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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주님!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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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족합니다

본문: 창세기 45장 16-28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성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성공하기를 원합니까?

내가 높은 위치에서 남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성공합니까?


사람마다 성공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공해서 남에게 유익을 주고 복을 주는 성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공은 자기는 잘 되지만 남에게 해를 주는 성공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김일성이나 히틀러, 스탈린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정권을 잡지 못했더라면 수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권을 잡아 한 나라를 다스리므로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열대성 나무 가운데 벤진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대단한 나무입니다.

뿌리가 땅 밑으로 수km까지 뻗어 나가서 거대한 숲을 이룬다고 합니다.

가지가 옆으로 내뻗어 땅에 닿게 되면 그 가지는 땅 속에서 뿌리를 내어 다시 자랍니다.

그렇게 해서 보통 8km 내지 10km를 뻗어 나갑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뿌리를 내면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를 다 죽여 버립니다.

주변의 영양분을 모두 다 흡수해 버려서 그 밑에는 단 한포기의 풀도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고목이 되어 이 나무가 죽으면 그 나무가 자라났던 자리는 황무지가 됩니다.

그런데 같은 열대성 나무인 바나나는 정반대입니다.

바나나 나무는 6개월이 되면 옆에 싹을 내고 싹이 나오면 그 싹이 자랄 수 있도록 원래 나무는 계속해서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일 년만 지나면 그 싹은 열매를 맺습니다.

자기가 자라면서도 계속해서 새싹을 만들면서 자라고 그 새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을 계속해 줍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나무를 베면 그 주변에는 많은 싹들과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성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을 죽이는 성공도 있습니다.

나의 성공이 남에게 기쁨이 되고 복이 되어야 진정한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해서 뭐 하자? (잘 먹고 잘 살자?) 성공해서 남 주자.

“출세하여 남 주자.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성공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요셉이 성공하여 형들을 살리고 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장면입니다.

형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힌 요셉은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 오려고 합니다.

요셉의 성공은 애굽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그리고 아버지에게 큰 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30세난 노인이 이제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감격과 큰 기쁨찬 모습입니까?


오늘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성공이 어떤 성공이 되어야 하고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성공한 사람이 되시기 우리의 성공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복과 기쁨을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요셉의 성공은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16절,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 신복이 기뻐하고”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좋아합니다.

바로가 얼마나 기뻤는지 요셉에게 가나안에 사는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민 허가도 내 주고 애굽의 좋은 땅을 주고 정착금도 주고 전용자가용까지 내줍니다

그만큼 요셉의 기쁨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애굽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미묘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모든 가족이 다 좋습니다.

그의 아내, 아이들까지도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움면, 그 아내, 자식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밉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저의 교인들이 저의 아내와 애들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단지 하나입니다.

그들이 저를 좋아 하기 때문에 저의 식구들에게 너무 잘 해 줍니다.

길을 가다가도 저의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가게에 끌고 들어가 이것 저것 다 사줍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자기 자신 한 사람만의 축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자기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의 성공은 자기 한 사람으로 멈추는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가족과 애굽사람, 심지어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복이었습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출세하여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입니까?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것입니까?

내 학업이나 어떤 업적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공을 이루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 혼자 잘 살고, 나 혼자 존경 받고, 나 혼자 권세 누리며 사는 것입니까?


참 성공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남도 잘 살게 하고 남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나는 기쁘지만 남들을 슬프게 만드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나는 좋지만 남에게는 해가 돌아 간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은 다른 사람을 복되게 만들고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다른 복을 낳은 복이라야 진정한 복이 됩니다.

남이 잘못되어야만 내가 잘되는 성공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살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0:32,33)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진정한 성공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간 때에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포로로 잡혀간 이방 땅에서 출세하여 장관의 자리에 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자기 고국 땅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백성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요청하여 유다 총독으로 파견됩니다.

그는 총독이 되어서도 녹을 먹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자기 혼자만 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특권 의식에 사로 잡히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그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배자의 의식보다 종의 의식을 더 가지고 특권을 누리는 것보다 섬기는 마음을 더 가졌습니다.

결국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고 영적인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람이 승진을 하여 지위가 높이 올라가면 하나님을 잃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그 위치가 하나님보다 크게 보여 하나님을 외면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치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내가 출세하고 성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저주이며 실패입니다.

오늘날 왜 우리가 이 사실을 다 잊어 버립니까?

요셉을 애굽의 감옥에서 건져 내여 국무총리로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다니엘을 들어서 왕은 오른팔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출세하고 높아지는 것은 누구의 의해서 되는 것입니까?

다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결코 우쭐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번창함이 나의 출세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성공 뒤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있습니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받은 것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가난하더라도 맑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것이 승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높아지고 성공해도, 내 삶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이것만큼 복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합니다. 출세하여 남 주어야 합니다.

성공해서 남 주어야 합니다. 돈 벌어서 남 주어야 합니다.

남에게 주기 위하여 공부하는 사람, 약하고 낮은 사람을 돕고 섬기기 위하여 출세하는 사람,

그리고 바르게 쓰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버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필요합니다.

출세하여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출세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어 성공하게 만들고 출세하게 만듭니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라고 한 것 아닙니까?

