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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장엄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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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엄한 최후

본문: 창세기 49장 29절 - 50장 14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던 부모님을 먼저 보내신 분들.

사랑하던 남편이나 아내를 먼저 보내신 분들. 사랑하던 형제를 먼저 보내신 분들.

심지어는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내신 분들.

그 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 그 비통함이 과연 어떠했습니까?


저도 저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내셨습니다.

특별히 저의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기 바로 전에 갑자기 돌아 가셨습니다.

제가 총신대 입학 장학생 시험을 보러 원서를 내러 갈 때 저에게 옷을 입히고 빨래를 하시다가 그냥 쓰러지시고 4시간도 안 되서 돌아 가셨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에 삶의 의미를 못 느꼈습니다.

밤마다 울면서 나도 빨리 죽어서 천국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 충격이 1년을 지속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많은 분들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였습니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같이 예배를 드리며 마지막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천국에 가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백여건의 장례를 집례했습니다.


마지막의 모습은 인간의 가장 고독하고 엄숙하며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의 모습은 다 똑같았습니다.

거기에는 빈부 귀천이 없었습니다.

죽는 본인이나 가족이나 한결 같이 다 죽음을 싫어하고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할 때 대부분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마지막이 복된 분들이 많았습니다.

장례를 치를 때도 죽음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더욱 더 비통하고 안타까운 장례가 있습니다

예수 안 믿고 죽은 사람의 장례식 인도는 참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더구나 자살한 사람의 장례 인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제 입에서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유족들에게 “인생은 누구나 죽는 것이니까 예수를 잘 믿으세요”라는 말 밖에 해 줄 말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나 청년의 장례를 인도할 때는 먼저 자녀를 보내는 부모의 애처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젊은 아내와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먼저 가는 남편의 장례를 인도할 때는 저의 마음에도 슬픔이 가득찹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다 슬픕니다.

예수 잘 믿고 천국에는 가지만 슬픈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내용은 야곱의 마지막 모습과 장례식 장면입니다.

136년을 험악한 나그네 인생길을 산 야곱이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는 자기 시신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자녀들에게 부탁합니다.

얼핏보면 장례 걱정을 하고 있는 한 늙은이의 유언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묘지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속에는 야곱의 신앙관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야곱의 마지막 임종의 순간과 장례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여 후회없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야곱은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9절,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 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야곱의 이 마지막 부탁이 무엇을 말합니까?

자기의 장례에 대한 걱정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죽으면서 자기의 시체를 보통 자기의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타국에 있는 사람들도 죽으면 그 시신을 고향땅으로 가져 갑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많은 선교사들은 그들이 죽을 때의 자기 시선을 복음을 전한 제 2의 고향인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야곱도 자기 아들에게 자기 시체를 선영의 묘지에 장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금 자기의 장례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가 애굽에 살고 있지만 그는 애굽 백성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애굽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 깊이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땅에 가겠다는 것 입니다.

자신이 끝까지 조상들의 약속을 붙들고 있었고 조상들과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죽었다는 것은 나타 냅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임으로 자손들도 동일한 약속을 붙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자기 인생의 결론을 놓았습니다.

31절,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 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 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굴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묻힌 곳입니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 자신도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죽음이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징검다리역할을 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세상의 축복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마음에 있는 결론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도 이루어 드리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일들이 있지만 우리의 결론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야곱의 죽음은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야곱의 죽음은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다 줍니다.

야곱의 죽음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져 오던 족장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새로운 장으로 접어드는 서곡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셨고 개인들의 삶을 직접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게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같은 특별한 인물의 역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집단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그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느냐?’ ‘어떻게 그의 진리를 자기들 가운데 실천하며 그 약속을 유업으로 얻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붙들고 위대한 믿음의 삶을 연출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코 편한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심한 흉년과 주위 사람들과 전쟁을 겪으면서 혹독한 삶의 투쟁을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남았습니다.

돈으로 살아 남은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살아 남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 하나 붙들고 살아 남은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생존하면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믿음의 삶의 모습 즉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은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민의 삶은 너무나 힘듭니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음과 육체가 너무 고생을 하고 버티기 조차 힘듭니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생스럽기 때문에 기도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삶은 결코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도 사는 삶은 아주 무모한 삶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과 같은 이 세상에서 믿음 하나로 위대한 삶을 살아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돈이 없고 학벌이 없고 배경이 없어도 믿음 하나로 위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붙든다면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만 붙든다면 결코 이 세상이 어렵다 하더라도 결코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세요.

그 약속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붙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들을 다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야곱은 후회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이 자기의 열 두 아들들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세요.

비록 자기는 지금 죽지만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야곱과 같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입니까?

만일 내 인생을 다 보낸 후에 “당신의 인생이 어떠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죽지 못해서 산 삶입니다”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행복하고 보람된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뚜껑을 열어 보니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허무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야곱의 일생을 보세요.

