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처음 신앙을 찾는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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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처음 신앙을 찾는 야곱
본문 : 창세기 35장 1-7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람은 좀처럼 잘 변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인격과 습관은 아마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이라고 할만큼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극적인 사건이나 체험을 겪은 사람들은 180도 변하기도 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마음의 큰 감동이나 충격을 받으면 바뀝니다.
여러분은 살인마가 변한 사건들을 종종 기억할 겁니다.
강도나 강패 두목들이 변해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며 간증하는 것을 들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그 간증으로 인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조폭 두목들이 변하여 전도자가 되었어도 그들 속에 남아 있던 옛품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옛날의 그 품성을 완전히 끊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다시 옛날의 삶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대도 조세형도 그랬고 조폭 두목 조양은도 그랬습니다.
감옥에서 회개하여 예수를 믿고 완전히 변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자가 되어 많은 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년의 삶이 그렇게 아름답지가 못했습니다.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우리에게 실망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했다고 말을 합니다만은 그 간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체험으로 인해 얼마나 달라졌느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이지 체험 그 자체는 아닙니다.
야곱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하나님의 도움도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셔서 어려울 때마다 도와 주시고 위기의 순간마다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큰 은혜도 체험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 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평안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예기치 못한 큰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딸이 이방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그것으로 인해 분노한 자식들이 그들의 종족으로 몰살시키고 떼 강도짓을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오래만에 얻었던 야곱의 행복이 깨어집니다.
그리고 야곱은 다른 종족의 보복을 받을까 봐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중심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도 받았도 체험도 했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겠다고 서약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거듭 마음이 바뀌는 별수 없는 인간입니다.
하나님과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서원한 것도 은혜받고 체험한 것도 다 잊어 버리고 옛날의 모습으로 그대로 살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깨우쳐 주시고 새롭게 살게 하기 위해 또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세요.
야곱의 잘못을 개인의 문제로 치시면서 깨우쳐 주십니다.
처음에는 큰 징계없이 단지 생명이 위태롭게 만들어 도망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이때는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변화되지 않으니까 몸을 쳐서 환도뼈가 뿌러 뜨려 절게 만듭니다.
그리고 보세요.
그래도 아직 완전히 변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자식을 칩니다.
딸은 강간 당하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되고 떼강도가 됩니다.
자식을 치는데 어떻게 합니까?
손을 들고 이제는 완전히 항복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항복 안 했더라면 자식을 죽이던지, 아니면 야곱의 몸을 더 크게 치셨겠죠?
야곱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자 다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개입하십니다.
야곱이 위기에 빠질때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늘 개입하셨습니다.
야곱은 문제를 일으키고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람은 문제를 만들고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나는 문제를 만들고 하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야곱의 모습을 보세요.
야곱은 잘난 것이 없습니다.
예쁜 것도, 예쁜 짓을 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을 만한 짓을 한 것도 없습니다.
선한 모습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우리와 너무나도 비습합니다.
급한 상황이나 당해야 하나님을 겨우 찾고 이 때에야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위기에 당하면 꼭 나타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형편없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실까요?
이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도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사랑하는 겁니다.
자녀이니까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못나고 잘나고 상관없습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못나고 형편없으면 그 자식 때문에 부모는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사랑합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거나 예뻐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속으면서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나 하나 없어도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섭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여기에 낙심하며 절망에 빠져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네 신앙도 나태하고 죄를 짓고 너에게 더욱 어려움이 생기니 일어나, 벧엘로 가라는 것입니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형의 눈을 피해 도망가다고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여기는 죄인이 은혜의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도 받았고 하나님께 서원도 했습니다.
감격스러운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벧엘이 있습니다.
나의 벧엘이 어디 입니까?
벧엘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감격의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죄 용서함을 받은 감격과 눈물의 장소입니다.
내가 추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꼭꾸라져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면 회개하던 그 상황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을 되살려야 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내 마음속에 십자가의 감격이 흘러나며 주님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던 그때를 늘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때는 주님 앞에 이 몸 전체를 드리며 아골골짝 빈들에도 이름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며 따르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그 장소, 그 상황, 그 헌신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삶에 지쳐서 세겜에 머물면서 그 감격을 잊어 버리고 지냈습니다.
교회는 습관적으로 오고 예배 드려도 감격이 없고 냉냉한 상태로 그냥 지내며 살아 왔습니다.
우리는 빨리 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옛날에는 나에게도 말씀에 대한 감격이 있고,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뜨거운 눈물과 사랑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냉냉한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이 된다며 빨리 이 자리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만나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벧엘로 올라 가야 합니다.
벧엘로 가서 그 때의 감격, 그 때의 마음, 그 때의 서원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단을 쌓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감격, 그리고 하나님께 매일 삶으로써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감격으로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절망에 빠집니다.
앞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불안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세요.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 믿었을 때 주셨던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세요.
우리가 절망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회복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삶이 지금 비참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믿지 않으면 현실이 비참해 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잃어 버리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는 오직 욕망 덩어리인 자기 자신만 남습니다.
그러면 불행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대로 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잊었을지라고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그러면 그 때가 고난의 때가 아니라 축복의 때가 됩니다.
이제 드디어 야곱이 깨닫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벧엘로 올라 갑니다.
그런데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야곱은 자기 집 사람들에게 세가지를 요구합니다.
2,3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첫째는, 우상을 버리라,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야곱의 가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방 신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가족들이 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 올 때, 아버지의 신인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드라빔은 일종의 수호신입니다.
라헬이 자기 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는 드라빔을 갖고 가면 자기 가족이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도적질해 갔을 겁니다.
라헬은 지금까지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하니까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20년을 같이 살아도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변화 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우리는 아직까지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 같습니다.