누가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남의 유익을 위해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와 우리의 자녀들이 다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면 남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능한 한 출세하여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향해서도 “하나님, 나의 자녀가 출세하여 세상에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다 성공하여 남에게도 복이 되는 성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요셉의 성공은 형들을 기쁜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9-11절,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 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요셉은 형들에게 이 무서운 흉년이 앞으로 5년이나 계속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무서운 흉년에서 아버지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먼저 이 애굽에 보내어 준비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빨리 아버지에게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하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은 자기의 살아 있는 기쁜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형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공된 사람입니다.

이미 예수 믿어 구원받고 천국 갈 사람들인 우리가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성공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들은 이 흉년이 얼마나 지속되며 얼마나 무서운 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알려 주고 이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


이 세상은 흉년과 같은 죽음이 올 것이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에서 살아 남는 방법이 있다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죽은 후에 맞이할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만일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죽음 이후에 있고 이 무서운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일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다 끝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려야만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심판의 고통에서 살아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믿는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졸지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사망의 고통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망 후에 있을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이 심판으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한 사람들이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성공은 그 성공을 듣는 모든 사람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자꾸 나쁜 소식만을 전합니다.

나쁜 소식, 남의 잘 안 된 소식, 남의 나쁜 점, 남의 흉과 허물만을 자꾸 들추어 냅니다.

그런 소식을 전하는 사람보다 남의 좋은 소식, 남의 장점과 칭찬, 남의 잘한 것만 전할 수 있다면 나도 좋고 소식을 듣는 사람도 좋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쁜 소식, 복음의 소식, 구원의 소식만을 전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요셉의 성공은 야곱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영광스러운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28절,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야곱이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에 곡식을 사로 보내고 아들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마어마한 행렬입니다.

번쩍번쩍한 애굽의 수레에 선물을 가득 실고 왔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벤츠와 롤스로이드 수십대의 행렬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일은 아들들이 전하는 소식입니다.

“요셉이 살아 있어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기절했습니다.

26절,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여기서 ‘기색’이라는 말은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기절할만도 합니다. 이 엄청난 사실 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쁜 소식을 듣고도 기절하지만 너무 좋은 소식을 들으면 기절합니다.

저의 작은 누님이 저의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말을 듣고 기절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작은 누님의 아들이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됐다는 말을 듣고 또 기절했습니다.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기절했다가 한참 만에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 기운이 소생합니다.

야곱은 수레를 보고서 이제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야곱이 잘나고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야곱이 복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셨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보상해 주셨습니다.

말년에 기쁨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제야 감격에 벅차 말합니다.

“족하도다! 더 이상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가? 요셉이 살아 있다고 하니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만나 보리라. 나는 이제 소원을 다 이루었다”

요셉은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후 하나님을 원망하며 기쁨이 없이 살아 왔습니다.

그는 슬피 울며 음부로 내려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자기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고 저주 받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울부짖었으며 인생을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생의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들이 살아서 성공하여 아버지를 모시려고 수레를 보냈습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나타난 결과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엄청나게 채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그에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가 잃었다고 생각한 것은 실제로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간 빌려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요셉을 돌려 주셨을 때에는 온 가족의 구원자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몇 백배의 축복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늙은 야곱의 입에서 엄청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야곱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손해 보았다고 생각한 그것을 통해 엄청난 것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요셉을 돌려 주셨을 뿐 아니라 몇 갑절이나 더 갚아 주셨습니다.

더욱이 요셉으로 인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야곱의 입에서 이제는 불평이나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같은 죄인에게 왜 이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까?”라는 감사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는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무지 상상치도 못한 복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영광과 황홀감은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이 세상이 끝나고 마지막에 우리 앞에 펼쳐 질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은 결혼식날 신부의 단장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 같은 교회 다니며 자란 아주 못생긴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때 보니 아주 딴판입니다.

제가 그 날 결혼식 사진을 찍었는데 그렇게 예쁘고 잘 생길 수가 없습니다.

전혀 딴 사람입니다.

그 아름다움 모습, 황홀감의 모습이 마지막 우리의 결론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 마지막에는 더 이상 통곡할 일이 없습니다.

눈물 흘리며 탄식하거나 한숨 짓는 일이 없습니다.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는 슬픔과 아픔, 고통은 다 사라집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영원토록 살아가는 축복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생의 결론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 아름답고 영광된 인생의 결론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우리는 모두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인생의 삶이 어렵습니까?

결론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나의 결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큰 축복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한숨 짓고 불평하며 근심하며 산다면 그것은 믿음 없는 삶입니다.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영광의 결론을 바라본다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을 가지고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때로는 돈도 벌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을 원망하십니까?

하나님이 왜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느냐?고 원망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세요.

예수님 때문에 잃어 버린 것은 잃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잃어 버렸다고 생각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슴에 빛나는 보석으로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잃어 버린 것에 기름을 부어서 수많은 영혼을 살리시고 몇 갑절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감격과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잃은 것은 결코 잃어 버린 것이 아닙니다.

잠시 하나님께 빌려 드린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었지만 사실은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빌려 가셨을 뿐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고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결국 신앙은 그리스도 때문에 무엇가 중요한 것을 잃는 것입니다.

주님을 인하여 잃은 것이 있는 사람마다 “오 주님 만족합니다. 나 같은 죄이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잃어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말년이 행복하고 “하나님! 이제는 만족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오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젊었을 때는 좀 고생하고 어렵게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영광스럽고 만족하게 보낼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매는 마지막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산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마지막의 고백이 “주님! 이제는 족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는 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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