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실패하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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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패하는 모세
본문: 출애굽기 2장 11-15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오래 전에 중국 북경에서 우리 나라 남북한 중국 일본 4개국이 모여 제 2회 다이너스컵 축구 대회를 가졌습니다.
1회 때에 우리 나라가 우승을 했고 우리나라 축구는 아시아의 종주국을 자처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월드컵팀이 참가한 우리나라가 우승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보기좋게 우리나라는 일본에 지고 말았습니다.
역대 한일 전에서 우리나라 일본에 비해 전적이 월등 우세하고 지난 8년동안에 한번도 진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게는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참패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프로 선수들이고 일본은 아마츄어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기량과 개인의 투자 면에서 우리 나라 선수가 훨씬 더 뛰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졌습니다.
일본에 진 다음에 우리나라 매스컴마다 "우리나라 축구가 왜 일본에 졌는가?"하면서 실패한 이유를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진 이유를 파헤쳐 보니 우리나라는 당연히 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긴다고 성공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지만 당연히 지게 되어 있었고 실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 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더구나 그의 마음 속에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아주 어린 시절에 교육받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와 힘, 능력을 이용하여 민족을 구원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맡겨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보기좋게 실패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도와 주지 않았고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의 조국을 위해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가 최초로 경험한 것은 실패입니다.
그는 실패와 함께 그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모세는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는 실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실패를 통해서 모세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위대한 행동을 시작했지만 아직 그는 한 민족의 구출자로써 행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40년간 애굽의 궁중에서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교육이 모세로 하여금 지금부터 그가 행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준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그런 일을 당합니다.
분명히 이것은 성공할 것 같은데 실패합니다.
분명히 나는 이번 대학 입학 고사에 합격할 것 같은데 낙방합니다.
성공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져 있고 모든 준비도 다 되어 있는데도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가 왜 실패했습니까?
그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본문의 통해서 모세의 실패의 원인을 몇 가지 찾아 올 수 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기 상조였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모세는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자기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열심을 내서 일을 시작했지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시간은 지금이 아니라 40년 후였습니다.
모세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 달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앞서면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5장에서 예언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400년 후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가 되려면 적어도 40년이 더 지나야만 합니다.
또한 가나안땅의 아모리 족속의 죄악의 그릇이 아직은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그가 받아야 할 교육과 훈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세가 자기를 의지하는 자세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기까지는 적어도 40년의 훈련이 더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때를 기다리지도 못했습니다.
"이 때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라고 하는 때인가?"라는 물음도 없었습니다.
그가 애굽 사람을 죽인 행동은 이것을 통해서 자기 동족들에게 지도자로서 주목을 받아 보려는 다분히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기도가 없었고 생각이 없었고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며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는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만한 준비된 귀가 모세에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시작한 그 일을 그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실패를 안겨다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모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니셨습니까?
우리도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실패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테인데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굴므로 실패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경을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느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둡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요청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수확의 법칙이고 생명의 법칙이고 또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생명을 보십시요.
아기는 복중에서 열달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나 아홉달이나 열달을 기다리지 못해서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십시요.
그래서 낳은 아이를 "여덟달 반" 혹은 "일곱달의 칠삭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누가 여덟달 반을 원합니까?
아무도 여덟달 반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여덟달 반의 인격을 추구하고 여덟달 반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당장의 결과를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면서도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책다를 잠깐 모았는데 거기 어느 집사님의 간증이 나옵니다.
이 집사님이 자기 남편이 예수 믿게 해 달라고 25년을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이 예수 믿지 않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목사님을 찾아가서 하소연 합니다.
"목사님! 나는 남편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25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예수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 안 들어 주시니까, 나, 이제 그 기도안할 겁니다"
목사님이 "집사님! 다 때가 있습니까 계속 인내하면서 기도하십시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들어 주실겁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 다시 기도를 시작합니다.
26년만에 남편이 주님께 돌아 왔습니다.
이 집사님의 말이 "내가 25년만 기도하고 끝냈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기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십니다.
모세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또 하나님의 때를 물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 속으로 뛰어 들었다가 멋있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마무리 좋은 동기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기도의 성자 조지 물러는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앞서지 말자.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성령님보다 앞서지 말자.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말씀보다 앞서지 말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준비없이 좋은 동기만 가지고 서두르다가 좌절당한 이 모세의 실패가 오늘 우리의 실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속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결코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했습니다.
