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배] 율법을 넘어선 ‘더 나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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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율법을 넘어선 ‘더 나은 의’
본문: 마태복음 5장 21-48절
설교: 김순배 목사(하나님이꿈꾸는교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율법 준수의 차원을 행위의 차원에서 마음의 차원으로 높이십니다.
율법의 내면을 외면한 채 외형만 준수하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진정한 의미에서 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며 살던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보다 ‘더 나은 의’의 기준을 제시하며 율법의 의미를 확장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더 나은 의’에서 율법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이웃 사랑 등 6개의 주제를 가지고 율법과 대조하여 설명하십니다.
첫 번째로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에 대한 해석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해 유대인들은 직접적으로 살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적인 살인을 하는 자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화를 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도 살인과 같은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형제와의 화목을 말씀하시며,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십니다.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직접 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까지 갔다가 먼 길을 돌아와 형제와 화해하고 다시 성전에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깨어진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향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여 협박과 저주를 퍼붓고도 아무 꺼릴 것이 없다는 태도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이니 즉시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마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하나님 자리에 앉아 형제를 심판하거나 형제에게 욕을 하는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형제를 향한 분노가 인류 최초의 살인으로 나타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민감해지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에 대한 해석입니다.
구약에서 간음은 유부녀와 성 관계를 맺는 실제로 드러난 음행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주신 원래의 의미를 헤아려 실제 성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여자에게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자란 결혼하여 타인의 아내가 돤 여자를 말합니다.
(마5: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 라
하나님 나라 백성은 남의 여인과 실제 성관계를 맺지 않은 것으로 이 계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성을 음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온전히 깨끗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의 일부가 실족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그것을 제거하여 지옥의 형벌의 피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경고하십니다.
(마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세 번째로 이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율법은 이혼 증서를 써 주는 것으로 이혼이 성립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음행과 같은 정당한 이유없이 이혼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예수님이 모세를 통해 전해진 이혼에 대한 율법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24장 1-4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리면서 이 율법이 쉬운 이혼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신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 24: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신 24: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신 24: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이혼 증서를 써 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던 남편의 힘을 제한하여, 여자와 여자의 가정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이혼한 사람이 재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혼 증서는 재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악용해 아내를 버리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무리 법적으로 합당하다고 할지라도 그 속마음과 의도가 옳지 않다면 그것은 죄이며 금지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 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네 번째로 맹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하는 맹세에만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하늘이나 땅 등을 걸고 맹세한 것은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여 부담없이 맹세를 했고 그 맹세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맹세를 지킬 능력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5: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5: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았지만 하늘이나 땅, 또는 예루살렘, 머리 등을 두고 맹세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것을 두고도 절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맹세 대신에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 책임을 지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에 쉽게 맹세하거나 장담하지 말고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면 맹세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맹세보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로 보복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의 동해보복법은 개인적인 보복의 규모나 범위가 커지는 것을 막고 공정한 심판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다시 해석하시며, 심판해야 할 상황일지라도 자비를 베풀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오른편 빰을 치면 왼편 빰까지,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도,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라고 하십니다.
여섯 번째로 원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과는 달리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자와 달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하라(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
(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인본주의적인 사랑이나 박애주의적인 사랑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주고 받는 개념이 아니라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온전하게 실천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과 같이 자녀인 우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을 죽이려 십자가에 달았을 때도 저들의 죄를 당신 자신에게 돌려 달라고 기도하심으로써 끝까지 저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나의 감정에 따라 복수하거나 앙갚음을 하려는 자아 중심적 삶, 세상의 유혹을 따르는 삶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계적인 명문 Yale University Law school 출신인 미국의 42대 대통령 Bill Clinton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 아칸소 저명 인사들과 함께 코카인을 흡입한 녹화 장면이 폭로되자 “나는 마리화나를 입에 대기는 했지만 흡입하지는 않았다”는 기상천외한 변론을 하여 온 세상의 조롱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법 조문에 씌여진 내용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법에 담긴 의도와 뜻을 파악하고, 법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리켜 ‘더 나은 의’라고 칭하시고 이것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더 나은 의’로 주신 새 계명은 이웃 사랑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율법의 폐기가 아닙니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법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슨종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율법을 넘어 ‘더 나은 의’로 주신 새 계명을 지키며 삽시다.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하나님이꿈꾸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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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오전 9시 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