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12편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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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2-제왕시
시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20세기 초 유럽은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간의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원인은 그들이 다양한 인종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50년 간 장기 집권한 오스트리아는 제국 내 민족 간 분열이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시대 상황과 국민의 뜻을 무시한 정권에 대항한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어나 폭탄 테러를 일삼았습니다.
불안정한 상황 가운데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가장 위험한 지역인 사라예보를 직접 방문해 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위험하니 가서는 안 된다는 측근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1914년 6월 사라예보로 떠났습니다. 왕위 계승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경찰들이 황태자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그럼에도 황태자를 태운 오픈카는 수류탄 공격을 받게 됩니다. 다행히 수류탄은 차를 튕겨 나와 뒤따르는 차에만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라예보 군사령관은 가능한 빨리 도시를 벗어날 것을 황태자에게 권했습니다.
그러나 황태자는 수류탄 폭발로 다친 사람들을 먼저 만나야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전에 차가 너무 빨라 그를 공격하지 못하고 철수하던 한 테러리스트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총으로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심장을, 소피아 부인의 복부를 맞췄습니다. 황태자 부부는 결국 사망하였고 며칠 후, 이 사건을 이유로 오스트리아 군대가 사라예보를 침공하였습니다.
사라예보를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나섰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독일은 러시아와 싸우면서 자신들의 독립을 방해했던 프랑스도 함께 공격하였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길목인 벨기에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벨기에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던 영국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단행했습니다. 이렇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새해 들어 발생하는 상황이 마치 역사의 되풀이를 보는 듯한 위기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할 때, 그것이 오히려 위기 상황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됩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역사의 ‘진행자’일 뿐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2주 뒤 유럽 전역이 전쟁의 화마로 몸살을 치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다가 그러한 우리의 시도가 역사적 비극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의 정의는 시편 2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왕 되심 앞에 굴복하고 그 안에서 피하는 자입니다.
이는 시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현실속에서 탄식하며 고통 속에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살아가라 명합니다. 그래서 시편 2편을 제왕시(帝王詩)라고 부릅니다.
주님을 우리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입맞추라”고 명하십니다. 우리 입술의 고백과 순종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고, 참된 왕이신 그분을 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때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우리 자신을 묶는 끈입니다. 고통이 심해지면 우리는 흔들리게 됩니다. 의심이 찾아오고 절망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입맞추라‘는 기도를 말씀합니다. 그때 우리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부릅니다. 닻은 우리를 꼭 붙들어 줍니다. 그 영혼의 닻이 소망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기도로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 자신을 흔들리지 않도록 묶는 것입니다. 소망을 히브리어로 ’티크바‘라고 합니다. 이는 노끈을 의미하는데, “서로 꼬아 한데 결합시키다”는 뜻을 가진 “콰바”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즉 소망이란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한데 꼬아 연결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꼬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에 담긴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품게 되면 그분께 단단히 정박되어 그분과 하나로 묶이게 되어 새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꼬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도와줍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던 세상의 모든 소망들이 사라져 갈지라도,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의 사랑이란 굳건한 반석위에 둔다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굳건하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를 부르며 새해를 시작하기 원합니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