 패배의 밤이 아니라 승리의 밤이었습니다.
요셉이 원하지 않은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하십니다.
혹시 내가 빈 우물 속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극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르우벤과 유다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혹시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가는 어려운 상황이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굽으로 향해 가는 길입니다.
모함을 받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감옥과 같은 고통의 상황에 들어 갈찌라도 결코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감옥에 들어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는 이 세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더욱 많은 요셉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나의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의 학력이나 부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꿈을 가지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실 때까지 하나님은 결코 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과 기가 막힐 웅덩이라 할지라도 꿈을 잃지 말고 심지어는 노예로 팔려 가는 상황이라도 할지라도 꿈을 잃지 않아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꿈을 성취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