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16-19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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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믿지 못하는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아주 혁명적으로 애를 썼던 두 사역자
본문:마태복음 11장 16∼19절,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자기 친구들을 불러 이르되… 장례놀이를 할지라도 전혀 반응이 없는 것과 같고 잔칫집놀이를 할지라도 전혀 반응이 없는 것과 같도다. 지혜란 그 행한 일로/그 자녀들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요약해서 쉬운 말로 옮겼습니다).
시대가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하나님의 복음(그리스도)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심령이 패역해 있다(비뚤어지고 꼬여있음)는 점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몇 차례 이것에 대하여 통탄해 하셨습니다. ➀ (믿음이 없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마태 11:16) ➁ 가버나움아,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miracles=기적)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있었을 것이다(마태 11:23). ➂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주어야 하리요?(마태 17:17)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강림 직전에 펼쳤던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은 참으로 파격적이고 놀라운 사역이었습니다.
1. 장터 아이들의 장례놀이(funeral plays)와 비슷한 사역을 펼친 세례요한.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슬프게 애곡할지라도, 너희가 울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았도다. 또한 세상적인 여러 사람처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면서(=금식적인) 사역을 펼쳤는데도 너희는 말하기를 ‘귀신들린 놈’이라고 평가하였도다.”(11:17∼18). 세례요한은 어려부터 광야에서 훈련받았고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사역자였습니다. 석청과 메뚜기로 양식을 삼았고 약대 털옷으로 의복을 삼았다. 세련된 의복과 진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그런 것은 왕궁에 가득하였다). 오늘날에 비교해서 아주 쉽게 말하면, 펜실베니아의 아미쉬들(the amish community)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부터 들어오는 문화를 철저하게 배척하였다(전기나 전화, 가전제품들). 완전히 세상과 담을 쌓은 금욕주의자였다.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죄와 악한 문화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세례요한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였고 큰 반향(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회개하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인 위기를 일깨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스라엘 지도층)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그들의 위선을 폭로하였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는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 어쩌면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말들도 서슴지 않았다. 헤롯 왕의 죄악을 지적하기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서 이것 때문에 투옥되었다. 한마디로 세례요한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로서 세상과 타협함 없이 사역을 펼쳤음에도, 백성들은 그를 ‘미친놈(귀신들린 놈)’이라고 배척하고 믿지 않았던 겁니다.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에게 분명히 잘못이 있습니다. 비유해서 세례요한은 장터 아이들의 장례놀이와 비슷한 사역을 펼쳤음에도, 시대가 악하고 악한 세대였으므로 인하여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2. 이와는 반대로 장터 아이들의 잔칫집 놀이(wedding plays)와 비슷한 사역을 펼친 예수님도 계셨습니다. 세례요한과는 많이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가까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죄인들(소외된 자, 창기와 세리)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주면서 천국 메시지를 전하셨고 그들에게 자기의 신분(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랬더니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보아라, 저 사역자는 마구마구 먹는 것을 탐하고 포도주(술)을 즐기는 인간이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한패)로다.”(11:19)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 장터 아이들의 잔칫집 놀이와 같은 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어떤 목사님께서 주변의 질 떨어지는 사람들(노숙자, 마약 쟁이, 몸 파는 여자…)과 잘 어울리면서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교회의 중직 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정과 형편을 두고서 어떤 평가를 해야 할 것입니까? 사역자를 탓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악한 세대만을 핑계대야 할 것인지? 쉽지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역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역을 통해서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지혜란 그 행한 일로/그 자녀들로 인하여 옳다 함을 받는다)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요한과 예수님(오늘날 사역자)께서 펼치신 사역의 겉모습만을 보시지 마시고 그들의 사역 안에 숨겨진 참뜻을 깨달으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시고 천국을 항상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두 분의 사역에서 분명히 성령께서는 죄인의 죄를 사하셨으며 더럽고 악한 귀신을 추방하셨으며 믿는 자의 심령에 천국의 도래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들이 여러분의 내면에서도 역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