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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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를 통한 광야 훈련의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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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민수기를 통한 광야 훈련의 묵상

말씀 : 김연희 목사님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동시에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출 12:41). 그러나 군대가 되었다는 것은 곧 전쟁을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지, 완성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민수기는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훈련을 통해 준비되는지를 보여 주는 책입니다.


  민수기 1–10장은 군대의 조직과 배치입니다. 성막이 중심에 놓이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그 주위를 둘러 진을 칩니다. 9–10장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은나팔은 행진 명령과 작전 신호가 됩니다. 이 모든 구조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군대를 다스리는 군법은 힘이 아니라 언약 질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군대로 부르신 백성에게 전쟁보다 훈련보다 먼저 질서를 배우게 하십니다. 세상의 군대도 실전 위해 훈련을 시키는데, 훈련 이전에 조직의 질서를 배우도록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군대도 먼저 하나님 중심의 구조를 체득해야 합니다.


  민수기 10:11에서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르자 행진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곧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물이 없고, 먹을 것이 부족하며, 환경이 두렵다고 말합니다(민 11장).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평도 나옵니다(민 12장). 이어지는 가나안 정탐 사건에서는 열두 명 가운데 열 명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민 13:33)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 14:8)고 선언합니다.


  같은 땅을 보고도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 명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실을 기준으로 판단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언약을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의 생각이었습니다.


  신명기 2:14은 이 광야 생활 38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세대의 군인들은 다 진멸되었느니라.” 광야의 38년은 옛 세대의 종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한 출애굽 1세대를 소멸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붙들고 있던 육신의 생각을 지워 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서 광야가 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광야가 길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고,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9). 율법은 길을 보여 주지만 마음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하라’, ‘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그 명령을 이룰 능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광야 1세대의 실패는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민수기의 광야 훈련은 로마서 8:6의 말씀으로 설명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자기 계산과 두려움, 불평과 자기 중심은 결국 사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언약을 신뢰하는 영의 생각은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율법을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더 깊이 신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광야는 모두를 통과시키는 장소가 아닙니다. 남은 자를 세우는 훈련소입니다. 훈련을 통과한 자는 남은 자가 되고, 통과하지 못한 자는 탈락자가 됩니다. 그리고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은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남은 자를 통해 이어져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구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출애굽 1세대는 실패했고,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 시험에서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고, 죄의 삯인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완전한 순종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참 안식에 들어갑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선언합니다.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광야는 끝이 아닙니다. 안식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 안식은 이 땅에서의 일시적 평안이 아니라 주님 품 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광야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벌로 해석하지 맙시다. 광야는 우리를 버리는 장소가 아니라, 육신의 생각을 끝내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의 계산을 무너뜨리시고, 우리를 언약을 신뢰하는 영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사순절의 의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순절은 눈에 보이는 것을 계산하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구름기둥은 밖에서 인도했지만, 이제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율법은 밖에서 명령했지만,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광야는 길어 보여도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시고,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에 이르지만, 영의 생각은 생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길 끝에는 참 안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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