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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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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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열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영화 ‘쇼생크 탈출’은 단순히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의 ’탈옥 성공기‘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준비할 때 그 소망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 소망은 도서관 확장이라는 작은 예로 시작됩니다.


앤디는 오랜 세월 동안 감옥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며 도서관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이를 위해 교도소장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교도소장은 이를 허락합니다. 앤디는 죄수들에게 지식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합니다. 심지어 한 죄수의 GED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어 소망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후 그는 감옥의 방송 시스템을 해킹하여 교도소에 모짜르트의 오페라를 틀어줍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독방 형벌‘을 면치 못하지만 모든 죄수들에게 짜릿한 자유와 소망의 순간을 선물합니다.


소망이 믿음으로 바뀌려면 댓가를 치루어야 함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앤디는 주장합니다. “소망은 좋은 것이고, 아마도 가장 좋은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소망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의 열매‘가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소망)의 실상”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소망이 개인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주변까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망을 단순히 ‘소원하는 것’, 즉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그런 의미를 넘어서 ‘확신에 찬 기대’를 뜻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신앙의 기초적인 요소입니다. 소망 없는 인생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소망을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소망을 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롬8:24~25).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Promise Keeper’라고 찬양하며 주 안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 또한 작은 소망이 어떻게 믿음이 되고, 믿음이 결국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릴 적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망으로 시작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작은 소망입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녀의 불굴의 의지는 결국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그 과정에 수많은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헬렌 켈러는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위대한 교육자가 됩니다. 그 ‘마침내’는 ‘하나님의 마침내’ 입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결국’이며 ‘소망의 열매’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망을 품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소망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행동으로 이어져 사랑이 되고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말합니다. “소망은 믿음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우리는 그것 없이는 결코 나아갈 수 없다.” 소망이 지속될 때, 그것이 점점 더 깊은 믿음으로 자라나며, 결국 사랑으로 승화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처럼 그의 소망을 주님께 아룄습니다. 자신도 주님처럼 물 위를 걷고 싶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오라‘는 말씀을 듣고 물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지고 맙니다.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왜 의심하느냐?”는 주님의 면박을 통해 그는 한 단계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끝까지 소망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이유는 믿음을 성장시켜 결국 세상을 더 밝히는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이런 성장을 거듭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갓난 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사모(갈망)하라.”


소망은 끊임없는 ’갈망의 열매‘이며, 그 ’소망의 열매‘는 우리도 마침내 ’물 위를 걷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 어린아이 처럼 떼를 쓰며 어리광 부리듯 우리의 소원을 아룁시다.


그 ‘소망의 열매’를 우리도 맛봅시다. 갓난 아이처럼 순수하게 주님께 소원하며 나아갑시다. 우리 신앙의 모습이 너무 ’젊잖은 모습‘이었음을 회개합시다. ’젊잖다’ 는 ‘젊지 않다’라는 말입니다.


젊고 어린 모습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도 ‘물 위를 걷는’ 소망의 열매를 맛봅시다.


오 주여

우리가 너무 젊잖게 주님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영적인 것을 갈망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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