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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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8편 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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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시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할머니의 손’이란 제목으로 실린 스토리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영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에게 맡겨졌습니다. 아버지는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낮에는 온 산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캐고, 밤새 그것을 다듬어, 어스름 새벽이 되면 산길을 내려가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러나 지영이는 할머니 없는 빈 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나물 캐 오는 것도 싫었습니다. 숙제를 하고 나면 으레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의 까만 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토요일까지 중학교 진학문제를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시고 갈 사람이라곤 할머니뿐인데,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특히 손톱 밑의 까만 땟국... 지영이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지영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싶어 저녁도 굶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지영이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계셨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지영이는 선생님의 이 말을 듣고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니의 손은 퉁퉁 불어 새빨간 생채기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아내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


지영이는 할머니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것은 온통 사랑인데 지영이는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해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눈치 챈 할머니는 철없는 손주 딸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육신의 할머니도 이렇게 좋은 것만 주려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은 시험에 자주 지고 맙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충분하다고 착각’하여 기도를 소홀히 하도록 만드는 함정입니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지금 해 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 좋은 것을 줄 리가 없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 한구석의 불신, 혹은 잘못된 자기만족을 부추김으로써 영적 방심을 유도합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충고합니다.


“인간이 ‘원수(하나님)’에게 시선을 두면 우리는 패배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돌려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면, 쉽게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할 수 있다.”


믿음은 완성된 선물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끈질긴 희망과 버팀으로 열매 맺어야 할 우리 삶의 과업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고, 우리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청하는 순간, 믿음의 기도가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믿음 고백은 ‘I believe, help my unbelief!’ (믿습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입니다.


이런 기도에 전문가처럼 ’특화’되어 있던 분이 다윗이었습니다. 자신의 주군이자 장인이었던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 얼마나 위협을 느꼈으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아비멜렉)에게로까지 피난을 갔을까?


그때는 그래도 다윗이 20대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했을 때는 인생의 황혼을 넘어선 60대 초반 경이었습니다. 그 때의 서글픔은 20대 때와는 정말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깊은 절망감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언제나 놓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언제나 그의 기도는 I believe, help my unbelief!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1절) ’무덤에 내려가는 사람과 같다’는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아무리 참담하여도 하나님을 향해 “나의 반석이여”라 부릅니다.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올려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여러 시편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의 반석”라고 고백했습니다. ‘반석’은 ‘견고한 보호와 도움’, ‘완전한 피난처’를 뜻합니다. 즉 다윗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바라 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하나님께 한 두번 기도하다가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행하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반석 되신 주님을 바라 보십니까?


오 주여

어떤 상황에도 함몰되지 않고

반석되신 주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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