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최] 광야에서 눈물 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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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광야에서 눈물 날 때
본문 : 시편 63편 1-11절
설교 : Marc Choi 목사(뉴저지온누리교회 담임)
감사합니다. 고향에 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민 와서 예수님을 만난 교회가 바로 이 교회였어요. 제가 84년도에 이민 왔고 86년도에 저는 순복음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김남수 목사님을 통해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고요.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이 교회에서 받아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갔고 결혼도 여기서 했어요. 그리고 우리 두 자녀도 여기서 낳았고, 어떻게 보면 제가 할렐루야대회 강사로 허 목사님이 저를 불러주셨을 때, '저요? Why Me?' 라고 물었어요. 이런 날이 올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저를 강사로 세워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오랜만에 집에 온 것 같아요. 편해요. 저는 이민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민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고 또 하나 뉴욕 할렐루야 대회는 제가 2005년에, 20년 전에 하용조 목사님과 함께 온누리 교회를 섬길 때 제가 청소년 강사로 왔었어요. 참 좋았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요. 그리고 이 집회를 통해서 제가 뉴욕의 인투 교회를 개척하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집회 후 100일 후에 맨해튼의 교회를 개척했던,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서는 것이 참 큰 부담이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부담이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63편은 다윗의 시라고 하죠. 다윗이 시편 63편을 기록합니다. 시편 63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세요? 왕인 다윗이 무엇 때문에 광야에 있을 때 시편 63편을 기록했을까? 어떻게 보면 다윗의 삶에도 광야가 있었다는 거죠. 제가 지도를 준비했는데 사무엘상 21장과 30장에 나오는 다윗의 도피 여정이 기록된 지도가 있어요. 이걸 보면 다윗도 진짜 도망을 많이 다녔구나!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 왕으로 살던 다윗이 왜 광야에 있습니까?
그의 아들 압설론의 반역으로, 아들의 반란 때문에 왕궁에서 광야로 이동했던 다윗이, 왕의 자리에서 도망자가 된 다윗이 오늘 시편 63편에, 하나님 왜 그러셨습니까? 하나님 왜 그 아들을 그렇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다윗이 그런 얘기 하지 않아요.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엄청난 고백을 해요. 우리 시편 63편 1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여러분, 광야를 지나던 다윗이 목이 말라요. David is thirsty for water. 물이에요. 그런데 그 목마름 속에 물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1절에 물보다 주님을 목말라한다고 합니다. 물을 마시는 것보다 주님을 만나기를, 주님을 간절히 찾았던 다윗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에요. 그냥 우리가 목이 말라서 제가 들고 있는 이 물을 마시는 그런 레벨이 아니라 다윗은 광야에서 내가 물이 필요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갈망합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일수록 그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는 다윗을 발견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하나님을 찾으세요. 더 하나님을 갈망하세요.
그래서 2절에 그가 뭐라고 합니까?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이 광야에서 성소를 생각해요. 성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던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던 장소를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성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는 다윗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말고 헛된 것을 갈망한 적이 너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광야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삶이 잘 될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갈망한 적이 종종 있었다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도 딴 생각하고 있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도 확신이 없고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응답 받으면 놀라는 사람이 기도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제가 85년 순복음뉴욕교회 고등부 수련회 때 설교하셨던 목사님의 설교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20살이 되기 전에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딱 16살이었어요. 그날 밤에 제가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30살이 되기 전에 꼭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딱 해버렸네. 그리고 마지막
40이 되기 전에 당신의 하나님이 부르심인지를 확실히 알고 살아야 된다고 하셨어요. 여러분, 배우자를 만나는 것보다 제가 이런 목사가 된 길을 깨닫는 것보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소중한 만남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가 만난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돈이 아니고요. 사람이 아니고요. 지식이 아니고요. 경험이 아니고 신앙의 본질이 뭡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돼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는 개신교 수도원에 가면 이런 문장이 있어요.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수도원 들어가는데 이런 싸인이 있는 거예요. 일편단심으로. 그런데 저는 1.5세로서 힘든 게 뭐냐면요. 이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편단심이 뭐예요? 혹시 여러분 이게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분은 더 이상한 거야. 저희가 몰라요. 일편단심이 뭡니까? 성경에 일편단심이 있어요. 예르미야서 29장 13절에 보면 마침내 너희는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게 되리라. 일편단심,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 저는 이거 모르겠어요.
