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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치유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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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유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세기 41장 50-57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어떤 시인이 이런 노래를 지었습니다.

내 삶에 고통이 없다면/ 나는 노래하는 자가 되리/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음을 어이하리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이는 인생이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환란이 없으면 좋겠는데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환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면제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난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통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고통을 이기고 나가서 얻는 승리와 평안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군대 생활하면서 힘든 곳에서도 있었고 가장 평안한 곳인 그야말로 ‘만고 땡’ 자리에도 있었습니다.

소대 중대 생활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년에 1년동안 연대 군종을 하면서 얼마나 평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 생활하면서 제일 큰 평안과 쉼을 얻었을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군대에서도 제 마음할 수 있었던 군종생활이 아니라, 쫄병 때 소대생활을 할 때 100km행군을 26시간을 잠도 자지 못하고 밤낮 없이 하고, 혹은 250km 행군을 48시간 하면서, 50분 행군하고 10분간 휴식을 할 때입니다.

그 10분간의 휴식이 가장 큰 휴식이고 평안입니다.

그리고 각개 전투 훈련을 하면서 목표점인 고지를 점령하기 앞서 숨을 고르면서 1,2분 쉴때가 가장 평안하고 달콤한 휴식이었습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다음에 오는 평안의 기쁨은 더 큽니다.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속에서 나온 기쁨은 더 큽니다.


요셉의 삶과 평안이 바로 그런 평안입니다.

이 세상에 요셉과 같은 기구한 운명을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주신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갑니다.

그 곳에서 성실함 때문에 살만 했는데 모함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드디어 노예인 죄수에서 국무총리가 됩니다.

얼마나 극적이고 멋있는 역전 드라마입니까?

그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해 주셔서 성공을 이룹니다.

기다림 가운데 이룬 성취는 쉽게 이룬 성취보다 그 기쁨이 훨씬 큽니다.

피와 눈물로 성취한 꿈은 값지고 땀 흘린 수고 후에 찾아 온 안식은 고귀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었어도 성공을 넘어서 섬기는 삶을 삽니다.

섬김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섬기려면 사람들을 향한 아픈 상처가 치료되어야만 합니다.

마음에 쓴 뿌리가 있고 한이 많으면 남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에 대해 보상을 받거나 보복하려는 나쁜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인 인간 죄성의 본질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요셉을 치료하십니다.

그의 상한 감정과 그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그를 치유하고 그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도록 도와 주십니다.

요셉의 인생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도록 하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치유하시나 살펴 보면서 우리의 삶에도 아픈 상처나 고통이 있다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통해 치유받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 치유하십니다.

50절,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에게는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 뿐만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주셨습니다.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치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성공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물질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녀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치유 방법 중에 하나가 환경을 통한 치유입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마음도 몸도 건강해 집니다.

물론 환경을 초월한 사람도 있고 우리는 환경을 이기고 나가야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민의 삶이 힘들죠?

한국에서는 건강했는데 미국 오니까 자꾸 아프기만 하죠?

왜 그렇습니까?


환경이 힘드니까 마음도 육체도 다 약해 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받아 환경에 따라 삶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의 변화를 소원합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바라던 것들의 일어나면 마음의 치유도 일어나고 육체도 건강해 집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기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로 힘들지 않은 일도 억지로 하면 힘듭니다.


요새 우리 여자 집사님이 매주마다 교회 청소를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힘들어 하다가 교회만 나오면 힘이 쏫는다고 합니다.

“안 아프려면 매일 교회 와서 살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장된 말도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만큼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요셉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변화가 왔습니다.

노예에서 국무총리로, 죄수가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생각치도 못했던 요셉의 꿈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을 줍니다.

하나님은 환경의 변화와 기쁨을 통해서 요셉의 아픈 상처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요셉의 아픈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남을 섬기고 남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면 우리가 환경을 좀 더 쉽게 다스리고 이기며 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인들과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길에 장애물을 제거 시켜 주시옵소서! 평탄한 길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장애물을 넘고 극복해 나가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나 장애물이 제거되어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은 얼마나 더 큰 행복입니까?

우리 모두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좋아진 환경을 통해 지친 육체와 마음이 힘을 얻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과거의 고통을 잊게 하심으로 치유하십니다.

51,52절,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 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이 첫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낫세라고 했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잊었다’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성공 후에 과거의 모든 어두운 추억들을 잊었습니다.

