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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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35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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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19)-전도자의 메타인지


행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EBS ‘학교란 무엇인가 – 0.1%의 비밀’이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어느 날 김경일 심리학 교수를 찾아왔습니다. 0.1%는 전국 석차 최상위권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의미합니다.


제작자들의 고민은 공부 잘하는 수재들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인데, 그 비밀을 특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IQ, 부모학력과 소득, 사는 지역, 학교를 다 조사했는데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메타인지 심리학’을 통해 전국 0.1% 수재들의 특징은 분명히 ‘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그들의 일상을 추적해 영상에 담아보라고 권했습니다. 


영상 추적 관찰로 나타난 것은 이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더 많은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물론, 공부 못 하는 아이들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석차 0.1%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착함’이라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들의 ‘착함’은 자신에게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이 안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줄 수 없으면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깨닫는 것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전국 0.1%의 수재들은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이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들의 ’착함‘으로 갖게 된 ’복‘입니다. ’있는 자가 더 받게 된‘ 복입니다(눅19:26).


남을 도와주다 보면 우리 자신이 더 공부하게 됩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도와주려고 더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성장합니다. 진정한 전도자는 그래서 복음을 나누며 행복한 것입니다.


룻다에서 베드로의 사역은 그의 ‘착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전도는 전도자의 ‘착한 행실’로 말미암습니다. 두루 다니며 도울 자를 찾고,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한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룻다에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곳 성도들을 만나러 갔고, 애니아는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중풍으로 침상에 누워 지낸 지 여덟 해나 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8년 동안이나 홀로 서지 못했던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합니다. 베드로의 ‘메타인지’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 담긴 치유의 능력입니다.


‘알고 믿기’ 때문에 그의 ‘착한 행실’로 단순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계속 나타난 표적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나타나심’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믿은 것입니다. ‘메타인지’입니다.


그래서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에 애니아는 즉시 일어섭니다. 애니아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자리를 정돈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애니아의 이름은 ‘찬양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아이네오’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기뻐 뛰며 이름처럼 주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의 핵심은 ‘전도하지 말고 전도자가 되는 것‘이라는 point입니다. ‘전도하는 것’과 ‘전도자가 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전도하는 것’은 일상생활 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doing)이지만, ‘전도자가 되는 것’은 매일 전도자로서, 즉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그 자체(being)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메타인지’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알고 믿는 것도 doing이 아니라 being이 되도록 할 때 실제 역사가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전도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을 전도하는 데에 목표를 두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전도자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을 예수를 믿게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을 진실되게 믿는 사람이 되고, 착한 행실로 나누면 됩니다. 실제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은 대개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그 과정은 무시한 채 곧바로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시도하면 조급해져서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지만 일방적 강요 때문에 미안해서 그냥 믿겠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면 떠나 버립니다. 고백만 하면 믿은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전도를 받아들이기 보다 전도자를 봅니다.


전도자를 신뢰할 때 전도는 저절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를 전하고, ’착한 행실‘로 ’메타인지‘가 저절로 나타나게 하는 전도자로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오 주여

전도가 아니라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메타인지’가 높아지게 하소서

주의 성실을 배우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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