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백의흠] 야곱의 마지막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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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곱의 마지막 소원

본문: 창세기 47장 27-31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저는 항상 궁금증과 기대를 가지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이 과연 어떠할까?

내가 마지막 죽으면서 어떤 말을 남길까?

그 때의 나의 소원이 무엇이며, 어떤 유언을 남길까?

다윗은 마지막 죽으면서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이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우면 인생은 다 아름답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면 그 인생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처음보다 끝이 좋아야 하고 시작보다 결론이 더 중요합니다.

젊었을 때에는 초라하게 시작했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실패와 실수가 있었더라도 마지막 결론을 좋은 것으로 끝낸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그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는 거짓말을 잘하는 속임수의 명수였습니다.

사기꾼이었고 약삭빠른 모략군이었습니다.

외삼촌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아버지와 형까지도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남을 속이면서 살았고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많이 속았습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기를 “나는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처음은 불행하고 험했지만 결론은 아주 잘 맺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은 잘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형편없습니다.

대부분이 용두사미(龍頭蛇尾), 처음에는 용의 머리지만 나중에는 뱀의 꼬리가 됩니다.

우리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의 시작은 너무 좋습니다.

너 없으면 못 사는 것처럼 간까지 다 빼서 줄 정도로 좋아하다가 한번 뒤떨어지면 원수가 되어 얼굴조차 마주 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인생의 삶에 마지막이 더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도 잘 되어야 하지만 마지막에 더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험한 세월을 살더라도 인생의 말년은 야곱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심하고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야곱의 마지막 인생의 삶을 성경을 통해 살펴 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행복되고 그 마지막 결론을 잘 준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야곱의 말년은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절,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이 수가 일백 사십칠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온 것은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7년의 흉년이 끝났는데도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애굽에 온 지도 1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흉년이 끝난 지도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애굽땅 고센에서 그대로 둘러 앉아 목축을 하면서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며 번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접 받으며 잘 사는데 굳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쉽게 생각해 보죠?

왜 가나안 땅으로 돌아 가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왜 한국으로 돌아 가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미국에 와서 한국보다 더 못하는 삶을 살고 고생하는데도 굳이 미국으로 살려고 고집합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좋습니다.

목회도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

미국 목회는 밑바진 독에 물 붓기 식이고 너무 상식밖의 일이 많이 일어 납니다.

2년 전에 서울의 제법 큰 교회에서 청빙되었습니다.

전 당회원과 전교인이 그렇게도 오라고 간청 했는데도 마지막에 제가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요한 이유가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여기 미국에 너무 적응해 버렸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 가서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적응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못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흉년을 피해 애굽 땅에 머무는 동안에 너무나 크게 번창하는 바람에 그렇게 쉽게 돌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의 숫자가 너무 늘었습니다.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왔는데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부족을 이루었습니다.

17년동안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버려서 예전처럼 쉽게 가난안 땅으로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 가야 하는데 그 전과 같은 방법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애굽에 그냥 남아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서 야곱의 가족에게 축복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것이 축복 아닌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자녀들을 많이 나서 잘 길러 성공시키고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입니다.

가난한 것보다는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별 볼일 없이 사는 것보다는 성공해서 유명해 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실패하는 것보다는 성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몸이 약해서 항상 아픈 것보다는 건강한 것이 더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에게 축복을 주시옵소서!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자녀도 잘 되게 해 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성공하게 하시고 평안하고 행복한 축복을 주시옵소서!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잘되고 축복을 받아 행복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을 더 잘 섬기며 충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항상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 몰라도 사는 동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번성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손을 대는 것마다 번성하고 형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의 인생에 기반이 서고 열매가 열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곱의 인생이 그런 인생의 표본입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게 출발했지만 노년이 되어서는 풍성하고 축복을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130세부터 147세까지의 17년은 아주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총리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존경과 축복속에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초기에는 어렵고 힘든 고비를 겪을 수 있겠지만 나중 특히 말년에 큰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야곱은 자기를 고향땅에 묻으라고 부탁합니다.

29-31절,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 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 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오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 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오늘 본문은 야곱이 자기가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요셉에게 특별히 뒷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열 두 아들을 모두 불러 놓고 똑같은 부탁을 합니다.

이것도 보통 부탁이 아니라 환도뼈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 시키는 것입니다.

환도뼈 아래 손을 넣는 것은 성기에 손을 대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도저히 변경 할 수 없고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맹세입니다.

이 맹세는 당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올 모든 자손들까지도 해당되는 맹세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맹세입니다.

그는 지금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은 지금 애굽 땅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센 땅에서 직업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자식들도 많이 낳아서 크게 번창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얼마든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어떤 미련이 남은 것처럼,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는 문제라도 있는 사람처럼 요셉을 불러다가 맹세까지 시키면서 뒷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장례 문제입니다.

자기를 애굽 땅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있는 조상의 무덤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맹세까지 시킵니다.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다 죽음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죽음에 대비해서 만일을 준비해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수고한 결과가 어떻게 되고 어떤 사람에게 돌아가는지를 다 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야곱이 왜 이런 부탁을 할까요?