그들과 똑같이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죄를 짓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상을 가지고 있고, 내 속에 드라빔을 품고 있습니다.
드라빔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돈일수도 있고, 그것이 성공일 수도 있고, 그것이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우상은 단지 눈에 보이는 드라빔이나 돌부처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우상입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우선에 두면 돈이 우상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 됩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위에 두면 자식이 우상이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방해 되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우상은 다 다릅니다.
그것들을 찾아 내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민의 삶을 살면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에 대한 고통이 제일 크고 돈을 벌기 위해 전 삶을 드리는데 이민자인 우리는 더 합니다.
왜 이 미국 땅에 왔습니까?
다른 나라에 와서 왜 고생합니까?
돈 벌어 잘 살고자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생합니다.
돈이 없으면 고통을 당하고 돈이 없으면 남은 여생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돈에 대한 걱정, 물질에 대한 집착이 떠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실은 우리 속에는 돈에 대한 생각이 가득찼습니다.
그 돈이 바로 우리들이 드라빔입니다.
이것을 묻어야 합니다,
돈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선을 두어야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고 넘어가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우상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탐심이 우상 숭배입니다.
욕심이 우상 숭배입니다.
내가 어떤 것에 욕심을 갖게 되면 그 욕심이 내 생각과 사고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그것이 나를 지배해 버립니다.
그것이 나의 머리속에 가득차 있고 하루종일 그 생각이 내게서 안 떠나 갑니다.
하나님보다 더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나를 더 지배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신이 되고 나의 우상이 됩니다.
지금 우리를 살펴 보세요.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 있나?
제일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것을 끊어야 합니다.
그것을 버려야 하고 파 묻어야 합니다.
나에게 숨겨두고 있는 그 드라빔, 그 우상을 제거 하시기 바랍니다.
과감하게 버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깨끗이 씻으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써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께 축복 받기 원합니까? 깨끗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인물들을 보면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보면 깨끗한 사람입니다.
집에는 많은 그릇이 있습니다.
금그릇도 , 은그릇도 , 사기 그릇도, 스댕 그릇도, 큰 그릇도, 작은 그릇도 다 있습니다.
모든 그릇들은 적재적소에 맞게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싼 그릇, 큰 그룻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릇은 그 용도에 맞게 다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용하지 못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입니까?
더러운 그릇입니다.
더러운 그릇은 물에 씻어 깨끗하게 만든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공부를 많이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재주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돈이 많으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깨끗하느냐? 않느냐? 입니다.
내가 깨끗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딤후 2: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끗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존경받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권력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앞에는 성자 (Saint)라는 호칭이 붙습니다.
성 어거스틴, 성 프란체스코, 성 테레사.
하나님은 그들을 쓰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시기 바랍니다.
악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자신을 깨끗이 지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로, 옷을 바꾸어야 합니다.
“의복을 바꾸라”
여기서 의복을 바꾸라는 말은 옷을 바꾸어 입으라는 말인데 이것은 단순히 옷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옷은 사람의 스타일을 말합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압니다.
학생은 교복을 보고 그가 학생인 것을 압니다.
군인은 군복을, 경찰은 경찰복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압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복장을 입으면 자기의 신분 답게 행동을 합니다.
의복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으면 괜히 거룩한 것 같습니다.
걸음 걸이부터 다릅니다.
그러나 야한 옷을 입으면 야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온동복을 입으면 운동을 합니다.
옷이 사람을 만듭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군복을 입으면 겁이 없어집니다.
제대를 하고 양복을 입으면 점잖아 지고 의엿한 바른 사회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예비군복을 입으면 개판이 됩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예비군 훈련이 끝나 그 복장을 벗을 때까지는 엉망인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옷이 사람을 다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입은 옷은 어떤 옷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옛날 옷을 그대로 입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까?
예수의 옷, 신앙인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옛날 옷을 그대로 입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어떤 때는 여러 벌을 옷을 갖고 다니면서 편리할 때마다 바꾸어 입습니다.
교회 올 때 입고 있는 옷과 세상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이 다릅니다.
나에게 유리할 때 입는 옷과 불리할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옷을 다르게 입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옷은 항상 같아야만 합니다.
교회 올 때 입는 옷과 세상 속에서 입는 옷이 같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거룩의 옷을 입는데 세상에서는 타락의 옷, 죄악의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옷은 언제, 어디서나 같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옷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한가지 옷만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위해 예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19장 7,8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를 위해 준비된 우리가 입어야 할 유일한 옷은 세마포입니다.
이 옷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세마포 옷이 무슨 옷입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합니다.
즉 의의 옷, 거룩한 옷입니다.
우리는 더럽혀진 옷을 벗어 버리고 깨끗한 옷, 거룩한 옷,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은 의의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그 옷을 입고 이제 벧엘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3절, “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이 야곱의 고백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나의 환난 날에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혹시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십니까?
그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세요.
나의 환난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의 고통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의 인생의 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6,7절 “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
벧엘이 엘벧엘로 바뀝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엘벧엘은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집에 가서 다시 하나님을 만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의 집에 와도 하나님을 못 만나고 합니다.
졸다가 갑니다.
다른 생각만 하다가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야곱이 벧엘에 왔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네 자손이 번성하고 네 자손에서 왕들이 나오고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야곱이 얍복강에서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꿨지만 지난 10년동안 이름 구실을 못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벧엘로 올라 가시기 바랍니다.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고 마음과 행동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첫사랑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의 그 감격,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가졌던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만약 우리 신앙의 첫사랑에서 멀어져 있다면 우리 신앙의 출발점인 벧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삶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벧엘이 어디 입니까?
벧엘을 다시 찾고 벧엘로 올라가서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과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기쁨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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