과거의 가슴 아픈 상처들, 그 추억속에 남아 있던 쓰라린 사건들, 그 모든 것들을 흘러가는 강물에 떠내려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좋고 나쁜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잊어 버려도 될 만한 일들을 아직 못 잊고 또 잊어 버리면 좋은 기억들을 여전히 기억하면서 인생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러나 잊을 것은 잊어야 합니다. 망각은 종종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땅히 잊어야 하는 것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잊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 내가 받은 축복, 감사해야 될 일들을, 내가 처음 받은 구원의 감격 들은 잊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쉽게 잊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잊어 버려야 하는 나쁜 기억들과 상처들을 잊지 않고 내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도 빨리 잊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이 나에게 잘 해 준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의 지나간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잊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그 모든 어두운 추억과 아픈 상처를 잊을 수가 있었습니까?

사실 그 모든 사건들은 잊어 버릴래야 잊어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자기를 애굽에 팔아 넘긴 못된 형들, 자기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간교한 보디발의 아내,

11년이나 섬겼지만 죄없는 자기를 감옥에 쳐 넣은 시위대장 보디발,

이 모든 사람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복수를 해도 시원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사를 보세요.

정권만 잡으면 전에 자기에게 못되게 한 사람들을 손 봐주기에 바쁘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모든 사람들과 추억을 잊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잊게 해 주신 것입니다.

므낫세라는 이름의 뜻을 가만히 보세요.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 버리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셉 자신이 잊어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잊어 버리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특별한 지우개로 지워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잊을 수 있도록 더 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쓰라린 상처로 아파하는 대신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과거가 미래를 위한 발전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때는 쓰라린 과거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잊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를 잊지 버리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지도자가 된 후 복수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에도 일이 산적해 있고 앞으로도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향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요셉은 과거를 극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과연 어떻습니까?

아직도 괴로운 과거의 어두운 추억들이 있습니까?

아직도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껶은 상처들이 남아 있습니까?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잊기 힘드시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세요.

하나님의 지우개로 다 아픈 상처, 미움의 상처, 용서하지 못하는 상처들을 다 지워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상처들을 지워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쓰라림을 잊어 버리면 잊어버리는 만큼 축복은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삶에 기쁨도 평안도 다 사라집니다.

요셉은 과거의 모든 시련들을 잊어 버렸고 지금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가져다 주신 열매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의 고난과 그 아비 온 집 일을 잊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축복은 용서한 사람에게 더욱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의 과거의 고난과 형제들이 자기에게 한 모든 일을 잊기로 결정한 것은 용서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용서와 잊는 것은 함께 갑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의 지나간 과거를 잊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이번에 너를 용서하면 세번째 용서해 주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 용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나는 네가 잘못한 것을 다 기억하고 있고 두번이나 용서해 준 것도 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지금 너를 봐 주고 있는거야!”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용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고도의 지배술입니다.

우리가 용서하기로 했으면 다 잊어 버려야 합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는 용서와 잊음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용서하는 마음 위에 풍성하게 임합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게 임하지 못합니다.

내가 남도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용서가 나에게 임하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까?


요셉이 그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허물을 잊기로 결단한 후에 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52절,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 다 함이었더라”

둘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이 ‘창성함’입니다.

요셉이 용서했더니 하나님이 더 놀라운 창성함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원한 맺힌 모든 사람들을 용서한 후에 더 큰 축복과 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는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원한은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파괴합니다.

남을 미워하면 남을 미워하기 전에 자신이 미움의 불덩이를 안고 고통을 받습니다.

사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해야 합니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과 용서하는 사람을 모두 풀어 놓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도록 도와 줍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수레는 용서의 수레입니다. 용서의 수레속에 감추어진 축복을 보세요.

용서하는 수레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쌓여 있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이 임합니다. 그런데 용서하면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요셉은 고난의 수레에서 왕이 타는 버금수레로 바꿔 탔습니다.

그리고 버금수레에서 용서의 수레를 타고 있습니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이고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의 앞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그들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도 풀립니다.

우리들의 앞길도 함께 열립니다.

만약 요셉에게 상처가 남아 있었다면 요셉에게서 복수라는 독침이 나갔을 것입니다.

상처는 치유 되어야지 치유되지 않으면 고름이 생기고 독이 생깁니다.

그 상처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죽입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독이 됩니다.

그것을 제거하는 길은 용서 뿐입니다.

용서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용서할 때 복수라는 무서운 집착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게 살게 됩니다.

복수라는 안경을 벗어 버릴 때 눈이 밝아지고 세상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아름답게 해석됩니다.

과거의 사건 속에 담겨 있는 독소들이 사라집니다.

