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11절, 6장 33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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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용할 양식으로 드러나는 ‘그 나라와 그의 의’
본문 : 마태복음 6:11, 6:33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태복음 6:11)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오늘은 2015년 4월 30일에 ICPM 카톡방에 올린 묵상글을 읽어 보다가 다시 한 번 정리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노상 읊조리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제 삶을 지금까지 어떻게 붙들어 오셨는지 새삼 두렵고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기도는 너무 익숙해서 때로는 습관처럼 지나가지만, 하나님은 이 짧은 문장 속에 제 삶의 여정 곳곳에 다른 깊이의 은혜를 담아 두셨습니다.
신앙의 초기였던 1993년, 제가 이해한 일용할 양식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하루 세 끼의 식사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이왕 달라고 할 거면 더 많이 달라고 하지, 왜 하루치일까?” 그 시절 제 삶은 작은 비즈니스를 하며 하루하루 빠듯하게 버티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일용’이라는 말이 제게는 부족과 불안의 단어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이미 제 기도의 방향을 바꾸고 계셨습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오늘”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주기도문을 고백하는 중에 제게 ‘일용’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루 세 끼만이 아니라, 하루에 사용되는 모든 물질, 하루에 필요한 모든 공급으로 깨달아졌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부터 제 삶에는 놀라운 체험이 이어졌습니다. 주 기도문을 통해 날마다 필요한 물질을 공급받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내 상황과 처지를 미리 아시고 채우시는 손길이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필요한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로 날마다 돌보신것 처럼 말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라는 말씀이 크게 깨달아짐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불안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비즈니스가 커지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문제들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그때 제게 들어온 말씀이 출애굽기 16장 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이 말씀을 읽을 때, ‘양식’은 더 이상 물질의 범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비 같이 내리는 양식은, 피할 수 없이 매일 제게 쏟아지는 사건과 문제와 상황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문제들 앞에서 저는 사람의 능력의 한계를 더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대로 행하나 아니하나”를 보신다는 그 문장 앞에서, 제 신앙도 변화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에서, ‘이 문제 안에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일용할 양식을 통해 시험하고 계신데 …라는 고민하는 가운데 다시 떠오른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이 말씀은 제게 ‘영적인 양식’이라는 개념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한 말씀이었습니다. 떡의 문제는 곧 믿음의 문제였고, 먹고사는 문제는 곧 하나님을 누구로 모시고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이 더 지난 2010년 초 요한복음 4장을 묵상하던 중, 저는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일용할 양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그 순간, 저는 그동안 제 삶에서 일용할 양식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한 줄로 연결되었습니다. 하루 세 끼의 식사에서, 하루에 필요한 물질로, 매일 비 같이 쏟아지는 문제와 상황으로,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으로. 그 모든 과정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 삶을 통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가르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염려를 말씀하시며 결론을 이렇게 내리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말씀을 이제 저는 일용할 양식의 기도와 함께 더 분명히 이해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질서입니다. ‘그의 의’는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단지 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무엇을 더 가질까’가 아니라 ‘오늘 누구의 뜻을 따라 살 것인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은 제게 이렇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시는 공급을 믿음으로 받고, 오늘 주시는 상황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오늘 요구하시는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 분리되지 않고, 말씀과 삶이 하나 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은 온전해집니다. 말만이 아니라 삶이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오늘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이 길은 결국 기도로 이어집니다. 제가 2015년 묵상글의 마지막에 붙잡았던 말씀처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일용할 양식이 ‘뜻을 행하는 삶’으로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분명히 기도로 돌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이루는 힘은 위로부터 오고, 그 은혜는 기도를 통해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는 기도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은, 오늘도 허락하신 모든 상황과 문제 뿐 아니라 이를 다스리는 믿음과 순종의 은혜를 비 같이 내려 주신다는 뜻임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로 그의 나라가 내 안에 세워지고, 그의 의가 내 삶의 질서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