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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축복 기도로 자녀를 키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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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 기도로 자녀를 키우라

본문: 창세기 48장 8-22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돈이나, 물질, 성공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물질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보이는 금이나 다이나몬드보다는 보이지 않는 공기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의 권력자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 존귀합니다.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일평생 보이지 않는 꿈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 같은 보이지 않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외모나 환경이 아니았습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가 가졌던 꿈과 그 꿈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귀머거리요, 벙어리요, 장님이면서도 이 삼중고를 이겨내고 위대한 일을 이룬 헨린켈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제일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런 것은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요셉은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만질 수도 없는 꿈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그는 축복 기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보이지 않는 축복 기도를 통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몸소 체험하고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 왔을 때 자기의 두 아들을 아버지께 데리고 와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과연 축복이고, 이 축복을 비는 기도가 얼마나 위대하며 이 축복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는 가를 살펴 보면서 우리도 축복을 받고 우리의 자녀들도 축복 기도를 통해 다 축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자녀를 위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축복 기도입니다.

축복 기도는 자녀를 형통케 하는 가장 좋은 유산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항상 자녀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 줍니다.

특별히 임종의 순간에 자녀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 줍니다.

이 축복 기도는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중한 유산이고 이 축복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임종이 가까왔을 때 요셉과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그리고 그의 열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축복 기도를 해 줍니다.

이 축복 기도는 야곱이 남기는 유산이고 자녀들의 내일을 위해 심는 축복의 씨앗과 같습니다.

8, 9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이 누구뇨,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 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5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 ”

20절,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


야곱은 축복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요셉에게 두 아들을 데려오게 한 후 야곱은 그들을 축복합니다.

사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생명을 거는 모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형 에서 대신 축복 기도를 받은 것 때문에 형이 죽이려고 해서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 갔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해서라도 축복 기도를 받으려고 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나그네 인생 길의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도 축복 기도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인생에서 절대로 형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만 형통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들을 임종이 가까운 아버지에게 데려와 축복 기도를 받게 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 이삭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태어날 때 이삭은 151세였고 이삭은 180세를 살았습니다.

요셉은 할아버지 이삭으로 부터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약속된 축복이 자기의 생애를 통해 성취됨을 직접 목도하였습니다.

보는 것은 무섭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닮게 됩니다.

그리고 보는 것을 얻고, 본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축복해 달라고 야곱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은 전수됩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보고 그 아들이 자기의 아들에게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아들에게 갑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있는 자녀는 복 받은 자녀입니다.

우리도 어떻게 해서라도 축복 기도를 받으려고 애를 써야 하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축복 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축복 기도는 자녀를 형통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성장하는 자녀들은 보통 자녀들과는 다릅니다.

축복 기도를 받고 자란 자녀는 축복을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됩니다.

축복은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한 곳에 머물면 썩게 됩니다.

축복은 흘러 내려야 합니다. 그 때 더 풍성해 집니다.

샘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더 많은 생수가 올라오는 것처럼 축복은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 집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흘러 보내는 것은 더욱 더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고 축복을 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매일 축복 하세요.

하루에 적어도 한번씩은 자녀들을 축복 하세요.

좋은 말로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소중한 방법은 자녀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축복 기도, 축복의 말의 열매를 먹고 삽니다.

축복 기도의 언어는 축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축복을 받고 자란 자녀와 저주와 욕을 먹고 자란 자녀는 다릅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은 처음부터 그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날 때부터 하나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라는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이 자라는 사람들과 어딘가 다르게 삽니다.

부모의 입술은 축복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축복 받은 자식이 결국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은 아무리 일찍 시작해도 이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축복하세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축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긍정의 말, 축복하는 말을 해서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

누군가가 나를 만날 때마다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 때문에 기분이 좋고 행복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간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15,16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 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사자 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 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많은 재산이나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축복으로 손자들에게 물려 준 것은 자기가 한평생 살면서 체험했던 하나님,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자기가 체험했던 그 하나님이었습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셨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조상들이 믿음이 없는 가나안에서 한평생 믿음을 지키면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 하나님을 두 손자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살게 하셨고 이삭을 믿음으로 살게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도 그렇게 살게 해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야곱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을 부르면서 축복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름을 빌려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건을 살 때 자기의 신용카드가 없거나 안 될 때 남의 신용카드를 빌려 쓸 수 있습니다.

카드를 빌려 주는 것은 나 대신 신용카드의 주인의 이름으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빌려 주니 마음대로 카드 긁으라. 너 사고싶은 물건을 마음대로 사라”는 뜻입니다

지금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자기 이름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까지 빌려 줍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은 다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 세 사람의 믿음과 축복을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다 주겠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전쟁도 어려움도 죽을 고비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살아 남았고 강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의 조상에게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요셉과 그의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축복하여 주실 것을 기원합니다.

그저 눈 앞에 닥친 것에 급급해서 하는 축복이 아니라 세상의 끝날까지 이르는 축복을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이 합친 것보다 다 능력이 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무엇을 얻습니다.

그 이름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 갑니다.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의 명의로 된 이 카드를 쓰기만 하면 엄청난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이름만 의지하면 우리가 기대한 것보더 더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체험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고 이 이름을 통해 엄청난 능력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야곱은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을 이들에게 줍니다.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먼저는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이 태어날 때부터 그를 길렀습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야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르셨습니다.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인 야곱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이미 야곱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시고 그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야곱은 결코 편안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인생 길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를 건져 주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은 최후에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보다 나중을 더욱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그의 생애 마지막을 더욱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 최후에 더욱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을 체험했습니다.


