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백의흠] 꿈을 꾼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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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꿈을 꾼 바로

본문: 창세기 41장 1-16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인생에 있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오면서 가장 마음을 졸이면서 기다린 적이 어느 때입니까?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산모실 밖에서 기다릴 때입니까?

아니면, 밤 늦게까지 연락도 없이 안 들어 온 자식을 기다릴 때입니까?

혹은 시험을 치르고 합격 발표를 기다릴 때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미국에 오는 비자를 받으려고 미 대사관에서 인터뷰 할 때나 영주권을 받으려고 이민국에서 인터뷰할 때 입니까?

그 때는 비록 일, 이십분이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습니까?

기다림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희망도 갖게 만들지만 지치게도 합니다.

아마 기다림보다 긴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요셉의 기다림이 바로 그런 기다림입니다.

창세기 40장 끝 절인 23절과 41장 첫 절인 1절 사이는 비록 한 절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공백은 엄청나게 큰 공백이고 긴 시간입니다. 

요셉이 술장관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며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술장관이 나간 후에 요셉은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감옥에서 나갈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마음은 기대감에 젖어 매일 같이 “오늘이나 이 감옥에서 나갈까? 내일이나 나갈까?”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한 달 두달 지나가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캄캄 무소식입니다.

이 때 요셉의 절망감, 요셉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마 애간장이 녹고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 갔을 겁니다.


이 기간을 성경은 “만 이년 후에”라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 이년이 지났습니다. 2년을 꽉 채웠습니다.

2년은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끌려와 고생한 13년의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2년이 아니라 20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긴 긴 세월이 흐른 후에 요셉의 생을 뒤집어 놓을 일생 일대 최고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powerball의 jackpot에 당첨되어 대박을 맞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인생 역전도 이런 역전이 없습니다.

어떻게 노예이며 더구나 죄수가 세계 제일의 강대국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요셉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기다림의 결과이고 요셉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잊혀진 존재로 13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역사의 무대를 준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축복입니까?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주신 꿈에 대한 회의를 갖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탄은 우리를 시험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소망을 주고 축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평안을 주시는데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놀라운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요셉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을 성경을 통해 살펴 보면서 요셉에게 일어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 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에게 함께 하시고 요셉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나에게도 함께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요셉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1절,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 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 온 지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보통의 믿음이 아니고는 힘듭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더디가고 원망스럽고 안타까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기간을 그냥 흘러 보낸 것이 아니라 그 기간동안 성실하게 일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살았습니다.

그 기간은 허송의 시간이 아니라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술장관의 꿈을 해석해 준 대가고 얼마 후에 나왔다면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못됩니다.

애굽의 고위 관리는 30세가 넘어야 등용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라고 말했습니다.

때가 되기 전에는 내 생각에 아무리 충분한 것 같아도 충분한 것이 아니고 다 된 것 같아도 다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늦지 않습니다.

요셉에게는 13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했기 대문에 그 기간 동안 낯선 땅에 팔려서 종살이 하고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가장 적합한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이르지도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보다 뒤쳐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성급히 앞서 나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라는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지킵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볼 때 어떤때는 약속이 너무 늦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혜의 하나님은 그가 일하셔야 할 시기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모든 계획이 산산히 부서진 것처럼 보이고, 문들이 닫힌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주님을 기다릴 때 큰 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그 날을 베풀어 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언제나 되어야 이 힘든 이민의 삶이 끝납니까?

언제가 되어야 신분 문제 걱정하지 않고, 돈 걱정하지 않고 평안히 살 수 있습니까?

언제나 되어야 이 고통이 끝나고 나의 꿈이 성취됩니까?

정말 안타깝지 않습니까?


더구나 기도하는 것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들의 남편은 쉽게 쉽게 교회에 나오는데 나의 남편은 그렇게 기도해도 안 나옵니다.

남들은 사업도 잘되고 돈도 잘버는데 나는 일 복은 있는것 같은데 돈 복은 지지리도 없습니다.

남들의 고통은 저렇게 쉽게 끝나는데 나의 고통은 이렇게 한없이 계속됩니다.

얼마나 짜쯩스럽고 괴롭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언제가 되어야 내 고통이 끝난다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날에 내 꿈이 성취된다고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고통 건너편에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 바다를 건너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그들이 사흘 길을 행하였지만 물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해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방금 전에만 해도 홍해 바다를 기적같이 걷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서 모든 백성이 춤을 추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이제는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마라 그 다음에 6마일 앞의 엘림이라는 곳에 오하시스 70개와 물샘 열두개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눈 앞에, 조금만 가면, 한 두 시간만 더 가면 엘림에 좋은 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싸움은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는 기다림의 싸움입니다.

엘림은 지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엘림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엘림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절망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가 신음하고 있습니까?

엘림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림의 축복을 주시려고 바로 우리 눈 앞에서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힘들더라도 기다리세요.

더디더라도 기다리세요.

그 기다림속에서 나의 인격이 자랍니다.

나의 성품이 변하고 신앙의 열매가 열립니다.

기도를 드렸으면 그 기도에 응답하실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내세요.


요셉의 지난 13년의 세월은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13년간의 극심한 모든 역경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 되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기도 응답이 없고 답답한 가슴앓이만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현실만이 계속되십니까?

그렇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대를 만드실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시련을 겪고 모함을 당하고 말 못할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가져 오세요.