그가 지금 자신의 장례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장지까지 자세하게 가르켜 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자기 조상들이 묻힌 선산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묻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겠고 네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리가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살았고 그 땅에 묻혔습니다.

이삭도 그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그 땅에 살다가 그 땅에 묻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는데 나도 그 약속을 믿었고 약속 에 따라 살았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묻히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야곱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약속의 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죽더라도 비전은 계속됩니다.

지금 야곱은 애굽에 살다가 애굽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이 그의 삶의 종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이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임을 알고 있습니다.

애굽 땅에 살고 있지만 그는 애굽 백성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고 애굽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 깊이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게 될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축복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의 땅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죽을 때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는 그 한 순간을 통해서 자기가 한평생 무엇을 믿었으며 무엇을 붙들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따라 살았다는 것을 자신의 장사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마지막 모습은 과연 어떻하겠습니까?

내가 나의 마지막에 나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무슨 말을 마지막에 하시겠습니까?

“한평생 재미있게 잘 살다가 나는 간다”라는 말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모은 재산, 내가 이룩한 것 두고 가려니까 서운하다” 라는 말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전도자 무디는 그가 인생의 삶을 마치는 어느 한 순간에 그에게 찾아 온 죽음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땅은 물러가고 하늘은 열린다. 내 주께서 나를 위해 오신다.

오늘은 나의 승리의 날, 오늘은 나의 대관식이로다. 아! 영광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의 순간에 이런한 고백이 나에게도 가능하겠습니까?


예수 천당을 외친 최권능 목사님은

“하늘에서 전보가 왔는데 나보고 빨리 오래. 내가 빨리 가야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펼젼 목사님은 죽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와 어린 아이들이 뛰어 논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내가 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빨리 가야겠다”

사무엘 루더포드 목사님은 임종시에 “내 눈이 주님을 본다! 영광, 영광, 영광이 나의 창조자와 구속자에게 영원히 있으라! 영광, 영광이 임마누엘의 땅에서 빛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으로 마지막 맞이 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처럼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서 마지막의 고백도 아름다운 고백이 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야곱은 나그네 의식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이 자기의 시체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에 장사하라는 것은 그곳이 자기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17년을 살았지만 이곳은 타향입니다. 자기의 고향은 가나안입니다.

그는 나그네로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의 고향이 어디 입니까?

우리가 이 미국 땅에서 20년, 30년을 살았어도 우리의 고향은 한국 아닙니까?

우리는 백인처럼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영원한 나그네로 살다가 갈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애굽의 보화와 같은 세상 보화가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게 될, 저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

바로 그 곳이 우리 모두가 바라 보아야 할 소망입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습니까?

그런 소망을 가져야 마지막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마지막이 가장 영광된 순간이 됩니다.

우리들의 마지막 고향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삽니다.

‘나그네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나그네 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가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라 언제가는 떠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히 거할 곳을 향하여 내 고향으로 돌아 갈 날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커는 “인간은 고향을 잃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본래 우리의 고향은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비로소 인간은 고향으로 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고 유명해 지고 돈 많이 벌어도 늙고 병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돌아 갈 영원한 고향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의 삶은 고향을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본향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삶은 절망하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본회퍼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히틀러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생각하여 히틀러 제거에 가담했다가 사형선거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부활절 아침에 두명의 간수가 본회퍼 목사님이 있는 감옥문을 두드리면서

“당신의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같이 지내던 감옥의 동료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본회퍼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는 한치의 동요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요.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내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렇게 고백하며 그는 교수대에 끌려가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이런 고백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고향을 바라보며 나그네 인생길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죽음도 천국을 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간곡하게 부탁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세요.

31절,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요셉이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겠다고 약속하자 야곱은 곧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립니다.

야곱은 그의 마지막 생애에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을 찾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그의 젊은 날의 생애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살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기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모습도 야곱처럼 이렇게 변할 수 없겠습니까?

내 고집, 내 뜻대로 살던 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 수는 없겠습니까?

나만 생각하는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면 살 수 없겠습니까?

세상적인 것만 즐기는 내가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그것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 수는 없겠습니까?


우리는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다 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평생을 두고 지속되어야 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드려야 할 것이 예배입니다.

나는 평소에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나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찬송하며 기도하다 주님께 부름을 받는다면 이것만큼 복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야곱처럼 언제나 예배 드리는 삶을 살아갈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속에서 사는 삶이 됩니다


우리 모두의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이 더 복되고 행복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니라 ‘사두용미’(蛇頭龍尾),

처음에는 용의 머리처럼 멋있는데 끝은 뱀의 꼬리처럼 초라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뱀처럼 초라한 것 같지만 나중에는 용처럼 멋있는 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나그네 인생길을 마치고 이제 나의 영원한 고향 천국에 입성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오늘이 나의 전 생애에 가장 복된 날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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