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야곱을 훈련 시키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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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곱을 훈련 시키는 하나님
본문 : 창세기 29장 15-30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교인들이 예수를 쉽게 쉽게 믿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교회 다니고 신앙 생활을 가진 것이 하나의 악세사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저의 친구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강남 지방에서 교양인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필수 조건이 뭔지 아느냐?”
그래서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이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대학에 나와야 하고 둘째로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셋째로 소망 교회나 광림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한국의 중상류층에서 이미 교양인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강남의 제일 큰 교회인 소망교회나 광림교회에 출석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나의 영혼의 구원 문제를 생각하고 그 감격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대 교양인으로 행사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라면 나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은 아무 쓸데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얼마전에 영국에 유학 갔던 목사님이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일 날에 예배 드리러 런던의 아주 큰 교회를 찾아 갔더니 큰 교회의 주일 대예배에 거의 노인들만 30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실망이 되어 예백라 마친 후에 어떤 할머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 전에도 항상 이렇게 적은 숫자가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까?”
이 할머니의 말씀이 “아니죠.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는 우리 교회에 이 예배당에 성도들이 항상 가득차서 예배를 드렸어요”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 거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비단 영국 교회만의 문제일까요?
우리 나라는 이렇게 안 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난 주간에 경기도 마석에서 제자 훈련 학교에 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방에 호주에서 18년간 사신 장로님이 오셔서 같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의 말씀이 호주에는 영국 사람들이 와서 살았기 때문에 거의 기독교인들이었는데 백년 전부터 호주가 복지 국가가 되면서 사람들이 생활이 편해지니까 놀러 다니고 교회에 나오지 않아 모이는 힘이 약해 지니까 그 큰 교회를 유지할 수 없어서 교회당을 댄스홀로 체육관으로 빌려 줍니다.
심지어 교회를 파는데 교회가 술집에 팔려 교회당이 술집이 되었는데 특별히 강대상을 특별석으로 하여 강대상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술값이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되어 갑니까?
내가 교회 가는 것이 하나의 주중 행사로 변해서 일요일날 내가 교회에 기우뚱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가지려고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훈련입니다.
경건은 연습해야 하고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신앙의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천국을 주시지 않습니다.
추하고 형편없는 이 모습으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를 달래시기도 하고 때로는 때리시기도 하시면서 훈련시켜 가십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9장, 30장, 31장에 나오는 내용들이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그냥 나누시지 아니하시고 훈련시켜 나가십니다.
20년동안이란 오랜 세월동안 고생을 하게 만드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사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드디어 하란에 있는 자기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통스러웠습니다.
조카 로서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취급을 받으며 종살이로 20년간이나 살았습니다.
얼마나 야곱이 고생했나 한번 보세요.
창세기 31장 40절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종살이도 보통 종살이가 아닙니다.
그러면 야곱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뱃속에서부터 야곱을 택하시고 그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가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않고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왜? 야곱이 이런 고생을 해야만 합니까?”
이 야곱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란에서의 야곱의 삶은 하나님의 징계 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야곱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을 찾아 오셔서 그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항상 네 마음대로 하라고 놔둘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십니다.
물론 용서하셨습니다. 여전히 야곱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이 잘못했던 그 실수를 고치지 않고는 보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하란의 어려움을 겪게 만듭니다.
야곱의 잘못을 고치는 기간이 바로 이 하란의 기간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내가 죄를 범해도 하나님은 나에게 벌을 주시지 않더라”
‘내가 가끔 주일을 빼먹어도 괜찮더라”
“주일을 빼먹고 놀러 다녀도 아무 일도 없더라”
그래서 계속해서 죄를 짓고 또 아주 자주 주일을 빼먹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범죄하고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잘못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고는 나를 그냥 돌려 보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창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야곱은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댓가를 받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여 라헬을 얻기 위해 7년동안 삼촌에게 봉사합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나 라헬인 줄 알고 결혼 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기 곁에 누워 있는 여자는 라헬이 아니라 못생긴 언니 레아였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을까요?
라헬을 위해 칠년간 고생했는데 칠년이 물거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세요.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남을 속이는데 명수입니다.
지금까지 남을 속이며 살아 왔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러나 처음으로 야곱은 그의 생애에서 속임을 당합니다.
이 장면이 얼마나 멋집니까? “너도 한번 속아 봐라”
야곱이 속은 이 사기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정은 시기와 싸움과 불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야곱의 고통을 보세요.