몇 년 전에 성도님 한 분이 저한테 사자성어에 이렇게 선물을 주셨어요. '목양일념' 목회자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인들을, 양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에만 정성을 쏟아내라는 뜻이예요. 목사님이 성도들을 위하여 돌보고 먹이는 일에 전념하라는 거야.
예수님을 갈망하는 자리가 바로 광야의 자리가 아닌가, 저는 이런 생각 해봐요. 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광야로 인도해 주셨을까? 하나님 너무 안 찾으니까,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고난을 내게 허락해 주셨을까?
다윗은 하나님을 갈망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 집회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오늘 다윗이 하나님을 찾은 것처럼 하나님을 갈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예수 중독자라는 글을 쓰셨어요. 난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가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에 살면 주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여러분,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는 인생 그게 뭔가요? 오늘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했어요. 여러분 교회 위기, 가정의 위기,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제일 먼저 우리가 찾아야 될 것은요. 오늘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한 것처럼 하나님을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저를 한번 따라 해보세요.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저는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밤을 보내면서 깊은 묵상에 빠졌어요. 그리고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요. 왜? 아무도 없잖아요? 본인이 질문하고 본인이 대답해요. 무슨 질문합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 광야까지 도망왔을까? 다윗이 그런 질문을 하고 있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 광야까지 도망갔을까? 그리고 본인이 답을 해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그게 정답이에요. 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광야로 옵니까? 본인의 생명을 지키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조금 더 살고 싶어서 본인은 광야로 도망온 거예요. 그런데 오늘 이 광야에서요. 다윗이 본인의 생명보다 귀한 것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시편 63편의 앞부분만 읽어보겠습니다.
'주의 인자심이 생명보다 다 나으므로' 여러분, 이거 엄청난 고백이에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광야로 도망온 다윗이 광야에서 뭘 발견합니까? 주의 인자하심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은, 그분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항상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 여러분,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는 거야. 여러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요? 저는 이렇게 선포하고 싶어요. 하나님은요. 어떤 상황 속에도 선하신 분입니다. 아멘을 안 하신 분들은 뭐예요? 좋은 것 주면 선하시고, 기도 응답해 주시면 선하시고, 제가 몇 가지 예화를 들텐데 여러분 아멘 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통장에 잔고가 바닥이 날지라도, 고백 잘하세요.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래 바닥났잖아요. 그렇죠? 통장에 돈이 많아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야. 또한 인간관계 갈등을 겪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내가 병에 걸려 몸이 아파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할 때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여러분, 이 깨달음에 대한 반응이 뭔지 아세요? 주의 인자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반응을요? 우리가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예배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왜 죽어가고 있을까요? 주의 인자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깨달은 자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반응이 뭡니까? 예배. 예배가 살아나는 거예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다윗이 시편 63편 3절, 4절 후반에 어떻게 합니까? 예배하기 시작해요. 한번 읽어볼까요? 3절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다. 예배가 뭡니까? 내 입술이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거예요. 그리고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는 거예요.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드는 거예요. 여러분, 다윗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해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서 있는 광야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어요. 그의 인생의 최고의 예배가 여기에서 드려지고 있어요. 광야에 아무도 없어요. 찬양팀도 없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다윗은 광야 한복판에서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어요.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어떤 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민교회를 비디오 가게랑 연결을 하셔서 논문을 쓰셨어요. 고령화. 비디오 대여점과 고령화된 한인 교회, 제가 이거 읽으면서 큰 도전을 받았어요. 지금 비디오 가게 있어요? 다 사라졌어요.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분의 글을 읽어보면 이민교회가 고령화가 됐어요. 비디오 가게처럼.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비디오 대여점이 다 문 닫은 것처럼 이민교회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저한테 도전해 주셨어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비디오 가게 모습은 무엇이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전통으로 흘러내리는 해왔던 행사, 해왔던 예배 이런 것들 그리고 이분이 이 글 안에 조용한 탈출, 인제는 조용한 일탈 그리고 변화하는 이민사회 변함없는 이민교회. 예수님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신 것처럼 이민교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네! 여러분, 그런데 이분의 글을 읽어보면요. 이민 사회는 변했어요.이민 오는 사람은 다 사라졌지만 한인 인구는 거진 비슷해요. 왜? 저 같은 사람이 중학교 때 미국 와서 지금은 50대 중반이 돼서 제가 결혼을 해가지고요. 3명의 아이를 낳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 3명의 아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한인 숫자는 줄까요? 늘까요? 늘어요. 트럼프가 H1 비자 10만 불 내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애를 낳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이민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예요. 또 제가 이번 주에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읽은 책이 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 쇠퇴하는 교회> 이거 너무 다가오는 거예요. 일단 부흥하는 교회는요, 젊은 이들이 많아야 돼요. 젊은이들이 있어야지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예요.
