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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가나안을 향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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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나안을 향한 꿈

본문: 창세기 50장 22-26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가을이 되어 갑니다.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또한 쓸쓸한 계절입니다.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떨어지고 벌거숭이가 됩니다.

인생의 가을은 허전합니다.

인생의 황혼기 마지막 인생의 모습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에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남기고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은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셉 강해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합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창세기가 이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으나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요셉의 시작이 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요셉의 마지막도 꿈으로 마칩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시련과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꿈 때문에 역경을 극복합니다.

꿈 때문에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셉은 그 꿈을 이룹니다.

이 요셉의 꿈은 자기가 꾼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꿈을 이루게 하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시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를 꿸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작만큼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내지 못합니다.

요셉은 시작도 꿈으로 시작되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본문의 요셉의 마지막의 모습을 통하여 ‘요셉이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면서 우리 도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도 요셉과 같이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요셉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24-26절,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 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는 모든 꿈을 접어야 합니다.

그 때는 꿈을 폐기처분하고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지막 임종의 시간에 요셉은 다시 자기 꿈을 펼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까지 꿈을 말했던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입니다.

자기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갈 비전, 이것이 요셉의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자신은 죽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조상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임종이 가까운 요셉은 자신은 죽지만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을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요셉의 신앙고백이자 확신이고 중대한 선포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에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실 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래를 사는 사람입니다.

꿈을 잃어 버렸다는 말은 과거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왕년에”라고 말합니다.

왕년을 말하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뉴욕 장로 교회에 가면 장군 출신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새신자가 오면 그 사람에게 가서 “군대 갔다 왔느냐? 어디서 근무했는냐?”고 물으면서 “내가 어느 사단의 사단장이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속에 묻혀 살면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를 창조한 사람들은 거의 다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마지막 죽을 때는 “여보, 그동안 당신을 너무 고생시켰소. 미안하오!”라고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서 인생을 마칩니다.

그런데 요셉은 죽을 때조차 미래 지향적이었습니다.

요셉은 과거를 술회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약속의 가나안땅으로 꼭 돌아 가라”

죽음의 순간에도 미래를 내다 보는 꿈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면서 왜 내가 절망하고 있습니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기 보다는 오히려 꿈이 시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좌절에도 굽히지 않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잠언에 “백성이 꿈이 없으면 망한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29:18)

즉 비전이 없으면 백성들이 방황한다는 말입니다.

꿈이 없으면 우리 일생은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꿈 때문에 우리가 용기를 얻고 목표를 향해서 걸어 갑니다.


심리학자 가운데 빅터 프랭클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의미 요법’이라는 심리학적 요법을 개발한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그는 세계 2차 대전때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수많은 그의 동족들과 같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용소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한가지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생명을 하루라도 더 오래 연장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식량 배급이 올 때 별거 아닌 희망이지만 그 희망 때문에 갑자기 그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았고 탈옥 가능성이 있다고 할 때 그 소식을 듣고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한가지 놀라운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꿈을 갖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술회합니다.

“나는 꿈을 갖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죽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희망 없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무슨 꿈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꿈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나는 반드시 여기에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나의 위대한 ‘희망의 철학’을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최악의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꿈과 희망을 가지면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음을, 희망이 절망을 이긴다는 사실을, 인생의 의미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말하고 다닐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머리 속에다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희망’을 강연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수용소의 그 처절한 환경속에서도 나는 빙그레 웃을 수가 있었다”

그는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겼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는 그의 기대처럼 기적적인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 되어서 수용소를 나왔습니다.

그는 그의 꿈을 그대로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삶에 대한 희망의 의미를 외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꿈이 무엇입니까?

나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저의 꿈은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고 변화되어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시고 그 꿈을 붙으세요.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일어 서세요.


창세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26절,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무덤에 장사되는 것이 아니라 관에 묻힐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어야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종결됩니다.

땅에 묻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것들은 미결 상태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가 죽으면 아버지처럼 즉시 가나안 땅으로 메고 가서 장사를 지낼 것이 아니라 미라로 만들어서 입관만 시키라고 합니다.

그랬다가 그들이 출애굽할 때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관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언젠가 애굽을 떠나야 비로소 그의 삶이 종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순히 흉년에 세상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편히 이 땅에 묻힐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이 모습의 결론은

“요셉은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그러나 요셉의 꿈은 관 속에 닫힐 수 없었더라”입니다.

무덤이 요셉의 비전을 가두어 둘 수가 없었습니다.

관 속에서도 그의 꿈은 부활합니다.

애굽에서 평안하게 사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계속적으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날을 기다리게 함으로써 끊이지 않는 소망을 준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돌아 옵니다.

