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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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미국 TV 상품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에 Priceless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의 가치가 매우 커지면 더 이상 숫자로는 그 가격을 정할 수 없어, 비교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상품 광고에 쓰기에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대량 생산하는 상품과 하나 뿐인 작품은 다릅니다. Priceless라는 표현은 작품에나 해당될 수 있는 말입니다.
지독하리 만큼 철저한 상혼은 ‘한정판’으로 제품을 만들어 ’명품‘이란 라벨을 붙이고 고가에 팔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품은 상품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체 불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목숨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목숨을 지키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왜 내 목숨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우리가 대체불가의 고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하나님의 ‘만드신 바’(포에마-작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대체불가’의 가치는 ‘사랑’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립니다. 사랑할 때 붙여지는 가치가 ‘priceless’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신 우리들의 가치입니다.
내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가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사랑해 준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가치로 변해버립니다. ‘대체불가’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치를 아시기에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우리를 구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시며 우리의 가치를 매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가치이기에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자존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다말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진 그림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인생(분신)‘이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화가는 자신이 미워 화실 구석에 앉아 오랜 시간 비탄과 실의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면당한 인생, 미운 오리새끼를 ’최상의 백조’로 변화시킨 공로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 ‘미완성의 꿈’을 치우지 않고 정성스럽게 펴서 말없이 이젤 위에 놓아두곤 했습니다. 그러면 화가는 다시 한참 그 그림을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다시 붓을 들어 그 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시킨 작품이 ‘전원풍경’, ‘목욕하는 여인’ 등입니다. ‘폴 세잔느’의 작품들이 태어난 배경에 얽힌 스토리입니다.
하마터면 역사의 뒷전에 유실될 뻔 한 작품이 그 가치를 인정해 준 아내의 말없는 격려와 사랑으로 지금까지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도 비슷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습작으로 악보를 그려, 한번 부르고 쓰레기 통에 버린 그 악보를 양희은이 주워서 다시 불러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이선희의 ‘J에게’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던 노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끝까지 우리를 믿어주고, 응원과 지지를 잃지 않을 때 우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시며, 신뢰하고 끝까지 응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매기신 priceless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늦게 피는 꽃’(late bloomer)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깨닫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추스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짖밟힌 장미꽃처럼 자신를 버리셨습니다. He paid the price to make us priceless(우리를 고귀한 작품으로 만드시려 값을 치루신)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거지가 길을 막으며 구걸을 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해하며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하구려, 형제여, 안타깝게도 지금 내겐 돈이 한 푼도 없소.” 그러자 거지가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누구신지는 모르나, 당신은 제게 돈 이상의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드려 우리 가치를 매겨주셨으니, 이제 우리도 우리가 만나는 한 영혼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가치를 세워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섬김’입니다.
이 아침에는 ‘형제의 모습 속에’ 찬양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기 원합니다.
형제의 모습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