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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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17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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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더 이상 ‘장차 오실 이’(who is to come)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본문: 요한계시록 11장 17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요한계시록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유명한 호칭을 성도들은 대부분 기억할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영원하신 신성과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강조)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전에도 계셨고(who was) 지금도 계시고(who is) 장차 오실 이(who is to come)라는 호칭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호칭은 다섯 번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 1:4) ②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 ③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4:8) ④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11:17, 여기선 미래적인 호칭이 없다) 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16:5, 여기서도 미래적인 호칭은 없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다섯 군데 모든 곳에서 한 결 같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계시록 11:17과 16:5에서는 미래의 호칭(장차 오실 이)이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슨 뜻입니까? 더 이상 ‘장차 오실 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그런 날이 온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도래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미래만으로 생각하였던 그 역사(종말)가 마침내 성취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본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도 더 이상 ‘장차 오실 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11:17, 16:15, 일곱째 나팔심판 이후에 뚜렷하게).


형제자매 여러분,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 같다(그날이 그날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장차 오실 분’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될 바로 그 날(임박한 끝)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말씀과 성령과 함께 깨어있는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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