그리고 부흥하는 교회는요. 다음 세대가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우리 어르신 세대가 비켜주는 거예요. 좋은 예배당, 좋은 시간, 우리 다음 세대를 주는 거예요. 제가 이 책을 읽고 도전을 받아서 우리 교회에서 해버렸어요. 주일날 11시 반. 여러분 주일 11시 반은요. 주일의 프라임 타임이에요. 저희 교회 11시 반에 제일 많은 한어권 성도님들이 11시 반에 모였는데 이 책을 읽고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도전장을 던졌어요. 11시 반 오시는 한어권 분들 다 비키세요. 그리고 1시 반에 오세요. 1시 반이 너무 늦으면 7시 반에 오세요. 물어봐요. 그러면 11시 반 어떻게 하시려고? 11시 반이요? 되게 쉬워요. 우리 영어예배에게 11시 반 본당을 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11시 반에 성도님들이 막 뭐라 그럴 것 같죠? 아니요. 제가 11시 반에 한어권 예배 다니는 분들한테 그냥 11시 반 예배 영어 예배니까 그냥 나오라고 했어요. 이젠요. 이민 역사가 길어갔고요. 왠만한 사람들 영어, 한국어 다 돼요. 다 모른 척하지만 다 한어권이라고 해요. 또 영어 앱에 가면 자기는 영어 앱에 가면 한어권 KM이라고 하고.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는 영어 목회하다가 지금은 KM 미니시트리 하잖아요? EM이 뭔지 아시죠? EM은요. 제가 EM 목회 해봤지만 영어 목회는요. Easy Ministry, EM 목회는 그냥 같이 목사님이 친구처럼 놀아주면 돼요. 같이 있어주면 돼요. 친구가 돼주면 돼요. 같이 운동하고 같이 먹고 같이 웃고 울면 EM은 부흥해요. 여러분, EM 교회 부흥하기 원한다면, 교회 예산 EM에 막 먹여주세요. KM이 뭔지 아시죠? 한어권 Killing Ministry...
KM 하니깐요. 새벽 기도도 해야 돼. 신방도 해야 돼. 설교도 해야 돼. 상담도 해야 돼. 그런데 여러분 아세요? 제가 EM하고 KM 해보니깐 KM이 훨씬 목사님들을 더 사랑해요. KM은요.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아무도 밥을 안 먹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야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음식은 목사님부터 드셔야 되는 문화가 있어요. EM은요. 목사님이 오건 말건 먼저 다 먹어. 제가 한번 EM 모임에 늦게 갔거든요. 음식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같이 밥 먹으면요. 제가 내 돈을 내야 돼. Dutch Pay 해야 돼. 그런데 그거 뭐 나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스타일이 다른 것처럼 여러분 부흥하는 교회, 쇠퇴하는 교회 핵심은 저는 예배라고 믿어요. 예배가 살아야지 교회가 부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예배가 내가 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데 그럼 여러분이 좋은 예배당에 들어가면 뭐합니까? 우리는 교인들은 너무 많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Church Goer는 너무 많아요. 다 교회는 다녀요. 그런데 성도는 없네. 교회는 몇십 년 다녀요.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성도가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예배예요. 다윗이 하나님의 교회 예루살렘이 아니었지만 다윗이 유다광야에서 예배하고 있는 다윗을 발견합니다.
