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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목사, 신간 『성경이 말하는 죽음 그 이후』 출간… “죽음은 끝이 아닌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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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목사, 신간 『성경이 말하는 죽음 그 이후』 출간… “죽음은 끝이 아닌 쉼표”


미국 뉴저지 에셀교회를 20년간 담임하고 은퇴한 조재원 목사가 성경 연구 묵상집인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 시리즈의 아홉 번째 신간 『성경이 말하는 죽음 그 이후』를 펴냈다. 저자는 장례식장에서 마주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체념의 탄식 대신 성경이 증언하는 죽음의 참된 실재를 밝히며, 죽음은 존재의 소멸(마침표)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쉼표’라고 선포한다. 책은 육신의 숨이 멎는 즉시 시작되는 ‘중간 상태’부터 부활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 두 심판의 본질,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여정을 성경 구절에 입각해 총 11장에 걸쳐 치밀하게 추적한다. 특히 스올·하데스·음부 등 임시 거처와 게헨나·지옥·불못 등 최종 형벌의 처소를 엄격히 구별하고, 생명책과 행위의 책의 구속사적 의미를 밝혀 교계 안의 오랜 신학적 오해를 바로잡는다. 저자는 죽음 이후에 대한 바른 이해는 막연한 내세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성도가 ‘오늘을 어떻게 신실하고 거룩하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실천적 결단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힘주어 권면한다.


조재원 목사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 9권 『성경이 말하는 죽음 그 이후』 출간

중간 상태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성경이 보여 주는 죽음 이후의 여정 집대성

“죽음은 마침표 아닌 쉼표”… 막연한 두려움 벗고 오늘의 신실한 삶으로의 도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이제 다 끝났구나.” 병상을 지키던 가족도, 영정 앞에 선 친구도,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눕게 될 우리 자신도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력감과 허무를 마주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쇠약해지고 먼저 떠나는 벗들이 늘어가면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절망적인 한탄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문장은 거기서 영원히 끝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다음 문장이 새롭게 시작된다.


미국 뉴저지 에셀교회(Eshel Presbyterian Church, PCUSA)를 2006년 개척해 2026년까지 20년간 한결같이 목회하며 성도들과 동고동락한 뒤 은퇴한 조재원 목사가 신간 『성경이 말하는 죽음 그 이후: 끝이 아니라 쉼표입니다 - 중간 상태에서 새 예루살렘까지』(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 시리즈 9)를 출간해 이 같은 복음의 진리를 상세히 풀어냈다.


“죽음은 마침표 아닌 쉼표”… 성경적 죽음관의 확립


조재원 목사는 히브리서 2장 15절의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자들”이라는 구절을 지목하며, 평생 인류의 발목을 옥죄어 온 죽음의 공포를 끊어내기 위해 성경을 펼쳤다고 밝힌다.


성경에서 죽음을 가장 명쾌하게 요약한 말씀은 전도서 12장 7절이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육신은 에덴에서 말씀하신 대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즉 죽음은 한 인격과 존재의 소멸(Annihilation)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신약의 수많은 장면에서도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기도했고, 바울 사도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고 담담히 고백했다. 본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있던 자연스러운 순리가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에 침입한 ‘원수’다(롬 5:12, 고전 15:2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침이 빠진 벌과 같다고 책은 증언한다(고전 15:55).


죽음 직후 갈리는 ‘중간 상태’와 의식의 연속성


책은 죽음 직후부터 주의 재림과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인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의 구체적 모습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어떤 이들은 모든 사람이 한 대기실에 모여 마지막 판결을 기다린다거나, 영혼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성경은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즉시 길이 갈린다고 증언한다. 그 갈림길의 기준은 인간의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받았는가,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이다(엡 2:8-9, 롬 10:9).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선언하셨다. 믿는 자는 숨이 멎는 그날 즉시 육신을 떠나 주님 품 안에서 의식을 지닌 채 평안한 쉼과 위로를 얻는다. 반면 복음의 선물을 끝내 거절한 자는 임시 거처인 하데스(음부)로 들어간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말하고 기억했던 것처럼, 육신을 벗어난 뒤에도 인간의 의식과 기억, 감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제단 아래 순교자들의 영혼이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계 6:10)라고 부르짖으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안식하는 장면 역시 중간 상태 성도들의 깨어 있는 실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올·하데스·음부와 게헨나·지옥·불못의 명확한 분별


책의 큰 미덕 중 하나는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자주 혼용하는 성경 속 내세 관련 핵심 용어들을 원어와 성경신학적 맥락에서 명쾌하게 정돈한 점이다.


흔히 죽은 뒤의 어두운 세계를 무조건 ‘지옥’으로 통칭하지만, 성경은 ‘임시 거처’와 ‘최종 형벌의 장소’를 엄격히 구별한다.

