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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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8장 3-8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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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왕하18:3-8

제  목: 신앙의 야성을 키우라. 


히스기아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18:5) He trusted in the LORD God of Israel ; so that after him wa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kings of Judah, nor any that were before him.(2 king 18:5)


* 부족한 종이 9월 6일부터 26일까지 교단총회와 부흥성회 인도 차 고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010-4289-2207)를 사용합니다.*


북한에 풍산개와 세퍼트가 싸우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세퍼트는 풍산개보다 덩치가 1.5배 이상 차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세퍼트가 공격을 계속하면, 풍산개는 이리저리 피해 다녔습니다.


잠시 세퍼트가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서 갑자기 한 번에 목을 물고 늘어 져서 이겼습니다. 


덩치 큰 세퍼트가 작은 풍산개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길들여짐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퍼트는 지키는 개, 혹은 수색 견으로 훈련되고 사용되어 집니다. 


그러나 풍산개는 사냥견입니다. 


지키고 수색하는 세퍼트는 야성을 잃었고, 싸움을 위한 사냥견인 풍산개는 야성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성이 잘 발달되어 교회에서 예배는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합니다. 


지성이 발달되어 말씀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영성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야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야성인 밧데리가 완전히 방전되었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치열한 싸움의 현장이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독교 복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신앙 생활하는데 고통이 많았습니다. 


기독인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신앙을 방해하고 비아냥거림이 아주 심했습니다. 


마귀 사탄들이 그냥 보고 있지 않고, 환란과 핍박을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사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로 많이 걸리기도 하고, 외세 종교라는 편협된 오해도 많았습니다. 


그러할 때는 오히려 신앙에 야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매 맞는 것은 예사고, 집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때로 직장도 잃었고, 재산상의 피해를 보면서도, 죽어도 믿겠다는 고집과 당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문화적 수준이 높아

지면서, 신앙에 어느 정도의 보호막이 쳐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 되었 습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야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혈통은 여전히 좋습니다. 덩치도 더 커졌습니다. 


울타리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상권세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싸움에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크리스천은 타협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다윗은 감성이 뛰어나지만, 야성을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두 번 실패한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밧세바의 사건 (삼하11:1-27)때 이고, 다음은 노년에 인구 조사(삼하24:1-25) 한 때입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로 여쭙는 다윗이, 두 사건을 두고는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혹독한 채찍을 가하셨습니다. 


안일에 빠지게 되면, 반드시 고난이 다가옵니다. 


아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입니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배부르고 등 따습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다윗의 밧세바 사건때,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고 안일해 있을 때 입니다.


조지 바너가 지적한 것처럼 주전자속의 개구리가 물이 점점 뜨거워 지 는 데도 알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가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병들은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계2:14-22)


우리는 세상에 어둠의 영과 싸워야 할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군인은 군인이 아닙니다. 


적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성에 야성을 키워야 합니다.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벧전5:8)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엡6:18-17) 싸워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멘토(mentor)란 인생의 지혜와 신뢰로 이끌어 주는 조언자, 지도자를 말합니다.


도움을 잘 주는 선배사원을 멘토라고 합니다.


저는 목회가운데 좋은 신앙의 멘토가 있습니다. 


늘 좋은 말씀으로 영적지도를 해 주십니다.


평생 네 가지를 늘 이야기하셨습니다. 


(1) 철저한 사명감을 무장하고 확인하라.


   목회도 사명을 잃으면 노동이라 했습니다.


(2) 철저하게 복음말씀만 전하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함이라.(딤후3:16) 


(3)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4) 설교를 할 때 마지막이라는 종말적 의식을 같고 생명을 걸고 

  설교하라. 고 권면하셨습니다. 


그 스승 목사님이 저의 목회의 멘토 입니다. 


새벽기도 한번 빠지면 너 같은 게 무슨 목회를 하겠느냐며 무섭게 책망할 때는 서운하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저의 신앙과 사명을 불붙여 주신 멘토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좋은 선수가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멘토를 만나면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믿을 때 믿음이 좋은 사람만나면 좋은 신앙을 배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이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주일도 바쁘면 빠지고, 십일조도 적당하게 드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런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좋은 신앙의 멘토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에 좋은 멘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려 볼까 고민하며, 조상들 중에 어떤 왕이 정치를 잘했나를 알아보니, 다윗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윗 왕을 멘토로 삼았습니다.