저는 광야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한 것처럼, 어떤 환경이 우리를 찾아올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다윗이 이런 질문을 해요.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저를 따라해 보세요.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다윗이 아들 때문에 비참한 아버지가 됐고요. 도망자가 됐고 진짜 신세가 참 좋지 않아요. 그런데 다윗이 마음의 놀라운 변화가 있어요. 5절부터 보면요. 마음 안에 기쁨이 있는 걸 발견해요. 도망잔데도 기뻐요. 비참한 아버지인데도 기뻐요. 식사도 할 수 없는데 샤워도 할 수 없고 편안한 잠자리도 없는데 다윗이 마음 안에 기쁨이 있는 거예요. 5절에 보니깐요. 다윗은 왕실에서 먹던 진수성찬을 먹을 수 없는데 꼭 진수성찬으로 배가 부른 것처럼 기쁘다고 고백해요.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하니까 기쁨이 주어지는 거야.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 찬양팀 보면서, 우리 이동선 목사님 보면서 아까 다윗이 춤추며 할 때 저도 춤췄어요. 왜? 내가 춤을 잘 춰서? 아니요. 기뻐서. 기쁘면 춤출 수 있는 거요. 기쁘면 손이 올라가는 거예요. 기쁘면 엎드릴 수도 있는 거예요.
광야에서 기쁨을 경험한 자가, 예루살렘에 가도 진정한 기쁨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오늘 다윗의 기쁨이 3단계로 등장합니다. 6절.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읇조릴 때에 하오리니' 6절은 다윗이 하나님의 과거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 지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미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다윗이 기뻐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하나님이 본인의 삶 속에 과거의 베푸신 은혜에 기뻐하는 거야. 여러분은 그 은혜 지금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불러주셨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몸된 교회 일꾼으로 세워주셨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저와 여러분이 이런 집회에 나와서 토요일 저녁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 속에 허락해 주셨다는 거야.
여러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내 눈앞에 지금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과거의 내 삶에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면 오늘 다윗이 기뻐한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제 인생의 과거의 은혜를 생각하면, 저는 이민교회에서 자라면서 훈련받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했던 저를, 하나님께서 2003년에 갑작스럽게 저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저를 서울, 한국 온누리 교회로 보내주셨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큰 은혜를 주셨어요. 또한 온누리 교회를 통하여 제가 뉴욕 순복음교회에서 배운 것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면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주어졌고, 목회에 대한 어떤 하나님이 주신 마음들이 생겼어요. 그중의 하나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거였어요. 이민교회로 돌아오는 거였어요. 한국에 3년이라는 시간 너무 좋았지만 저는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저는 늘 이민교회를 사랑했고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민교회라고 확신해서 미국으로 돌아오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온누리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하용조 목사님을 제가 그때 비서로 섬겼거든요. 제가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목사님 이제 제가 다시 미국으로 두 번째 이민을 준비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민은 13살 때 부모님의 손 붙잡고 김포공항을 떠나서 뉴욕의 중학생으로 온 저의 첫 번째 이민이었다면 두 번째는 제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저를 뉴욕으로 다시 보내주십시오, 라고 하 목사님한테 1대1로 제가 말씀드렸어요. 말도 잘했어요. 설득력 있게 얘기했어요. 하 목사님께서 저를 딱 보시더니, 저는 그냥 깜짝 놀랬어요. No 아직 아니야. 그래서 제가 어? 충격에 빠진 거야. 아니 사도행전 29장을 쓰자고 하시고 교회가 교회를 낳는 교회를 선포하셨던 목사님이 갑자기 제가 교회를 개척한다는데 No를 하시는 거야?
제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 무서운 교회구나! 들어올 땐 편하게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내 생명을 바쳐야 되는 그런 교회인가? 그런데 제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하용조 목사님이 그분의 입술로 뉴욕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저는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입술로 가라고 할 때까지 저는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답이 안 올 것 같아서 제가 마지막에 기도를 하나 더 했어요. 하지만 제가 하 목사님께 자주 여쭤보겠습니다. 자주 여쭤보겠습니다. 그래서 뭐 차 안에서도 여쭤보고 사무실에서도 여쭤보고 한 1달에 1~2번씩 이렇게 여쭤봤어요. 그런데 한 8개월 동안 계속 똑같은 답이었어요. No, No, No.