야곱은 그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번식하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축복은 그대로이루어집니다.

400년이 지나 애굽을 떠날 때에는 이스라엘이 장정만 60만명이 됩니다.


또한 야곱이 간구한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었습니다.

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요셉의 아들들을 위해 빕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 축복은 모든 축복을 능가하고 모든 축복을 초월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형통의 비결입니다.

요셉도 일찍이 이 축복을 누렸습니다.

창세기 39장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 더라” 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그 귀한 축복을 다시 한번 더 받습니다.

야곱의 축복 기도처럼 하나님은 요셉의 후손과 온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 야곱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의 인도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가장 안전합니다.

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야곱은 지금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두 손자에게 물려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속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특별한 분의 보호와 동행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 그 분을 손자들에게 축복으로 물려 주고 있습니다.

“나는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하실 것이며 언젠가 반드시 만날 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라”

자녀들에게 이런 축복의 말을 남기고 그것을 믿게 한다면 어떤 유산을 남기는 것보다 더 훌륭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런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로 번성케 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복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과 난관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런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그런 간증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나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삶이 나에게 있었노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간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삶에도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 간증. 나의 삶에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 지키신 간증.

나에게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신 간증.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신 간증.

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구원에 대한 간증.

이런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간증이 없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기를 좋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인 눈이 있기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축복해 주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신뢰하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맏고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째로, 축복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14, 15절,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야곱은 손자들을 축복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축복했습니다

자신이 말을 해서 축복을 하는 것이지만 그 축복은 자신보다 훨씬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만이 진짜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축복이 뒤 바뀝니다.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해 주려고 할 때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앉히고 차자인 에브라임을 왼편에 앉힙니다.

그런데 요셉의 기대와는 달리 야곱이 양손을 엊갈리게 해서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을 축복하고 왼손으로 장자인 므낫세을 축복합니다.

아버지가 볼 때 이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오른손과 왼손의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오른손의 축복과 왼손의 축복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여기 오른손은 더 큰 축복인 능력의 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강한 오른손으로 자기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악한 세력도 빼내가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왼손은 힘이 약해서 놓칠지 몰라도 오른손은 강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자신들을 빼내 갈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오른손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있고 왼손의 축복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매일 우리 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만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를 향한 기도는 간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고 존귀한 모든 것을 주시도록 더 애쓰며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위해서 기도는 해 주는데 기도가 잘 안 나옵니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기도할 말이 안 나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면 머리를 마구 쥐어 짜야 나옵니다.


성도라고 해서 똑같은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 중에 오른손이 있고 왼손이 있습니다.

오른손의 축복을 받는 성도도 있고 왼손의 축복을 받는 성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 내내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서 말씀을 사모하면서 예배를 기다리다가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 성도을 보면 저도 눈물이 나오고 기도도 더 나오고 말씀을 더 잘 준비해서 좀 더 큰 은혜를 받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사모와 열정도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오늘 설교는 왜 이리 길지!”하면서 시계를 보면서 빨리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친교나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성도들이 다 똑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 중심을 보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거짓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을 더 강하고 풍성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축복이라고 해서 다 같은 축복이 아닙니다.

같은 할아버지의 무릎 밑에서 축복 받는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기쁨으로 축복하시도록 만들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복 주시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 생활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이 나와야지 한숨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약게 믿으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절대로 안 속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한 것이 정말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 앞에서 미련하게 믿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과감하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그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오른손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손을 어긋나게 하여 차자에게 오른손의 축복을 주려고 하는 것을 보자 기겁을 해서 “아버지! 손이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나도 안다”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야곱이 이렇게 뒤바뀐 순서로 차자를 장자보다 더 축복 했을까요?

이것은 순전히 야곱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야곱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축복의 권한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장자에게 더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랄지라도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장자도 차자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차자가 장자가 될 수 있고 장자가 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맏아들로 취급을 맏아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삭이 임의로 바꾸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야곱이 축복하는 것을 요셉이 바꾸려고 하지만 야곱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차자를 장자로, 장자를 차자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 질서와는 다릅니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어떤 세상적인 제도나 전통에 의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의 복을 주시면 장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차자로 만드시면 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내 방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단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대로 그저 받는 것 뿐입니다.

인생의 복은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그의 주권으로 우리에게 내리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을 뿐입니다.

우리 인생은 장자로 태어 났다고 장자로 사는 것이 아니고 차자로 태어 낫다고 차자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에브라임이 살 길이 있고 므낫세가 살 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우리 인생은 불평 불만과 원망이 끄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겸손하게 받아 들이고 살 때 우리는 행복한 인생,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내려 주신 분복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복이 무엇이든지 모두 즐거워 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전5:19)

하나님의 뜻과 주권 아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분복으로 받아서 그 분복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 있는 삶입니다.


야곱이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들이 모범적인 인물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20절,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야곱의 축복으로 인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축복의 예’가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 할 때 흔히 “너는 누구처럼 되어라”는 말을 하는데 그 예가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다른 사람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너는 절대로 누구처럼 되지 말아라!” 이것이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우리들도 나의 자녀들을 축복할 때 그렇게 모범이 되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딸이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본받고 그를 닮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 나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앞에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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