3절에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고 소개합니다. 


다윗 왕이 걸어간 길을 히스기야도 걸어가려고 힘썼습니다. 


히스기야는 영성과 야성이 강한 다윗을 신앙의 멘토로 삼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산당을 부숴버리고 목상을 찍어내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고, 가는 길을 형통하게 축복 하셨습니다. 


이런 신앙의 야성을 가질 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를 통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는 것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의 야성을 본받아, 우리 신앙의 야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1.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


히스기아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3절)


1)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살았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 는 말씀을 주목하세요.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느냐가 가장 중요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 가는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고, ‘나의 행동’을 보신다는 코람데오의 신앙,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실수가 많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3:16-17)


몸이 성전이요, 마음이 예배라야 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에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세요. 


한결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정직했습니다. 


중심이 바로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2대왕을 뽑는 기준을 보세요. 


삼상16:7에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뽑는 첫 번째 기준을 마음중심에 두셨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가운데, 일곱 번째까지 데려왔으나 내가 찾는 자가 아니라고 거절하셨습니다. 


여덟 번째 다윗을 데려왔을 때, ‘내가 찾는 자가 그니라. 그에게 기름 부어서 왕으로 삼으라.’ 고 하셨습니다.(삼하16:12) 


사실 다윗은 허물도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이 바로 된 것을 보시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정직하게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성경에는 드리나 마나한 예배도 있었습니다.(사1:10-15), 또 드리고도 화를 입은 예배도 있었습니다(말1장). 


오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길 원합니다. 


기도를 드려도 정직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거짓된 기도는 마귀가 듣습니다. 


바리세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이라서 관심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노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이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헌금도 정직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또 하나는 돈주머니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돈은 영성의 척도가 된다.’ 고도 했습니다.


신학자인 헤롤드 피케트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출발점은 바로 십일조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한 십일조를 드리라.(말3:10)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을 줄이려고 하지 말고 많이 드리길 기도하세요. 


우리는 무엇을 드리느냐 보다 드리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직한 예배, 정직한 기도, 정직한 헌금을 드리세요.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2) 정직할 때 신앙의 야성이 회복됩니다. (4절)


정직하게 살면 담대해 집니다. 


떳떳하기 때문에 담대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그 시대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습니다. 


산당을 부수고, 주상을 깨트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 시대에 우상을 제거하는 엄청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이런 용기와 담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면 담대해집니다. 


강한 신앙의 야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 때 세상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반면에 거짓되게 살면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풍산개와 같은 신앙의 야성이 죽어버리고, 힘없는 세퍼트 처럼 되어 버립니다. 


여호와 앞에 정직한 히스기야의 야성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2.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5절)


1)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 과거에도 미래에도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 없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히스기아는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은 먼저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히스기야는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과 연합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모세에게 명령했던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6절)


여러분도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도 하나님과 연합하고, 사업을 해도, 진로를 결정할 때도, 정치를 할 때도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나 혼자는 약 합니다, 넘어지고 찢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힘의 근원이요. 하나님께 축복받는 비결 입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 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히스기야 에게 두 가지를 축복하셨습니다.(7절)


1)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 보다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가 더 중요합니다.


2)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


형통이란 막힘이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세 가지가 형통해야 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은혜가 막히지 않고, 기도가 응답되며, 축복의 통로가 열려야 합니다. 


(2) 또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도록 하나님이 형통케 하십니다. 


(3) 또 하나는 물질관계도 형통해야 합니다. 


인간은 물질을 떠나서 살수 없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이나 진로가 형통해야 합니다. 


더 확실한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야성이 살아납니다.


예수 이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할 때 야성이 살아납니다.


바로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 하는 히스기야의 앞날에 이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처럼 신앙의 야성을 키우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히스기야를 축복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반드시 축복해 주실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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