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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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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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본문 : 요한복음 9장 | 요한복음 17:3


  요한복음 9장을 읽다 보면 우리는 흔히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뜬 기적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요한이 기록하고자 한 목적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9장 1절은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요 9:1)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라는 선언으로 끝이 납니다. 처음에는 육신의 맹인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영적인 맹인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9장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본문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 그의 부모, 이웃 사람들, 유대인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사건, 태어나면서 부터 맹인인 자가 눈을 뜨게 된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뜬 것보다 안식일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누구의 죄 때문인가?“라며 사람의 죄에 관심을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공동체의 리더 역활의 바리새인이었지만 정작 모세가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요 9:28)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이는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은 붙들었지만 율법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반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사실을 담대하게 증언하다가 결국 회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예배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회당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버림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9장의 절정입니다. 맹인이 눈을 뜬 것이 결론이 아닙니다. 회당에서 쫓겨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믿고, 경배하게 된 것이 결론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았지만,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 나라 안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회당 안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모세의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결국 요한복음 9장은 “누가 참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인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알고, 그분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며,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영생이며,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교회의 여러 모임에 참여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나 그 통로를 지나면서도 정작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신앙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말씀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 가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질문 앞에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처럼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이 믿음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욱 깊이 알아 가며, 영생의 기쁨을 누리고,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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