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장 10-20절, 66장 2절, 23-23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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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나뉜 마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
본문 : 이사야 1:10–20 / 66:2, 22–23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압축하여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소성경’이라고도 불리는 선지서의 첫 권인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자기 백성을 고발하시는 법정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피고석에 앉은 자들은 이방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양육하신 언약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고발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의 죄악까지 사랑하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소돔의 관원들”, “고모라의 백성”이라 부르시며 그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3, 15)
즉, 하나님께서 죄악이라 고발하신 것은 예배 자체가 아닙니다. 성전 안에서는 거룩한 예배를 드리면서 성전 문을 나서면 이웃의 피를 흘리는 삶이었습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사 29:13).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즐겨하면서도 그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원인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해야 할 마음이 죄의 욕망에 사로잡혀 나뉘게 된 데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창 3:6). 이러한 죄의 본성은 오늘날에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나타납니다(요일 2:16).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뉜 마음이 예배와 삶을 분리시킵니다.
나뉜 마음은 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사랑의 전부로 오해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40).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17)
제물과 분향과 절기는 모두 성전 안의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모두 성전 밖, 삶의 자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회개에서 시작하여 이웃과 사회 속에서 공의를 행하고 정의를 구하는 삶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세상 속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이고 기르는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자신의 힘만으로 나뉜 마음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합니다. 신명기 10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신명기 30장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오늘 본문의 중심인 18절에 나타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죄에 대한 고발은 분명하고 심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죄인이 돌아올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16절에서는 “스스로 씻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18절에서는 주홍 같은 죄를 눈같이 희게 하시는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초청 앞에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고, 거절하면 칼에 삼켜지는, (사 1:19–20) 두 길이 놓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말씀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던 것처럼(창 6:11), 이스라엘의 손에 가득한 피가 그 땅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영을 보내어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시 104:30). 위에서부터 영을 부어 주시면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정의와 공의가 그 땅에 거하게 됩니다(사 32:15–17). 하나님은 한 사람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예배하는 언약 백성의 삶을 통하여 죄로 물든 이 지면을 새롭게 하시려는 크신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입니다. 죄를 미워하시기에 회개를 명하시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습니다(애 3:22–23). 이사야서는 이러한 심판과 회복을 반복하여 보여 주면서 마침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메시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죄로 인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롬 3:25–2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겔 36:26–27). 이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의 구속사적 성취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뉜 마음을 하나로 모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고(시 86:11), 그 열매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맺게 하십니다(살전 1:3).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셨던 월삭과 안식일의 예배는 마지막 66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예배로 이어집니다(사 66:22–23). 그리고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자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입니다(사 66:2). 하나님께서 나뉜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자기 백성이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가게 하실 때, 형식에 머물렀던 예배는 삶과 하나 되는 참된 예배로 회복됩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서 구원 얻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늘 깨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배움에 힘쓰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세상의 욕망을 따라 나뉘어 있지 않은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데 인색하지는 않는지, 우리의 신앙이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를 말씀 의지하여 무시로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결심이나 완전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침마다 새로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나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예배와 삶이 하나 되는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이 사회를 새롭게 하시며,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벧후 3:13).
이에 오늘도 우리는 사랑하시기에 회개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만을 의지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나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