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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심판의 선언과 은혜의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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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판의 선언과 은혜의 초청

본문: 마태복음 11장 20-30절

설교: 김순배 목사(하나님이꿈꾸는교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는 이적과 권능을 보여주었음에도 당신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을 책망하십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회개’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 둘 다 요구한 것으로, 하늘 나라가 임할 때 사람들이 보여야 하는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의 주요 도시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먼저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선포하십니다.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신은 예수님이 사역의 거점으로 삼으셨던 가버나움에서 북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또한 벳새다는 가버나움 동쪽에 위치해 었었으며 안드레 빌립 베드로의 고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두 도시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도시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권능을 목격하고 체험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악한 도시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이방 도시인 두로와 시돈을 빗대어, 그곳일지라도 이같은 권능을 행하였다면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에 이들 도시들 보다 더 엄격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은 팔레스틴 북부 지중해 연안 뵈니게의 항구 도시로, 바알 우상 숭배지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이 두 행위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와 애통함을 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역의 거점으로 삼았던 가버나움에 대해서는 더 크게 나무라셨습니다.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 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했습니다.

교통의 요지였기에 예수님은 이곳을 사역의 거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다른 어느 도시보다 더 많은 이적들을 행하시고 권위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백부장의 종, 친구들이 들것에 들고 온 중풍 병자, 열 두 해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 귀신들린 자 등등 수많은 병자들과 약한 자들을 치유해 주셨고, 심지어 죽은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히려 교만해져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악함과 타락과 교만과 완악함의 대명사인 소돔일지라도 그곳에서 이같은 권능을 행하셨다면 회개했을 것이고, 그러면 소돔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가버나움을 질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소돔은 가장 악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향해 마지막 심판 날 소돔보다 더 처참하게 멸망 당할 것을 선포하십니다.


가버나움은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하늘 나라의 도래를 알리기 위해 예수님이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풀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늘에까지 높아지는 교만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아는 데 실패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특권을 누렸음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기대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현존을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지만, 반응하지 않은 교만한 가버나움을 향해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음부로 보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에, 이 나라를 가지고 온 메시아에게 반응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은 음부에 있는 자들과 같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영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로마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 행위나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녀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에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녀답게 사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에 감사드립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란 스스로 만족하며 자칭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주의 가르침을 거부 하는 자들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갈릴리 주변 도시 주민들을 가리킵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하는 솔직하고 순박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셨다는 말씀은 ‘겸손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은 매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 진리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배려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내적인 조명없이는 누구도 예수와 그의 나라를 깨닫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아들인 자신을 통해 제자들애게 계시하심을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써 하나님과 예수님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고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아들인 예수님은 하늘에 숨겨진 모든 지식을 선언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아버지를 알 수 없습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와의 친밀하고 유일한 관계를 언급하신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대하시며, 당신이 그들을 쉬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하여 피곤하고 지친 상테를 말합니다.

‘무거운 짐’은 죄와 염려의 고통이나 육체적 의무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율법과 유전의 짐까지 포함합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의 본질에서 벗어나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백성들에게 적용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은 잘못된 장로들의 유전을 과감하게 배격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든 자를 치유해주심으로 안식일의 본질이 생명에 대한 존엄임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유하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괴로움과 사망을 안겨다 주는 세상과 율법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예수의 멍에는 율법 학자들이 뒤집어 씌운 그런 무거운 짐이 아니라 안식과 평강을 가져다 주는 쉽고도 가벼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께 배우면 우리 마음이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얻으리라’는 찾다,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참 안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 있어 주리라 약속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온유하심과 니조 천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 기꺼이 십자가의 멍에를 매신 주님의 겸손하심에 감사하며 진리의 말씀을 배우기에 힘쓸 때, 우리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비로소 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마음에 대한 경고이고, 

다른 하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따뜻한 초청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누구보다도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이적들과 권능을 보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그 특권은 그들을 더 큰 책임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은혜를 경험하고도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교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클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내게로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죄의 짐, 염려의 짐, 상처의 짐, 삶의 무거운 짐에 눌려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참된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쉼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삶 가운데 누리는 영원한 안식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가버나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주님의 온유하심을 배우고, 주님의 겸손하심을 배우며,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참된 쉼은 세상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성공과 물질과 사람 안에 있지 없습니다. 

우리의 참된 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 부르심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꿈꾸는교회

Church of Godly Dreams

1323 Highway 34

Aberdeen, NJ 07747

732-688-0558

www.cgdreams.org

주일 예배: 오전 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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