구약 히브리어의 ‘스올(Sheol)’, 신약 헬라어의 ‘하데스(Hades)’, 그리고 한국어 개역개정 성경이 이를 옮긴 ‘음부’는 동일한 곳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모두 죽음 이후 최종 심판 전까지 머무는 ‘임시 거처’다.

반면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한 예수님의 경고인 ‘게헨나(Gehenna)’, 한국어 번역인 ‘지옥’,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21장에 등장하는 ‘불못(유황불못)’은 마지막 심판 이후 주어지는 영원한 형벌이자 ‘둘째 사망’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보면 종말의 심판 때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영혼들을 임시로 가두어 두던 음부(하데스) 자체가 최후에 불못에 던져짐으로써 대기실은 영원히 문을 닫게 된다. 이 같은 구분을 알지 못하면 중간 상태와 종말의 최종 상태를 혼동하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부활의 소망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


성경은 죽은 성도를 ‘잠자는 자들(자는 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영혼의 무의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아침에 반드시 다시 깨어난다는 확실한 약속을 담은 비유다(살전 4:13-14, 막 5:39).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중간 상태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던 성도들의 영혼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신령한 몸(Spiritual Body)을 덧입는 ‘생명의 부활’을 맞이한다(고전 15:42-44, 살전 4:16-17). 바울 사도가 탄식하며 바랐던 것은 육신을 단순히 벗어버리는 영지주의적 해탈이 아니라, 신령한 새 몸을 ‘덧입는’ 것이었다(고후 5:4).


부활한 성도들은 요한계시록 19장이 선포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들어간다. 신부가 입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지만, 본문은 그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다”(계 19:8)고 기록한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구원의 옷감 위에서 성령과 동행하며 살아낸 삶이 잔칫날 아름다운 예복으로 온전히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상급)와 크고 흰 보좌 심판(최종 확인)


책은 심판에 대한 성도들의 뿌리 깊은 두려움과 오해를 걷어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크고 흰 보좌 심판’을 구별하여 비교한다.


믿는 자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베마, Bema)’ 앞에 서게 된다(고후 5:10). 그러나 이 자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원 여부를 다시 재판받는 정죄의 법정이 아니다. 로마서 8장 1절의 선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금과 은, 보석이나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지었는지 그 공적을 불로 시험하여 상급을 주시는 은혜의 자리다(고전 3:11-15). 공적이 불타 해를 받더라도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5)는 말씀대로 구원 자체가 취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까지 결코 잊지 않으신다(마 10:42).


반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펼쳐지는 ‘크고 흰 보좌 심판’(계 20:11-15)에는 두 종류의 책이 펴진다. 각 사람의 삶이 기록된 ‘행위의 책들’과 ‘생명책’이다.

행위의 책은 구원의 자격을 매기는 도덕 성적표가 아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롬 3:20). 구원의 기준은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크고 흰 보좌에서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은 새로운 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드러난 상급이 행위의 책들을 통해 온 우주 앞에 최종 확인·선포되고 생명책의 이름이 증명되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반면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죄와 불순종에 따라 정죄되어 영원한 불못(둘째 사망)에 던져진다.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임재와 ‘오늘’을 향한 결단


조재원 목사는 신자의 삶을 ‘이 땅(맛봄)’, ‘중간 상태(함께 있음)’, ‘새 예루살렘(온전히 누림)’의 3단계로 나누어 조망한다. 영생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야 시작되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인격적 사귐이기에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다(요 17:3, 5:24).


이 땅에서 성령의 보증과 첫 열매로 맛보던 영생은, 중간 상태에서 주님 품에 안겨 더 깊어지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부활의 몸을 입고 완성된다(롬 8:23, 계 21-22장). 새 예루살렘에는 눈물과 사망과 곡하는 것이 다시 없으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신다(계 21:4). 또한 성 전체가 정육면체인 지성소의 형상을 띠고 있어,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가던 하나님의 지성소적 임재 가운데 모든 성도가 날마다 살아가며 그분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계 21:16, 22:4).


조 목사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는 실천적 권면으로 끝맺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 이후를 묻는 질문을 성경적으로 끝까지 따라가 보면 결국 ‘그렇다면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오늘의 삶에 대한 엄중한 물음으로 되돌아옵니다. 하나님께 응답하고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상급을 쌓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땅에서의 시간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이미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속사람을 새롭게 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오늘 하루도 신실하게 충성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자인 조재원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Th.B)와 신학대학원(M.Div)을 거쳐 뉴욕신학교(NYTS)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20년간의 이민 목회를 마친 현재는 성경을 쉽고 깊이 있게 풀어내는 문서 선교에 매진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을 통해 전 세계 성도들과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 있다.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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