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 9-10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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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62)-멜리데의 기적
행28:9-10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멜리데는 이탈리아 시실리 섬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그레데에서 약 800km 떨어진 곳입니다. 그 먼 곳까지 배가 표류해 온 것입니다.
그들이 멜리데 섬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지치고 추웠을 겁니다. 섬 원주민들은 물에 빠져 온몸이 젖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불을 피워 몸을 녹이게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불 옆에 있던 나무 한 묶음을 들고 불을 피우다가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옆에서 목격한 원주민들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니 곧 죽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난파된 배에서 겨우 살아난 사람이 육지에서 불을 쬐다 독사에 물려 죽게 되었으니 분명 살인을 저지른 죄수처럼 악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광풍으로 14일 넘게 표류하다가 배는 파선되었고 겨우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는데, 상륙하자마자 독사에 물려 죽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자 이제는 반대로 그를 ‘신’이라 부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멜리데 섬의 추장,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을 머물게 해줍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습니다.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는 범상치 않는 사람에게 보블리오는 부친의 질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바울이 보블리오 부친에게 안수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 그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이 이젠 ‘치유의 손’이 된 것입니다. 소문이 나자 멜리데 섬에 병든 사람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이런 기적 사건을 접할 때 마다 마음 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왜 이런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치유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거룩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하면서, ‘받은 줄로 믿는데’도 좀처럼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신유 사건이 이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 여기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변에 암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보면서 가서 손을 얹고 안수해서 그분들이 다 병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바램은 한 두 사람만의 바램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난 상황과 우리들의 현 시점에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기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먼저 초자연적 사건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2006년 여름 애리조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톰 보일‘이란 중년 남자가 자전거를 탄 10대 소년이 차에 깔린 것을 보고 달려가 마치 삼손처럼 차를 들어 올렸습니다.
소년은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아저씨, 조금만 더 높이요, 조금만 더 높이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차를 20cm 이상 들어 올렸고 그 소년을 친 운전사가 소년을 빼냈습니다.
그는 엄청난 구조사건 후에 인터뷰에 응하면서 증언했습니다.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어요. 그 소년이 제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거였죠.”
그런데 이런 일은 영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 된 사건입니다. 2005년 여름 영국 선더랜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BBC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캠핑하던 카일라 스미스는 차를 나무에 들이박는 사고로 차가 뒤집혔습니다. 신장 165cm의 가냘픈 스미스는 등뼈 두 마디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자신과 함께 타고 있던 친구를 빼내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스미스는 BBC방송에 자신의 몸무게보다 20배가 더 나가는 무게를 들어 올릴 당시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무조건 차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친구의 다리는 못 쓰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 팔을 운전석 창문으로 넣어 차 지붕을 밀어 올렸죠.”
그 당시 자신은 차 무게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친구를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순간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절박함‘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할 때의 특징은 마음에 안타깝게 느끼는 ‘사랑’은 있는데, 순간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전혀 없어 ’텅 빈 상태‘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의 상황이 이와 같았습니다. 깊게 생각하고, 따지고 한 표적과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무의시적‘으로 한 행동이었고, 그냥 그렇게 될 줄 믿는 믿음 뿐이었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에서 그냥 뱀을 떨쳐버렸고, 그 손으로 그냥 인수해서 열병을 처리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 사건을 ’덜‘ 경험하는 이유는 과학 및 의학의 발달로 ’덜‘ 절실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또 너무 많은 지식과 이론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좀 ‘단순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오 주여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하옵소서
단순한 믿음, 절실한 간구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