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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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본문 : 마태복음 5장 17-20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오늘도 계속해서 주어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재미없고 딱딱한 신학적인 문제를 취급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본문을 통하여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르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 성경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되고 있고 예수님은 그 구약 성경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둘째로 예수님이 완성하신다는 그 율법, 구약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케 하였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 계속적으로 살펴 보면서
20절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의는 어떤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은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예언을 완성시킴으로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시겼습니다.
율법은 계속적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 전체의 내용이 오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계통에서 태어날 것이며, 어느 장소에서 태어날 것이며, 어떤 모양을 가지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시 22편에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시편의 예언은 십자가 상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 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 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죽음의 경로를 읽으면 시편과 다른 구약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서 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나신 예수님이 율법이 예언한 모든 예언들을 이루시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에 대해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십자가의 사건을 비극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천한 율음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의 진수이며 율법과 연관시키지 않고는 그 의미를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죄인들의 구주이십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따라 죄를 범한 사람처럼 되시사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으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죄를 선고하며 그 선고의 내용은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이라고 율법은 사망의 선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한 자에게는 반드시 사형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죄의 삯으로 사망을 선고한 율법이 성취될 수 있는 한가지 길은 선고한 형이 집행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이 형의 집행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지만 율법을 폐지하거나 어기면서 사랑하시거나 은혜를 베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율법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값을 요구하면서 사망을 선고한 율법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는 그 순간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두번째로 본문 19절에 보면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도대체 어떠한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의는 어떠한 것입니까?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한 대답을 얻기 전에 본문의 배경을 잘 이해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불신자들에게 하신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 전, 마 5:13-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불신자가 즉 죄인이 어떻게 의로워 질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세상의 빛과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의의 생활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 생활속에 나타나는 의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완전히 준행하는 것입니다.
이 의는 외적인 행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나타납니다.
만약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아직도 참으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의 법을 지키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생활 속에 전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전혀 성숙이 없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의를 찾아 볼 수 없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이며 그의 믿음은 헛것이며 “이런 사람은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참으로 예수를 믿었다면 너희들이 생활속에 나타나야 할 그 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바리새인 하면 굉장히 나쁜 사람들인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서기관들은 성전에서 성경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율법 학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 율법이 명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고 고결하게 율법을 실행하는 자들이므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대단히 도덕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입하는 소위 대부분의 신자들보다 이 바리새인들은 훨씬 도덕적 인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십니다.
“너희들의 의가 이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리새인의 의는 어떤 의입니까?
그들의 의의 특성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점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첫째로, 그들의 의는 단지 형식적인 것이었으며 외면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불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의식하고 사람들 앞에서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간음, 도둑질, 살인 그리고 우상 숭배와 같은 큰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삼가하는 데에는 엄격하였으나 그들의 속에는 더러운 생각과 탐욕과 미움이 가득찼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생각하고 사람 앞에서 옳은 사람으로 나타나기만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그들의 영혼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 앞에서 의롭게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적 의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5)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무덤을 아름답게 색칠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시체와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외면적인 의로서 자신을 꾸미고 단장하지만 그 속에는 더러운 것과 흉악한 것의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인간!
성경은 이것이 바리새인적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 혹은 인격적인 의이기 보다는 의식적인 의에 불과 했습니다.
하나의 종교 의식을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배와 같은 종교 의식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적인 의, 진실한 의가 결핍된 채로 단순히 종교 의식적인 의만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 의식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 의의 근거를 삼으려고 한다면 이는 곧 바리새인적 의를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성경의 정신을 신앙의 참 정신을 망각하고 살아 가는 사람들의 의,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적 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편파적으로만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였습니다.
진짜 중요한 의는 망각하고 잘못된 의만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도덕적인 요구보다 의식적인 계율을 훨씬 더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셋째로 그들의 의는 건전치 못한 원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기 유익을 위해 구한 이기심에 근거한 의였습니다.
그들은 금식하고 길 모퉁이에서 기도하며 자신을 베푸는 일에는 앞섰으나 그것은 모두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행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율법을 이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르반"이었습니다.
“고르반"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인데 이것을 엉뚱하게 사용합니다.
부모님이 어려워서 아들 집을 찾아와 “애야, 좀 도와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부모님께 드릴려고 마침 준비했는데 그 돈을 다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라고 합시다.
그러면 부모는 할 수 없이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모를 돕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사용합니다.
사실 이들은 부모님이 자기 집에 도착할 그 날짜를 기다렸다가 도착하기 직전에 교회당에 가서 헌금을 냅니다.
그 때의 율법은 그 다음에 그들은 다시 그 돈을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가시면 곧 일정한 비용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묘하게 율법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을 바라 보면서 주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이기심의 껍질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던 의, 철저히 자기 자신에 근거했던 의,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의 의를 공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바리새인의 의는 자기를 자랑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자랑합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생각나십니까?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 죄인이들이나 세리들과 같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여, 감사하나이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님의 의가 무엇인 줄 아는 사람.
“내 속에는 나를 구원할 요소가 하나도 없으며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내가 행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나를 의롭다 하셨다"는 이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다만 감격하며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는 저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감사합니다"
주님으로 부터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의 생활 속에 의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의 모습이 성화되며 그 의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그 의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에서 “너희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기초가 잘못되어지지는 않았는가?하는 것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의롭다 함을 얻었다면, 우리에게는 의를 추구하는 삶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은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의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구원의 조건으로서 행함을 강조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죄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면 이것은 행함을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애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말이 아니고 이미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인나 서기관의 의를 능하가지 못하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이 말은 네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라. 네가 참으로 믿는 사람인가? 참으로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이 은혜에 감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추구하는 삶이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은혜 아래 있는 것이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반드시 율법을 이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학자 핸드릭슨은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한 행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한 후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느냐?”하는 성화의 단계까지 포함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진정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정말 예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주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셨습니까?
과연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 속에 거룩한 의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의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의로운 생활을 살아 가는 것, 그것은 단순한 우리 의지의 결단에 근거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의로운 삶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단순한 의지의 결단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 누가 거하십니까?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시고자 합니다. 그 성령님은 나를 다스리고자 합니다.
그 성령님은 나를 장악하고자 하십니다.
내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앞에 순종하고 따를 때 그 성령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놀라운 삶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 태어나셔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도 없고 우리의 구원이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우리들의 무능을 지적해 주며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을 지킵니다.
내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내 속에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빛나는 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 갑니다.
성경은 다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주시는 의를 가지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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