야곱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정말 초라하고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을 속이고 남에게 속으면서 거칠고 험하게 세상 밑바닥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부모가 있는 집을 떠나 타향에서 살면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일찍 죽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어 버리면서 늙을 때까지 한탄과 슬픔을 간직한 비극의 주인공처럼 살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신앙인이면서 신앙인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의 삶을 결코 존경 받거나 모범이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요셉이라는 이름은 많이 지어도 야곱이라는 이름은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임하니까 그 삶이 영광스러운 결론으로 끝내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라한 인생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할 때에는 영광스러운 결론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고 변변히 못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만 하면 그 인생의 마지막은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결산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선택받을만한 이유와 조건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쫓아 다니시면서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축복해 주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주시고 그의 열 두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아들로 말미암아 존경을 받으면 호의호식하면 잘 살다가 열 두 아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마지막을 맞습니다.

마지막까지 얼마나 찬란하고 멋진 매듭을 맺습니까?

야곱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 은혜의 전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야곱을 보면 됩니다.

도무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야곱의 생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야곱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야곱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보잘 것 없고 초라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짓고 빤질거리면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사람답지 않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인생이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축복해 주시면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추한 죄인이 거룩한 성자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임하면 삶의 결론이 야곱의 결론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임하면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르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려면 엘림교회의 아무개 집사, 아무개 장로를 보라”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까?

나의 삶의 결론도 하나님의 은혜로 끝날 수 있습니까?

나의 인생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어! 나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그냥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까?

물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무조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편에서 그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자기 멋대로 살면서 넘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형을 속이고 형이 죽이려고 하자 도망하가다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때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시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나의 하나님이 되어 내가 하나님을 섬길 것이고 내가 이곳으로 돌아 올 때 나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겠나이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을 섬기고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집으로 돌아 올 때 형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오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안 놓습니다”

하나님께 절박하게 호소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 하나님은 그를 ‘속이는 자’라는 ‘야곱’에서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후회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원하십니까?

야곱처럼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사세요,

그러면 나의 인생의 삶을 다 보낸 후에 나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인생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후회없는 삶을 살고 마지막이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야곱의 마지막은 장엄한 최후가 되었습니다.

49장 33절,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 에게로 돌아갔더라”

인생의 시작이 출생이라면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이삭도 죽었고 야곱도 죽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옥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영원의 시작입니다.


야곱이 죽자 이제 요셉은 장례를 치릅니다.

50장 1-3절,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 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야곱의 염을 하는 데에 사십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70일을 곡합니다.

죽음은 슬픕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으로 간 사람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정상적인 슬픔은 표현해야 합니다.

마음의 슬픔은 슬픔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더 큰 슬픔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과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슬픔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가깝고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력하고 무능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아주 영원한 결별로 생각하여 엄청난 슬픔에 빠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도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슬픔도 절망속에서 느끼는 것과 소망 속에서의 슬픔이 다릅니다.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기는 하되 소망 없는 사람처럼 절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대단한 고통과 아픔을 느낍니다.

절망을 하게 되고 육체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누가 옆에서 어떤 말을 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말없이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고독과 슬픔과 고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만큼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슬픔을 당한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상처받기 쉽고 그런 상태에서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곡하는 시간이 끝나고 요셉은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가나안 땅에 아버지를 안장합니다.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그의 곁을 떠나는 순간입니다.

7-9절,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야곱의 장례 행렬을 보세요.

얼마나 거창하고 장엄합니까?

애굽의 고관들과 장로들과 병거와 기병들과 요셉의 가족들이 큰 떼를 이루어 야곱의 관을 따라갑니다.

야곱은 일평생을 험악한 세월속에서 고생을 하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장례는 애굽의 국장으로 치러집니다.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과 부러움과 아쉬움속에서 그의 장례를 치릅니다.

얼마나 마지막이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야곱처럼 어마어마한 장례식을 치른다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이 보장됩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면 그 장례식은 천국 환송식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우리는 발인 예배를 천국 환송 예배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장례식이 천국 환송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던지 간에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우리의 인생이 존경 받고 장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최후도 복되고 심지어는 나의 장례조차도 많은 사람의 존경과 아쉬움과 애도속에서 장엄하게 치러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자기 자리로 돌아 옵니다.

14절,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그 과정을 일단 마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죽은 사람이 누구라 하더라도 일단 그에 대한 예를 갖추고 난 다음에는 자기 자리로 돌아 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죽은 후에 같이 따라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가슴에 묻고 인생을 불행하게 삽니다


한국에서 20여년 전에 어느 판사 부인이 식모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판사 부인이 식모를 야단치고 뺌을 때리자 식모가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여 주인을 밀어졌는데 그만 넘어져 기절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식모가 기절한 부인의 목을 눌러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되 그 남편인 판사가 부인을 잃은 슬픔을 잊지 못하여 법원의 자기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에 와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가정이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자랑스러운 부모님을 두고 잘 살던 어린 두 딸들은 졸지에 고아가 되고 가장 불행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슬픔이 크더라도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이미 죽음은 사람의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을 움겨쥐고 있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 지내게 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이후에 환경에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야곱과 요셉처럼, 믿음의 선진들처럼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들처럼 주님께 부름받아 이 땅을 떠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 날을 어떻게 준비하시겠습니까?

그 날을 어떻게 맞겠습니까?

우리의 마지막이 복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어렵더라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행복한 인생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마치는 나의 마지막 말이 “나는 행복했다. 내 인생은 참으로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았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고백하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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