그러다가 아까 보셨던 포스터 있죠? 2005년에 하 목사님이랑 같이 뉴욕 할렐루야대회에 온 거예요. 하 목사님은 성인, 바로 여기였어요. 이 예배당이 만들어지고 첫 번째 할렐루야대회를 여기서 하신 거예요. 그리고 저는 뉴욕장로교회에서 청소년 부흥회를, 같은 날 같이 이렇게 섬긴 거예요. 제가 섬겼던 청소년 부흥회는 그렇게 큰 역사가 없었어요. 그런데 하 목사님이 있는 성인, 그때 계신 분들 계실 거예요. 여기가, 그렇죠? 여기 가득 찼어. 저도 뉴욕장로교회에서 왔는데 와 이거 너무 비교가 되는 거예요. 나는 설교 시간에 막 쏟아붓는데 애들은 다 자고 있는데, 여기는 하 목사님이 그냥 쏟아부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그때 하 목사님이 제일 아프셨거든요. 본인의 연약함을 너무나 담대하게 선포하신 거야. 그때 성령의 바람이 이곳에 분 거야. 그리고 토요일날 오후에 하 목사님하고 같이 뉴욕 맨해튼 타임스코어에 관광을 나간 거예요. 갑자기 타임스코어에 하 목사님과 1대1로 서 있는데, 하 목사님이 딱 타임스코어를 보시더니, 뉴욕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속으로 내가 8개월 동안 물어봤는데 지금은 이제 깨달으신 거야? 그러더니, 하 목사님이 내가 누굴 보낼까? 내가 여기 있고 계속 여쭤봤는데 그런데 가만히 있었어요. 왜? 하 목사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했잖아요? 하 목사님이 절 딱 보시더니, 아직도 기억이 나요. 타임스코에서 딱 저를 보시더니, '당신이 가! 당신이 가!' 제가 그때 '아 갑니다! 하나님, 갑니다!' 그런데 하 목사님께서 '뉴욕으로 갔는데 조건이 하나 있어. 이름 바꿔!' 제 이름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마크가 뭐냐? 마크 하지 마. 그래서 이름을 바꾸래. 목사님이 이름을 지어주신 거예요. 그 자리에서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초이'. 그래서 목사님 그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강사 목사님 오실 텐데 브로드웨이 초이를 소개합니다.'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너무 기뻐서 이름은 아예 잊어버리고 제가 빨리 우리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냈어요. 왜? 하 목사님이 새벽 버전하고 저녁 버전이 다른 분이에요. 이게 맨날 바뀌는 분이야. 새벽에 이렇게 세팅해 놓으면요. 저녁에 보시더니, 이걸 또 바꾸래. 그럼 또 바꿔놓으면 또 바꾸래. 그럼 헷갈려요. 그래서 아침 버전하고 저녁 버전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가족들을 확 보내고 그때 제가 이제 3개월 만에 뉴욕으로 와서 다시 첫 교회 예배를 시작한 거예요. 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을 기억한다면, 여러분 기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국 교회가 어떻고 이민 교회가 어떻고 다음 세대는 어떻고 이것보다 하나님이 우리 뉴욕에 여러분, 이런 할렐루야 전도대회 하는 도시가 뉴욕밖에 없어요. 제가 어제 김한요 목사님한테 물어봤어요. 얼바인에서 이런 거 있냐고. 이런 거 없대. 제가 한 번도 누구 말을 끊지 않았는데, 그런데 제가 '목사님, 여기 보세요! 여기는 벌써 이게 40년이 넘는 이 할렐루야 대회를 계속하고 있는 거야.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만 보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므로 기쁨이 살아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7절 한번 읽어볼까요?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습니다. 7절은요. 현재 보호하심이에요. 6절은 과거의 은혜라면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지금 현재의 보호하심을 다윗이 기뻐하고 있는 거야. 하나님의 손길이 광야의 다윗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다윗은 기쁜 거예요. 여러분 광야에도요.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다는 걸 알고 계셔야 돼요. 광야는요. 하나님이 나를 버린 곳이 아니에요. 광야는 하나님이 없는 곳이 아니에요. 광야의 하나님이 지금 나를 지키고 계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 소중한 금이 세 개가 있다고 합니다. 들어보셨을 거예요. 돈을 상징하는 황금, 음식의 소금, 그리고 시간의 지금, 하하 그게 아니에요. 황금 소금 지금, 여러분, 영어로 지금을 선물이라는 단어 쓰는 거 아세요? Present 선물이에요. present를 지금이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는 기쁨이 내 삶에 넘쳐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 가정 지키고 계세요? 