31장 41절,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년, 외삼촌이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여기에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라는 말입니다.
이 “변역”이라는 말은 “떼어 먹었다”라는 말입니다.
야곱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여 눈물일 겨를도 없이 외삼촌께 20년간 봉사했더니만은 외삼촌이 조카의 품삯을 열번이나 떼어 먹었습니다.
야곱의 이 많은 세월의 낭비와 아픔들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20년동안 야곱을 징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나 그 기간동안 야곱만 참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무던히 참으신 것입니다.
야곱을 당장에 요절 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당장에 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삶을 바꾸어 놓고 고치는 것이 당장이라도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하나님은 20년동안이나 참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40년을 참으셨습니다. 요셉에게도 13년을 참으셨습니다.
그 분은 지금 나에게도 참으시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강제적인 항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회개와 복종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참으신 것입니다.
“애야, 내게로 돌아 와! 네 손으로 자진해서 항복 해!
나는 떠나서 죄 짓고 사는 삶이 결코 너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해 !
빨리 네 스스로 회개하고 나에게 돌아 와!”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야곱에게 20년을 참으시며 기다리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스스로 깨닫고 항복하고 돌아 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삶을 위해 지금도 나에게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는 지예의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렇게 어렵고 고통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기에 본문이 주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들과 예수를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 중에 어느 쪽이 이 세상의 인생살이가 편합니까?
예수 안 믿는 삶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편하고 쉽습니다.
왜냐하면 졸린 눈을 뜨고 새벽 기도에 갈 필요도 없고 주일날 마음 놓고 놀러 다닐 수 있고 시간 바쳐 물질 바쳐 일을 안해도 되니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렵고 살려고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즐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죠.
우리 청년들은 주일 날은 하루종일 교회에서 봉사하니까 데이트 한번 못하고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보이는 축복이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중에 마이크 트레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쓴 책 중에 ‘톰소여의 모험’이라는 책과 ‘허클베리핀의 모험’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생활이 아주 대조적인 두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는 톰이고, 다른 하나는 허클베리 핀입니다.
톰은 할머니가 계시고 허클베리핀은 고아입니다.
그런데 허클베리 핀의 생활은 참 편합니다.
자기가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과수원에 와서 과일을 따먹습니다.
또 “학교 가라! 공부하라!”고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간섭할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톰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늦잠자면 일어나라고 야단이고 일어나면 “세수하라”고 하고, 세수하면 밥먹고 학교 가라고 하고. 집에 오면 숙제하라고 야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톰에게는 보호자인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톰이 조그만 게으름을 피우거나 잘못해도 그냥 놔두지 않고 야단쳐서 고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톰은 허클베리 핀과 같은 생활을 그리워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톰에게 할머니가 계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할머니가 톰에게 일일이 간섭하고 야단치는 것은 톰이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보호자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몸은 깨끗이 하여야 하고 옷은 안전히 없어야 하고 항상 아름다운 말만 골라 쓰고 웃을 때도 크게 웃는 것이 아니라 잇몸이 보이지 않도록 웃어야 된다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톰”과 “허클베리 핀”의 생활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힘들어도 톰의 생활이 허클베리 핀의 생활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활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보다 훨씬 더 힘들어도 우리의 생활이 그들의 생활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저토록 평안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달픈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야곱에게 심각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고통을 주시며 징계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치실 때 그것은 아픔입니다. 그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로 말미암아 교훈을 받고 깨달음을 받고 연단을 받는다면 그 징계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자식을 포기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잔소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채찍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를 다 이루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징계를 받고 일어서서 새롭게 삶을 사는 것보다는 자기의 모습을 먼저 깨닫고 돌아오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일까요?
20년의 세월을 다 낭비하고 인생의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보다 지금 돌아 온다면 그것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자기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오기 전에 자기에게 어려움이 오기 전에 자기의 모습을 먼저 깨달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20년의 길고 긴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 간다면 하나님의 징계도 없고 고통도 없고 긴 세월을 낭비하지 않을텐데 왜 그 세월을 낭비하려고 하십니까?
둘째로 하란에서의 야곱의 삶은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야곱의 하란에서의 기간은 하나님의 훈련 기간입니다.
야곱의 그 잘난 자존심과 교만을 꺾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교활하고 사기꾼이고 남을 속이던 야곱이 이제 속임을 당하면서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 둘 깨뜨려 가는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고통과 고생을 통하여 야곱을 서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훈련시키기 위해 야곱보다 더 까다롭고 더 냉혹하고 더 욕심많고 더 간교한 라반에게 야곱을 맡겨 놓았습니다.