요셉의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비록 몸은 세상에 있다 할지라도 결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니이다”(요17:16)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로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8)

우리는 세상에 결코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복음 성가 가운데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죄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저 천국에서 모두 날 기다리네, 내 주 예수 피로 죄 씻음을 받았네, 나 비록 약하나 주님 날 지키리,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저 영광의 땅에 나 길이 살겠네 손 잡고 승리를 외치는 성도들 그 기쁨 찬송하며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정말 그렇습니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둡니다.

우리 모두 꿈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꿈들이 이루어지는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요셉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탁월한 성품을 가진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비밀을 히브리 기자는 ‘믿음으로’라는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11:22)

히브리 기자는 요셉의 이 행위를 그의 생애의 클라이 막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거기에서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히11:22)

여기서 ‘임종시’라는 단어는 “결산”이라는 말입니다.

임종은 결산입니다.

요셉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요셉의 생애에 칭찬할 만한 것이 많은데 이것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요셉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열 일곱살에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꿈으로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의 인생에 펼쳐 주실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면서 시작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자세는 110세에 죽으면서도 여전합니다.

요셉은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살아 왔습니다.

자기 눈앞에 보여 준 하나님의 꿈을 보면서 오직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그는 그런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인생을 지금 결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산이기 보다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이 요셉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지만 인생은 죽음의 관문이 앞에 있다고 해서 결론이 아닙니다.

죽는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 큰 미래, 그 보다 더 좋은 인생, 그 보다 새로운 멋진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요셉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처럼 끊임없이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요셉처럼 과거는 깨끗이 정리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펼치실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요셉과 같은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요셉은 믿음이 있었기에 승리했고 형통했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유혹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 내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믿음이 마땅히 미워해야 할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요셉을 지탱한 것도 믿음이었고 요셉을 붙잡았던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이 소유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주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 보듯이 요셉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요셉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가졌다는 것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원하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꿈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당장 현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장차 이루어질 어떤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재능이 있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애를 전적으로 의탁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내가 그 믿음의 사람이 될 수는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납니다.


26절,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그 해골에 넣은 관은 어느 날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을 계속적으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날을 기다리게 함으로써 끊이지 않는 소망을 준 것입니다.

요셉이 비록 몸은 죽었다 할지라도 그의 믿음과 증거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믿음으로 죽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까?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믿음으로 마지막을 맞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요셉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24,25절,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 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고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두번씩이나 반복되는 말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이삭에게 전했고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요셉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볼 때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람은 왔다가 가도 하나님의 약속은 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를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생애 마지막에 믿음으로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면서 자기의 해골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 갈 것을 부탁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요셉의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세요.

그것은 쉬운 결단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요셉은 애굽에 와서 출세했습니다.

그는 성공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의 국무 총리의 자리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말씀의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날마다 살아 가십니까?

이 말씀을 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몸무림치십니까?

내 생활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십니까?

이 말씀이 내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요셉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신다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을 당하거나 기쁨으로 세상을 살거나 그 사람이 누리는 것이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나뭇잎은 다 없더지는 것이지만 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건제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유한 존재이지만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고리 하나하나를 튼튼하게 이어가면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평범하게 살다가 죽지만 그러나 나의 삶이 역사의 고리를 있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할을 그 다음 세대에 넘겨 주는 일은 꼭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위대하고 탁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를 이어오는 고리를 내 대에서 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특히 오래도록 이어오는 신앙의 고리를 자신의 대에 와서 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께 얻은 신앙의 고리를 그 다음 세대에 전하지 못하고 끊기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잘못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그 잘못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큰 죄의 유전으로 남기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제 요셉의 노년의 모습을 보세요.

22,23절,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얼마나 축복된 모습입니까?

우리의 노년의 모습도 이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가면 갈수록 아름답게 성숙해져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작만큼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내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심히 창대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성공이나 성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에 있었습니다.

그의 고상한 인격, 그의 사려 깊은 행동, 그의 뿌리 깊은 신앙에 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요셉은 끝마무리를 잘한 지도자였고 끝까지 달려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관용하시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자랑스럽게 그를 만드셨습니다.

그의 인물됨이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요셉이 훌륭하고 위대하지만 요셉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요셉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훌륭하고 위대하십니다.

요셉을 요셉되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이 끝마무리를 잘하도록 도와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요셉을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은 요셉의 하나님이고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 땅에 요셉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바로 요셉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시지 않으시렵니까?

요셉처럼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요셉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생애가 요셉과 같은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모든 계절은 아름답습니다.

각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의 삶이 어떤 계절에 이르렀든지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서 있는 곳을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이세요.

그 자리에서 성공하시고 행복하세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제2의 요셉,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제 2의 요셉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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