아무런 원한 없이 과거의 사건을 바로 보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독나무가 되지말고 아름다운 냄새를 풍기는 향나무가 되시기 바랍니다.

분노의 씨앗을 가지면 쓴뿌리가 생기고 결국에는 독나무가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아름다운 향나무가 됩니다.

향나무는 찍혀도 향을 발합니다.

예수님은 찍혀서도 향을 발하셨습니다.

독을 향기로, 배신을 용서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는 독을 내붐는 독나무가 아니라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나쁜 과거는 다 잊혀 버리고 상처도 치료함 받아 날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하나님은 축복을 통해 치유하십니다.

52절,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이 둘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창성함’ 혹은 ‘두배의 결실’이라는 뜻을 가진 ‘에브라임’이라고 집니다.

요셉이 지금 얼마나 창성했습니까?

그의 창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의 모든 곡식을 주관합니다.

가정에도 두 아들을 주어 행복합니다.

그에게는 과거의 고통은 잊고 이제는 창성함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창성함을 누가 주었습니까?

누가 창성케 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요셉은 지금까지 남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현장에서 수고하고 노력하여 성공의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노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한 땅에서 창성케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심으로 위로해 주시고 모든 과거의 상처를 잊게 하십니다.

지금 고생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중이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이를 때에 내 모습이 어떤 것인가?’ 입니다.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에 아무렇지도 않으나 하나님 앞에 가는 그 순간은 내 생애 최고의 때에 가게 해 주옵소서”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갈수록 그 해가 자신의 생애에 최고의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시간이 갈수록 과거의 고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이 나타나길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시작보다 마지막이 더 멋 있고 충성한 삶이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새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이민의 삶속에서 고난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삶의 가장 기초적인 신분문제는 고사하고 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압박을 받는 분들이 여러 명 계십니다.

그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기도가 더 나옵니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조금 지나면 하나님이 축복으로 내려 주실거야!

나중에는 이 어려움이 다 신앙의 간증이 될거야!”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지금은 고통이고 어려움이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축복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나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내가 지금 고통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이 고통을 주실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대단하고 부자이고 강합니다.

내 눈으로 보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내 눈으로 보면 어려움이고 그냥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이라는 변장된 축복을 주십니다.

고난이라는 축복의 선물을 보내셔서 강하게 하시고 위대하게 하십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는 고통을 당하고 힘들지만 해산한 후에는 기쁨이 큽니다.

산모는 해산의 기쁨 때문에 지나간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출산할 때 여자들은 그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 마음이 바뀝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 때문에 옛날의 고통을 다 잊어 버리고 또 낳고 싶어 합니다.

성취의 기쁨이 성취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에 풍성한 축복을 부어 주셔서 나의 지나간 과거의 모든 고통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다!’라는 뜻입니다.

“고통과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병들었을 때 나를 고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고 계십니다.

이 치유의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고통의 환경 가운데서 일어나 여전히 기도하고 찬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함으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오는 말씀을 하나 더 살펴 보겠습니다.

드디어 흉년이 시작되자 온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기근이 들자 모든 백성이 굶주렸고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굽왕 바로를 찾아 갑니다.

이 때 바로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55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대로 하라 하니라”

결국 요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요셉은 그의 애굽 이름 ‘사브낫바네아’처럼 ‘애굽의 구세주’였습니다.

오직 그만이 애굽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로가 구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나아갔지만 그가 구세주가 아니라 요셉만이 구세주였습니다.


요셉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요셉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요셉의 모습은 우리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가장 가까운 형들에 의해 은 20개에 팔린 것처럼, 예수님도 가장 가까운 제자에 의해 은 30개에 팔렸습니다.

죄없는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밑바닥에 내려간 것처럼, 예수님도 죄없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국무총리가 되신 것처럼,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드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과 세상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만이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입니다.

영적 기갈을 맞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유일하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구원을 얻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바로에게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알고 세상의 왕으로, 세상의 돈으로, 세상의 권력 앞으로, 혹은 힘있는 자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 나와야만 구원을 얻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지금 누구에게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문제 해결자이신 예수님께 나아갑니까?

아니면 세상적으로 해결해 줄 곳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며 문제의 해결자이신 우리 예수님께만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나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님께 내어 놓아 치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머뭇 거리지 마시고 환경이 더 나아지면 하겠다 하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 하세요.

환경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지만 모든 궁극적인 치료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악을 치료하고 우리를 모든 상처에서 치료해 줍니다.


그래서 나의 상처를 영광의 별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애 속에서도 요셉과 같은 축복을 누리는 순간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원을 따라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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