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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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45장 1-15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저는 지금도 가슴이 찡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산 가족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1980년도 중반에 한국의 KBS TV에서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을 벌이면서 생방송을 여러 날 하였습니다.
그 때 전국민을 울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마다 헤어진 가족을 찾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간판을 만들어서 KBS로 몰려 왔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눈물 겨운 일입니다.
더구나 죽은 줄 알았던 식구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요새 한국에서 1977년도 북한에 납치된 고등학생인 김영남이 살아 있다고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타난 장면은 아주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요셉이 22년만에 만난 형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오늘 장면만큼 감격적인 장면이 흔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끌어 오르는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기 주변의 하인들을 물러가게 하고 큰소리로 통곡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드디어 비밀이 풀렸습니다.
요셉의 통곡과 고백을 통해 수수께기 같은 일들의 모든 비밀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왜 자기의 정체를 밝혔을까요?
유다의 생명을 내건 간청 때문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동생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조건 없는 희생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조건 없는 희생적인 사랑은 놀라운 일을 이룹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도 어떤 자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의 이기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거품 사랑입니다.
부부 관계를 보세요.
사건이 나면 핑계를 대고 싸우고, 사건이 생기면 헤어집니다.
이것이 사랑의 거품입니다.
진실은 때려도 붙들고, 욕해도 붙들고, 발로 차도 붙드는 것입니다.
유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걸고 탄원하자 요셉은 그 사랑 앞에서 무너집니다.
이렇게 희생하겠다는 것은 무섭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엄격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던 요셉이 통곡합니다.
이 눈물이 어떤 눈물입니까?
이 눈물은 감격의 눈물입니다.
잔인하던 형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변한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그리던 동생을 보고 감격한 눈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격입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바라보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고대하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그의 가슴은 감격했고 하나님의 은혜의 전율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감격의 통곡을 합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은 미움과 다툼으로 가득 찼는데, 죽음과 전쟁이 가득찬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요셉과 같은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는 미움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원수가 아닌 형제로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감격이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살아서 역사 할 것입니다.
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날이 오면, 이 땅에 살아 가는 동안에 도무지 풀리지 않던 인생의 문제들이 풀리게 되고 도무지 회복되지 않던 인간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날이 찾아 올 것입니다.
나의 가슴에 벅찬 감동과 솟구치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그 날이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 올 것입니다.
그 날을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요셉이 말합니다.
3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나는 요셉이라”
얼마나 감격스럽고 놀라는 장면입니까?
그리고 요셉이 계속해서 말합니다.
7, 8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 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의 이 말 속에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이것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모든 인생사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모든 인생사는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지금까지 요셉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요셉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요셉의 말을 보세요.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
요셉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도 하나님이시고 애굽의 치리자로 삼은 것도 하나님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누구를 만나 이런 일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 사람 안 만났다면 내 생애가 이렇게 어렵지는 안았을 텐데 그 사람 만나 내가 이모양 이꼴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 잘 만나 내 팔자가 펴졌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런 모든 것이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잘 되고 안됐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잘 되고 잘 안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극작가이고 연출자이시고 감독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에 판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의 주관자이십니다.
요셉이 감옥에 간 것이 보디발의 아내 때문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이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해서 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총리로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났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인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잘 되게 만드신 것입니다.
내가 우연하게 우리 엘림 교회로 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발걸음을 엘림 교회로 인도 한 것입니다.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기독교는 현실 도피는 아닙니다.
모슬렘처럼 운명론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정해 진대로, 마치 기차가 레일을 가듯이 내 운명이 정해진 대로 가는 운명론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시고 나의 삶을 이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는 더 큰 현실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의 삶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고 이끄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현실속에서 나를 도우시고 나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만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진 것 같이 이제는 절망적이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때를 만납니다.
그래서 좌절에 빠지기도 하고 절망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환경을 탓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인생들의 최대의 실수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당황하고 좌절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절망의 타래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그러한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나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나의 고통도 다루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관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 요셉을 보세요.
그는 자기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고난이나 어떤 시련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감격적인 축복으로 끝납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이 형들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형들이 저를 미워해서 팔아 먹었지만 저는 질긴 놈입니다. 이렇게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 습니다. 이제는 제가 갚아 줄 차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모든 것을 거래관계로만 생각합니다.
또 거래는 주고 받는 식입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라”고 합니다.
거래를 하면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용서할 수 없고, 그 손해에 대한 댓가를 꼭 받아내야 합니다.
거래관계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파노라마 안에서 모든 문제를 봅니다.
나는 손해 본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내가 손해 보지 않게 해 주시고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주십니다.