목적이 아무리 좋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좋다면 그것을 이루는 방법도 좋아야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때려 죽이는 살인을 했습니다.
11,12절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후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그것은 좋은 동기로서 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정당시 될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이것이 자기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지라고 그의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과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적이 수단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행해서는 안됩니다.
좋은 목적은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야만 합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서울을 가야 합니다.
일은 늦어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방법을 성경적이어야만 합니다.
모세가 왜 애굽 사람을 쳐 죽였을까요?
그의 동포가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인간적인 동정심으로 가득찼습니다.
또한 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이므로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서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 동족들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응을 얻었습니까?
여기에 대해 보충하는 역사적 기록이 사도행전 7장 23-28절에 나옵니다.
"나이 사십이 되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라려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매우 흥미있는 사실이 나옵니다.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행한 행동의 동기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을 쳐 죽인 그 잘못된 행동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인 것처럼 오늘은 나를 쳐 죽이려고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경고가 있습니다.
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행했을 때, 사람들은 내 동기를 기억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그 행동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옳은 것을 위해 싸울 때, 때로는 정의를 위해 싸울 때, 사람들은 그 정의하는 동기와 목적을 기억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싸울 때 내가 얼마나 고함을 치고 불신자들처럼 소리를 질렀는가 하는 그 사실만을 주변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마치 데모하는 학생들의 항변이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는 것을 알아 주지 않고 단지 화염병을 던지고 건물을 점령하는 것만을 매스컴에서 크게 떠들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성경은 무섭도록 철저하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당한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모든 올바른 목적은 올바른 수단을 반드시 요청하고 있습니다.
쳐죽이는 폭력의 방법으로 주님의 일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으로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들이 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다툼이 일어납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서 모세는 그가 스스로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인가?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자기 힘으로 자기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바로 그 이튿날"입니다.
그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회심의 미소를 띠면서 자기가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다고 보람을 느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다음 날에 들통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혈기가 감정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신에게도 고통을 가져 옵니다.
인간적인 방법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리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고 그럴듯하다고 해도 그 결과는 언제나 파멸이고 시험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려고 하는 고입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원하니까'; "내가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따라와 주어야 한다고 떼를 쓰면서 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오래 갈 수도 없고 또 그런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간의 얕은 술수와 방법으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자기 힘으로 할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내 육신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의 힘은 무한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자기 힘으로 한 다음에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4절 "모세가 두려워 하며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과연 자기가 저지른 죄가 끝까지 탄로되지 않기를 기대한 것입니까?
아니면 예상되로 빨리 탄로난데 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입니까?
그런데 모세에게만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는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범죄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일 뿐입니다.
어떤 죄는 빨리 드러납니다.
또 어떤 죄는 아주 숨겨지는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의 생전에 탄로나지 않고 넘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요. 비밀은 결코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죄는 조상이 저지르고 자손이 그 죄의 댓가를 짊어지고 멸망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의 심판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죄가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입으로 우리의 죄들을 고백할 때가 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14:12)
우리가 하나님 무서워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지, 사람에게 들킬 것이 두려워서 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지 못한 모든 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믿음의 위로요 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고 모든 것을 주님께 털어 놓고 고백함으로 마음의 정화와 기쁨을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자기의 잘못을 모래 속에 감추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범죄가 드러나자 두려워하며 "일이 탄로 났구나"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오 하나님 일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해저 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혹은 어떤 일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해야 되는데 내 힘, 내 능력만 가지고 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 시정해야 되는데 오리혀 그 잘못되어진 상황만ㅇ르 붙잡고 발버둥칩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 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육신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면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육신의 힘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에 따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 앞에 순종할 때에만 하나님의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모세는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하고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하여 모세는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기다리지 못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 이었는지 배웁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방법대로, 자기 육신의 힘을 의지하고 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지 배웁니다.
그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앞에 섰을 때 백성들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라고 원망합니다.
이 때 모세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가 옛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더라면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을 때 주께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을 때에 움직이지 않겠다는 교훈을 뼈아프게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실패를 통하여 그의 생애에 큰 교훈을 배우며 인격이 성숙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모세처럼 자주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기다리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패를 통해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 실패를 허락하시는가?"
그래서 이 실패를 우리의 인격이 성숙되고 믿음이 자라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훈련받아 위대하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넘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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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