당장은 내가 바라던 기대가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때가 되매 나를 높이 들어 쓰실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기다리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런 축복을 다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하나의 문이 닫힐 때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놀라운 일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감옥 밖에서는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모든 술객들과 박사들을 불러 그 꿈을 해석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바로의 꿈은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더구나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은 그 당시 과학과 수학, 천문학과 점성술 등 모든 학문에 정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꿈을 해석하고 하늘의 해,달,별의 움직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꿈 하나 해석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막고 지혜를 막으니까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무능한 존재가 되어 오직 요셉이 등장하여 해석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무능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구원을 보세요.

구원의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얻고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멸망받는다”라고 말해도 못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너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해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구원도 하나님이 주셔야 하고 구원의 복음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공부 많이 한 박사도 못 깨닫는 구원의 도를 내가 깨닫고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항상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꿈을 해석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바로에게 한 사람이 등장하여 말합니다. 

9-14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 곳에 시위대장의 종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어 달렸나이다,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얼마나 극적인 장면입니까?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고, 술맡은 관원장조차 그를 잊고 있을 때에는 요셉의 생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 희망이 빛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혔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원리이고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계획입니다.

요셉에게는 길이 막혔습니다.

창세기 40장 마지막 구절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잊었더라” 잊혀진 요셉입니다.

술장관에게 기대를 가졌는데 그가 요셉을 잊었습니다.

얼마나 요셉이 답답하고 괴로웠겠습니까?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이 감옥의 고난과 어려움과 절망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합니까?”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십니까?”

그러나 요셉은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요셉이 잊혀졌습니까?

사람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이년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기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침묵만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고 느끼는 동안에 그 분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찬 어느 날 요셉을 향한 모든 훈련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시간에 일을 시작하십니다.

술맡은 관원장보다 더 큰 바로 왕의 손에 의해 요셉이 풀려납니다.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다는 이 곤경에 부딪쳤을 때 갑자기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리속에 요셉이 생각납니다.

‘내가 요셉을 잊고 있었구나! 그의 은혜를 잊고 있었구나?’

그리고 왕에게 요셉에 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 길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더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이고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는 13년동안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더구나 2년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한 사람을 잘 만나 그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그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는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이제는 절망입니다.

벼랑 끝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벼랑 끝에서 오히려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벼랑 끝으로 오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무서워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다가갔습니다.

그는 그들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아 올랐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벼랑 끝에 서서 떨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하늘을 날아 올라갑니다. 

이제는 끝나고 죽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높이 올라 가고 날아 갑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회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 하나님은 더 좋은 문을 예비하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 야곱의 집 문이 닫힐 때 보디발의 집 문이 준비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 문이 닫혔을 때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의 문이 닫힐 때 애굽의 왕궁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아주 극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모든 문이 닫히고 이제는 헤어나 갈 길도 없고 절망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결코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여십니다.

사방이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은 뚫려 있습니다.

내가 절망의 골짜기를 걷고 있었을 때에, 내가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 있었을 때에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더 좋은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억까지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의 문을 여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정과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문이 닫힐 때 절대로 좌절하지 마세요.

또 다른 문이 열립니다.

닫힌 문만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열릴 새로운 문을 볼 수 없습니다.

닫힌 문은 잊혀 버리고 새로운 문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에는 시련이 있지만 그 시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인생의 시련은 꿈꾸는 사람이 누리게 될 영광과 축복에 비하면 극히 짧은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와 감옥생활을 13년 했지만 나머지 80년은 애굽의 최고 높은 사람으로 존경과 부귀를 누렸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나에게 좋은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모든 대답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14-16절,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 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 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그리고 드디어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불려 옵니다.

바로가 요셉을 찾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게 하시면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면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계획을 넘어섭니다.

사람의 뜻과 사람의 방법으로는 안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됩니다.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잊었던 사람도 생각나게 하시고 풍년도 주시고 흉년도 내립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대답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온갖 지혜를 짜내고 온갖 술수를 짜내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이 그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제 요셉의 답변을 보세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리이다”

여기에 요셉의 신앙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 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돌아 올 영광을 사양했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습니다.

“그 일을 이루는 분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은 크신 하나님의 손이 움직여서 되는 것이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 큽니다. 

그 큰 손이 우리를 움직이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손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꿈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을 해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세요.

무엇인가 성공하면 자기가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해서, 그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이솝의 우화 가운데 ‘연못가의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 중 한 마리가 하늘에 날아 다니는 새들을 보고서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I.Q. 높은 개구리 한 마리가 어느 날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에게 협상을 했습니다

“야! 여기 나뭇가지가 있는데 맨 끝을 네가 입으로 물고, 나는 이쪽 끝을 물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해 달라” 

그래서 이 개구리는 하늘을 날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연못가의 다른 개구리들이 부러움와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 보면서, 

“야, 그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생각해 냈니?”라고 묻습니다.

이 하늘을 날고 있던 개구리는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누가 하긴 누가 했니 내가 …”라고 말하는 순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땅에 떨어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들어 가면 죽고, 하나님이 들어 가면 삽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요셉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뒤에서 요셉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쳐 줍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요셉이라는 사람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요셉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소문나고 예수님의 이름이 소문나야 합니다.

교회나 목사 개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심어주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려 주는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알려주는 성도, 하나님을 심어 주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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