우리 교회 지키고 계세요? 우리 자녀들 지키고 계세요? 다 지키고 계세요? 환경을 보면 광야 같지만, 아프지만, 두렵지만, 어둡지만, 앞이 캄캄하지만 오늘 다윗은 내면의 기쁨이 솟아오르고 있는 거야.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신다. 그 다윗의 기쁨이 오늘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8절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나의 영혼히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8절은 뭡니까? 과거의 은혜고 현재 보호하심이면 여러분 이제 세 번째 뭘까요? 미래에 인도하심이예요.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 어느 대통령에게 있지 않아요. 어느 한 사람에게 있지 않아요. 오늘 다윗은 본인의 미래가 하나님 손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끝까지 주의 오른손으로 붙들고 인도해 주실 것을 다윗이 생각하니까 기쁜 거예요. 과거의 은혜도 기쁘고 현재 보호하심도 기쁘고 미래의 인도하심이 다윗이 기쁜 거. 기쁨의 세트가 주어졌네. 기쁨의 패키지가 주어졌네. 원 플러스 원이 아니에요. 더 기쁜 거예요. 과거의 은혜에 기쁘고 현재 보호하심에 기쁘고 미래 인도하심에 기뻤던 다윗. 여러분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똑같은 이 기쁨을 허락하시는 자리가 이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베풀어주신 과거의 은혜를 생각하길 바랍니다. 비천한 나를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비천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처럼 또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고 계세요. 그리고 미래에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래서 오늘 다윗이 마지막 11절에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11절의 고백이요. 너무 쇼크해요. 갑자기 본인을 뭐라고 부릅니까? 왕은 기쁨이 회복이 되니까. 나는 왕이야. 그전까지는 나는 나는 나는 하다가 11절에 가서 기쁨의 3종 세트가 딱딱 들어간 거야. 과거 은혜 기쁘고 현재 보호하심이 기쁘고 미래 인도하심이 기쁘니깐 다윗의 기쁨이 회복이 돼서 본인을 뭐라고 부릅니까?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그 왕이 누굽니까? 바로 다윗이에요. 광야로 도망갔던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했고 하나님을 예배했고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기뻐함으로써 광야가 뭡니까? 축복이에요.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자리인 것을 오늘 다윗이 경험한 것처럼 여러분 이민생활 광야에 갔대요. 그래서 제 설교 제목이 '광야에서 눈물 날 때' 여러분 이민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습니까? 학교에 가서 울은 적도 많고요. 외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울었고요. 여자친구한테 그때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뭐 그런 적도 있었고, 9.11 사건 때 많이 울었어요. 사랑하는 형 그때 다시 보지 못했어요. 제가 그때 뉴욕 순복음교회 소프트볼 팀이 있었거든요. 제가 유격수였어요. 그리고 우리 준구 형이 1루수였어요. 유격수는 공을 잘 1루에 던져야 되는데 제가 종종 잘못 던질 때가 있어요. 그때 형이 그 공을 항상 받아줬어요. 저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9.11 사건 후에 김남수 목사님이랑 같이 맨해튼 쌍둥이 건물 향해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 형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창문을 내리시더니, 저한테 정규 이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알아? 죽은 사람들의 냄새야. 많이 울었어요. 예배하면서 많이 울었고요. 생활하면서 많이 울었고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 눈물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있었다는 거예요. 아픔도 부족함도 세상이 나를 거절하는 그 자리에도 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고 계셨고 늘 하나님은 나를 인도해 주셨다는, 오늘 다윗이 그것을 경험하고 광야에서 일어선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