욕심많은 라반 밑에서의 생활은 그의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면서 그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어 갑니다.
야곱은 확실히 변했습니다.
하란에 거하지 오랜후에 야곱보다 훨씬 더 교활하며 속이는데 있어서 한수 위인 외삼촌 라반이 야곱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30장 27절,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야곱이 간다고 하니까 머물라고 권면하면서 라반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다”
“하나님이 너 때문에 나와 우리 집에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았다”고 라반이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은 분면 변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는 속임을 당하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를 이용했던 외삼촌이 야곱의 삶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너 때문에 우리 집이 축복 받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피부를 맞대고 살아가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평가되는 내가 나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남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나의 아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내 자녀가 나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야곱은 자리를 이용하고 속이고 있던 사람에게서 이런 고백을 받아 냅니다.
“내가 이만큼 사는 것이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셨다”
야곱은 속임을 당하면서 이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 성실과 근면으로 삶을 사는 새로운 인격으로 그는 변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그는 하나님의 훈련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있습니다.
야곱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수고입니다.
야곱이 수고하는 애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20년을 참고 인내하시면서 기회를 주시고 환경을 동해서 깨우치게 만드신 하나님의 수고가 여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 지금도 수고하고 계십니다.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애쓰신 하나님은 오늘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십니다.
간사한 야곱을 훈련시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훈련시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형편없는 야곱을 열심히 만들어 내서 믿음의 반역에 서게 하신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에게도 열심을 가져 이 위대한 믿음의 반열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자녀에 대해서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가 자기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을 그냥 놔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야곱만큼 고집장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어이 야곱을 훈련시켜 항복시킵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가 바로 야곱을 훈련시키는 하나님과 야곱의 항복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우리 보고 고집부리지 말고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을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데 매를 맞으면서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말로 할 때 알아 듣는 사람과 매맞은 후에야 알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맞아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알 때까지 때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 때려서도 알아 듣지 못하면 버린다는 것이 없습니다.’일흔번씩 일곱번 때려도 알아 듣지 못하면 491번째 매를 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장에서
“너희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매를 맞아 성한 곳이 없고 온통 매 맞은 상처 뿐인데 아직도 매를 더 맞으려고 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곁을 떠나 자기 고집대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간섭 하러 오십니다. 그래서 훈련시키십니다.
야곱을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세요.
20년동안 야곱을 훈련시켰는데 변하긴 변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항복하지 않자 하나님게서는 드디어 야곱을 얍복나루터에 세우고 씨름하러 오십니다.
그래도 안 듣자 이번에는 환도뼈를 뿌려 뜨리십니다.
만약 그래도 안 들었다면 야곱을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아마 머리털을 몽땅 뽑아가면서라도 항복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아 피흘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면서까지 우리의 나쁜 고집을 꺾으시며 나를 훈련시키시는 이 지독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곁을 떠날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뛰어넘고 넘어서라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훈련시키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징계하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신앙이 없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영성으로 강해지고 신앙이 좋고 주님 말씀대로 살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만 내가 죄를 범하고 내 마음대로 살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잘 것 없는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을 사랑하시느냐”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비록 내가 죄를 짓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가정의 자녀들 가운데 어떤 자녀에게 신경이 더 갑니까?
다 장성한 자녀보다는 아직 미숙하고 약점이 많은 어린 자녀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얼마나 더욱 부모의 손길과 돌봄이 필요로 합니까?
제가 잘 아는 집사님이 한번 계십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에게 몸이 불구인 아들이 한명 있습니다.
이 아이가 어렸을 때 이 집사님이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만 아파트 2층에서 떨어져서 대수술을 몇번 받았지만 결국에는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의 자녀들을 대할 때 이 아들을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도 언제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불구 아들을 부르시는 어머니의 슬픔에 찬 음성을 저는 언제나 다르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라보시는 눈동자도 어느 성한 자식을 바라 보시는 눈동자와 같지가 않습니다.
불구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더욱 부모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형편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내가 신앙 없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형편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욱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징계하시기도 하고 훈련시키십니다.
내가 떳떳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주님은 나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에게 채찍을 들기도 하면서 나를 훈련시킵니다.
우리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고 주님의 뜻대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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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 오전 11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