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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았지만 큰 목회자, 고 조정칠 목사 장례예배 엄수 - 우중에 300여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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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정칠 목사의 장례예배가 714() 오후 7시에 뉴저지 하나임교회에서, 하관예배가 익일 오전 10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에서 엄수되었다. 

 

장례예배는 이학권 목사가 집례했다. 반주는 김유신(피아노), 정미연(바이올린), 강미성(첼로) 등이 담당했다. 

 

예배의 시작에 앞서, 고 조정칠 목사의 삶을 담은 7분 정도 길이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경상북도 농촌 소재 교회들을 시작으로 대구의 여러 교회들, 뉴욕의 서울장로교회(현 든든한교회 전신), 한국의 신용산교회와 혜천교회, 은퇴후 뉴욕새교회, 필라델피아 불루벨한인교회에서의 사역 등을 모두 담으려면, 족히 1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7분에 담긴 영상의 대부분은 가족들과의 단란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배는 기원, 찬송 샤론의 꽃’, 박상구 장로(불루벨한인장로교회)의 기도, 손녀 조선아 사모와 둘째사위 김성배 집사의 조사, 고인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목회자 부부, 고인에게 배웠던 후학들의 조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이학권 목사의 성경 봉독과 설교, 유요선 선생의 트럼펫 연주, 장남 조일구 장로의 인사, 집례자의 광고, 찬송 천국에서 만나보자’, 이학권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기도 - 박상구 장로 

 

고인과 오랫동안 동행해 온 박상구 장로(블루벨한인장로교회)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목사님의 신앙을 이해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목사님과의 재회는 천국에서만 가능하오니, 우리 모두 예수를 잘 믿어 천국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박 장로는 기도 중에 고인과 함께했던 많은 시간들을 회상했다. 박 장로와 고인과의 동역은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사 - 손녀 조선아 사모 

 

고 조정칠 목사가 유난히도 사랑했던 - 편애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 손녀 조선아 사모가 조사를 했다. 조정칠 목사는 상당 기간 동안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했었다. 칼럼의 타이틀을 선아 칼럼이라고 했을 만큼 손녀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었다. 소아과 의사이자 목회자의 아내가 된 손녀는 제 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기억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입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산책해 주셨고, 앞마당에서 눈사람을 함께 만들어 주셨고, 피아노를 시끄럽게 두들길 때도 옆에 앉아 박수쳐 주셨습니다. 교회 장로님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 함께 따라가곤 했고, 다섯 살 때부터 생선회와 곱창 맛을 알데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면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할아버지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저를 앉혀 놓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삶의 모습이 변해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늘 눈을 반짝이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설명해 주셨고, 만날 때마다 기도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기리며 그분이 그러하셨듯,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찾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라고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날들을 추억하고, 할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나누며, 할아버지처럼 주님 안에서 살겠다고 다짐하는 조사를 했다. 

 

조사 - 둘째 사위 김성배 집사 

 

고인의 둘째 사위 작은 김 서방이 두 번 째 조사를 했다. 조정칠 목사가 작은 김 서방” - 큰 사위의 성도 김이다 - 으로 호칭했던 김성배 집사(Stanley S. Kim, MD)아버님은 자상하시고, 정감이 넘치시고,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분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목회자의 삶을 살면서도,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손주들이 모이면 항상 30분이고 1시간이고 재미있는 성경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그냥 아는 척하고 듣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님도 애들이 잘 못 알아들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면서도 30401시간 동안 성경 이야기를 하시는 게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이들의 생일 때마다 카드를 직접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상한 별도 붙이시고, 뭐도 하시고, 우리가 보기에는 왜 이런 거에 시간을 쓰시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그런 걸 만드시고 꼭 손으로 글을 써서 손자 아니 손녀들한테 좋은 말씀해 주시고 거기에 또 적지 않은 돈까지 넣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제가 32년 전에 결혼을 하고 1~2년 후에 저희가 있던 이스트 브런스윅에 있는 갈보리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한국에서 오셨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버님의 설교를 처음 직접 들은 때였는데요. 성경을 정말 얘기를 하듯이 스토리텔링을 재미있게 하시면서, 또 아주 논리 있고 깊이 있는 탁월한 설교를 해 주셔서 제가 감동하고 또 놀랐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책을 많이 읽으시고, 또 글도 쉬지 않고 쓰셨어요. 심지어는 이번에 돌아가시기 전에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하시고, 정신적으로도 쇠약하시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공책에 글을 쓰고 계셨어요. 

 

저희 장인어른께서는 사위들을 만났을 때 한 번도 웃음을 안 띠고 만나신 적이 없고, 한 번도 혼내시지 않고, 글 잘 쓰시고 말 잘하시는 분이 뭐 교훈을 주시겠다고 하신 적도 없고, 저희에게는 자비로우신 장인이셨습니다. 

 

아버님의 삶을 한 구절로 정리하면, 정말로 풍성한 삶을 사신 분, 물질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본인이 받으신 것 하나하나 그리고 본인에게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을 너무나 감사해 하시며, 또 만족하시면서, 열정을 다해서 사셨어요. 그리고 만난 사람들 모두에게 감동이 되고 교훈이 되는 말씀을 항상 들려주셨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고인은 지금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 품에서 지금 안식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이별은 잠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 안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그 소망을 가지고 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버님과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고요. 또 만날 때 아버님이 이 말씀을 저에게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은 김서방, 어서 오게! 그 동안 많이 ........ 보고 싶었네!“ 라며, 장인 조정칠 목사를 추억했다. 