나는 방황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걸음을 정확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곳에 이르게 하시고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걸음이 늦어졌을 때는 늦어져야 할 이유가 있고, 빨라졌을 때는 또 빨라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끌어 오셨는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복수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섭리 의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좀 손해 봤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 일을 유익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나에게 손해를 끼치조 나를 억울하게 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일어난 일이라면 그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하나님의 섭리를 강하게 믿을수록 더욱 큰 축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선하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악한 세상에서도 선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낙망하십니까?
왜 걱정 하십니까?
왜 허우적거리십니까?
이제 힘을 내세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세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는 모든 고난이 결국에는 축복의 잔치로 끝나게 됩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바꾸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사건, 지워 버리고 싶은 사건을 축복의 사건으로 바꾸었습니다.
요셉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앞으로 흉년이 들 것을 아시고 형들의 손을 통해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고 이곳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와 형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이 처음에 애굽에 종으로 팔려 와서는 그 이유를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계속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가운데 결국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7년 대 흉년에서 가족들을 건지기 위해 자기를 먼저 보내어 준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 과정 속에서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해 하기 힘들고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 보면 다 압니다. 오히려 더 탁월한 선택이고 나에게도 좋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병들게 하시고 이런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두십니까?
왜 하나님이 나의 사업을 망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왜 하나님이 나를 이 미국 땅에 보내 이렇게 고생하게 만듭니까?
도대체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 때는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믿고 순종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어젠가는 그것이 복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나에게 그런 과정이 꼭 필요했음을 알게 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살아 가면서 이 비밀이 하나씩 알게 됩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일 없었다면 내가 도무지 예수를 믿지 않았을텐데 그런 일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
나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믿지 않으니까요?
젊었을 때에는 똑똑하고 힘이 있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 은혜를 깨닫고
“아,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고통을 주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진 것 같은데 다시 일어나고, 죽을 것 같은데 죽지 않고, 끝난 것 같은데 끝나지 않고 계속 갑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고 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이 비밀을 맛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비밀을 알기에 낙심하지 않고 계속 신앙의 길을 걸어 갑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은 우리의 이성과 지혜를 뛰어 넘습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고 나에게도 좋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고 심지어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습니다.
정말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에게 미쳐야 신앙 생활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때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고 결국에는 우리에게도 선을 이룹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면 모든 불행한 사건이 복된 사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사건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사건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꿀 수 있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간 것도, 감옥에 들어 간 것도 모두 다 자기 백성들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내 계획 가운데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기 ‘모든 것’은 즐겁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든 것도 포함합니다.
그러한 고통까지도 감수하고 나갈 때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나의 미래를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나의 미래가 나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 미래를 바라 봅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가 20년이든 50년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믿음올 바라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우리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최선의 축복과 감격의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 우리에게 모든 것이 선을 이루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복이 됩니다.
9-11절,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 이 아직 다섯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 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은 자기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복이 되었습니다.
가뭄 때문에 고생하던 가족들이 이제는 요셉 때문에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 한 사람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 중 신실한 한 사람이 복을 받음을 통해 다른 모든 가족에게도 그 축복이 돌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 사람의 믿음과 인내의 결과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나의 믿음과 축복은 결코 나 혼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중에 내가 하나님을 믿음을 통해 우리 가족이 다 예수를 믿습니다.
부모가 믿음 좋음을 통해 자녀들도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 생활 잘 하는 것, 누구 때문입니까?
다 믿음 좋은 우리 부모 때문 아닙니까?
저도 저의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는 것은 믿음 좋으신 저의 부모님의 신앙이 나로 하여금 축복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믿는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애굽은 요셉 덕분에 구원 받았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구원을 받고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 나라가 복을 얻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축복을 받으니까 원수마저도 용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상처를 많이 받는 존재입니다.
작은 일로 인하여도 큰 상처를 받고 그 상처의 고통이 오래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이런 허물을 덮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사랑으로 대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마저도 포용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기쁨과 승리와 축복을 안겨다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복된 존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도 복되고 남도 복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복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인생은 힘듭니다.
더구나 이민의 삶을 더 힘듭니다.
고통과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어려움이 지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옵니다.
점점 더 깊은 어두움속에 빠져 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아침이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 결코 낙심하지 마세요.
내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러니까 너는 안 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결론은 언제나 “그러니까 너는 살 가치가 있어!”라고 합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더 강력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 생각에는 방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확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방황했을 때가 가장 똑바른 길을 가고 있을 때입니다.
주님이 나의 길을 결정하셨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이 자꾸 깊어집니까?
아침이 거의 다 온 줄을 아세요.
지금까지 잘 참으셨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침체의 늪에 빠지지 말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더욱 더 힘을 내서 믿음으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리하면 그 영광의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고통이 기쁨이 되고, 저주가 복이 되며, 불행한 사건이 행복한 사건으로 변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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