 

작은 김서방은 조사의 마지막 부분 ”‘작은 김서방, 어서 오게! 그 동안 많이 ........ 보고 싶었네!“를 말할 때는, 슬픔에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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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는 고인을 유난히 많이 따랐던 후배 목회자 부부와 고인에게 배웠던 제자들이 함께 불렀다. 고인은 평소 내가 죽으면, 절대로 천국환송예배라는 말을 쓰지 마세요. 천국에 가고 못가고는 오직 하나님만 알아요.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순서를 맡지 마세요. 내가 예배 순서와 담당자를 다 정해 놓았어요. 여러분들이 조가를 불러주면 좋겠어!” 라고 말하곤 했었다. 

 

설교 - 이학권 목사

제목 :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본문 : 고린도전서 1558) 

 

얼마 전, 하나임교회의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난 이학권 목사가 고린도전서 1558절을 본문으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고인이 한국에서 목회할 때, 이학권 목사는 조정칠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곤 했고, 조정칠 목사는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학권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뉴욕새교회의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곤 했었다. 

 

이학권 목사는 성경적으로는 삶의 문제는 허무이다. 불교에서는 문제를 고통이라고 본다. 제 생각에는 성경이 조금 더 깊이 본 것 같다. 고통 속에 인간은 견딜 수 있지만, 허무한 인간은 살 수 없다. 허무는 조건과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전부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조건과 상황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무의 뿌리는 폭력이다. 폭력이라는 말은 강제되어진 것이다. 해야 되니까,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것, 기쁨이 없는 그런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는 역할만 남았다. 역할을 통해서 일시적인 만족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존재의 가치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허무는 어떻게 극복되는 것인가? 가슴에서 피어나는 삶을 살 때 더 이상 허무하지 않다. 가슴에서 피어난다는 말은 내 안에 있던 생명이 피어나는 것이다. 

 

저는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했고 또 목사님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사님이 한국에서 목회하실 때는 어김없이 불려가서 부흥회를, 집회를 인도하곤 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행위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피우고, 기뻐하고, 사람에게 보여서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나로 살아, 장미면 장미로, 수국이면 수국으로, 나리면 나리로 피어, 생명의 자유와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진정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해 주시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 사랑과 용서와 용납과 긍휼이 가슴에 피어나, 희생하고 나누며 사는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죽음의 권세가 깨어지면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피우는 사람들이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를 살아보지 못하던 우리에게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고 피우는 하나님의 생명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부활의 더 소중한 의미일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무엇이 옳다, 바르다, 1 더하기 12, 그런 것보다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그 비밀을 누리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의 소망을 나누시던 목사님을 기억하면서 생명으로 풍성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한다고 설교했다. 

 

인사말 - 장남 조일구 장로 

 

고인의 장남 조일구 장로가 유족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했다. 조 장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몇 분이나 오실까 걱정을 했었는데, 비가 내리는 중에도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의 설교를 들어 주시고, 교인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인사했다. 

 

이날 장례예배에는 뷰잉이 없었다. 고인의 유지에 따랐음은 물론이다. 유족들은 예배당 밖 복도에 도열하여 조문객들의 위로의 말을 듣고, 조문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가 내리고, 하나임교회가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과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문객들이 장례예배에 참석하여 유족들을 위로했다. 평생을 겸손하고 신실하게 목회했던 조정칠 목사를 기리고, 귀한 목회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뉴저지 뿐만 아니라 뉴욕, 필라델피아에서 온 조문객들의 숫자는 족히 300명이 넘었다. 

 

순서지에 실린 고인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총신대학교 졸업 후 70년간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다, 71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1979년 대구 남성교회 시무를 마치고 도미하여 미국 훼이스 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뉴욕에서 서울장로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재직하셨습니다. 1990년 서울 신용산교회에 청빙되어 10년간 목회하시고, 그 후 대전 혜천대학교회에서 섬기시다 2004년에 은퇴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필라델피아 블루벨한인장로교회에서 시무하시고 사역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저서로는 <하얀마을 사람들>, <소명의 사람들>, <어머니 목회학>, <어머니 기도학> 30여 권을 남기셨습니다.“ 

 

조정칠 목사의 약력을 대충만 소개하려고 해도 최소한 순서지 2면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약력 소개를 최소화 했다. 이 때문에, 고인이 속했던 총회와 노회에서는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뉴욕목사회장 연임, ‘좋은목자의 동산산 밑에 백합운동에 관해서도 약력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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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소개에 이름과 고인과의 관계만 나와 있을 뿐, 교회에서의 직분도 표기하지 않았다.


부인 : 설옥자
장남 : 조일구(며느리 : 조미숙) 
    손녀 : 조선아(사위 : 양세준) 
    손자 : 조선호(며느리 : 윤서연, 증손녀 : 조하윤, 증손자 : 조시윤)
장녀 : 조은주(사위 : 김충은, 외손자 : 김현우)
차녀 : 조현주(사위 : 김성배, 외손녀 : 김유정, 김소정, 김희정)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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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예배는 이기백 목사의 집례로 7월 15일(화) 오전 10시에 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에서 진행되었다.

기원, 찬송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정명민 목사의 기도, 성경 봉독, 설교, 헌화, 찬송 ‘만세반석 열리니’, 축도, 광고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기백 목사는 창세기 5장 24절을 본문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예배를 마친 후, 헌화만 했다. 하관을 하지도 않았고, 취토(取土) - 관위에 흙을 뿌리는 행위 - 도 하지 않았다. 모두 고인의 뜻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작았지만 큰 목회자가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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