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6장 1-3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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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호6:1-3
제 목: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메어 주실 것임이라.(호6:1) Come, and let us return unto the LORD : for he hath tom, and he will heal us; he hath smitten, and he will bind us up.(Hos6:1)
자식을 키우면서 때로는 자식이 잘못하고 빗나갈 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벌을 주고 매를 댈 때가 있습니다. (한국정서)
미국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자식 구타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사춘기 아들이 너무 말을 듣지 않아 미국에서 때리면 추방될까봐 때리지 못하고, 한국에 할머니 집에 가자고 하고선 공항에 내리자마자 죽지 않을 만큼 때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매를 맞은 자녀보다 매를 든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프답니다.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굉장히 매를 댄 적이 있습니다.
게임에 빠져서, 거짓말을 해서 다리가 피멍이 들도록 때렸습니다.
때리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아이 방을 가 보았더니 자다가 흐느껴 우는 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매를 맞은 자식보다 때린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픈 것을 이때 알았습니다.
오늘 말씀이 매를 때리시고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북 왕국 말기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죄악으로 빠져갈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아파하는 하나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음탕한 호세아의 부인 고멜을 들어 이야기합니다.
음탕한 고멜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 고멜이 외도해서 임신을 하고 돌아올 때, 몹시 분노하면서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오히려 호세아에게 그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네 마음의 고통과 배신과 괴로운 심정이, 바로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 사를 통해서 두 가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입니다.
또 하나는, 회복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멜처럼 이 백성이 음란하고 수없이 범죄 하였으나, ‘버릴 수 없는 내 백성’ 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자식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한 선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무서운 고난을 주실지라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생명을 사셨기 때문에, 잘못할 때 채찍을 내리실지언정,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은 성도가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1.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회복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할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1절)
찢었으나 도로 낫게 할 것이요....(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로 나라도 찢어졌고, 신앙도 다 찢어졌습니다.
가정도 찢어지고, 마음들도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이것이 우연히 아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었다고 했습니다.
찢는다는 말씀은? ‘잡아채다.’ 라는 뜻입니다.
누가 찢으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월의 흐름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선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늘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주변의 강대국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래도 돌이키지 않자, 그들을 치셨다고 했습니다.
자기 백성을 찢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술하는 것과 같습니다.
찢는다는 말이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이 찢으시면 하루아침에 다 찢어집니다.
건강도 찢어지고, 사업 찢어지고, 가정도 나라도 다 찢어집니다.
왜 찢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죄악과 방종으로 빠질 때 찢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찢으신 것은 누구도 낫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찢어 지셨습니까?
마음과 육체가 찢어졌습니까?
삶이 찢어졌습니까? 생업이 찢어 졌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와 치료받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사회나 우리민족도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치셨으나 회개하면 다시 싸매어 주십니다.
당시 백성들이 범죄 할 때 불레셋, 앗수르, 바벨론 등을 통해 채찍의 몽둥이로 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싸매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시23:4에...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와 막대기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지팡이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꾸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곁길로 가다가 맹수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 양을 목자는 다리를 부러트린답니다.
다리가 부러진 양을 붕대로 감아서 날 때까지 메고 다닌답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다 낳고 나면 이 양은 목자 곁을 떠나지 않고 잘 따라 다닌답니다.
지팡이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막대기 사랑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렘29:11)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찢어지고 상처 났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내가 치료하고
다시 싸매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호세아 당시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1) 영적으로 예배가 무너졌습니다.
(2) 도덕적으로 음행에 빠진 시대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타락을 해도 성도는 사는 방법이 달라야합니다.
호4:15에 북이스라엘이 행음한다 할지라도, 유다야! 너만이라도 죄를 짖지 말라.
당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이스라엘은 우상에 섬기며 반복된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 범죄 한다할지라도, “유다야, 너희만이라도 범죄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호4:15 하)
세상이 다 타락한다 할지라도 너 만이라도 죄를 짓지 말라.
다른 사람이 타락한다 할지라도, 너 혼자 만이라도 신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장로도 권사도 그런데, 나 같은 집사야 어떠하랴? 아닙니다.
목사까지 다 타락한다 할지라도 나만큼은 믿음을 지키리라.
이것이 나실인의 삶입니다.
신앙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세상이 다 타락을 해도 나만은 성경대로 살리라고 할 때, 그 한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 신앙을 지키는 믿음의 나실인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2.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살려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절)
이틀 후에... 셋째 날 이란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짧은 시간에 일으키십니다.
잘못 살아서 매를 맞았을 찌라도, 병들었을지라도,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짧은 시간에 살려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면 삽니다.
사업도, 건강도, 가정도, 나라도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이 살려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돌아갈 수 있습니까?
호4:15 하 반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길갈로 가지 말라.
본래 길갈은 이스라엘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을 음란하고 타락한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타락한 길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길갈로 가지 말라는 말씀은
즉, 세상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세상)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딤후4:10)
또한,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는 말씀은?
‘벧아웬은 허무한 집’ 이란 뜻입니다. (호4:15 하)
허무(虛無)는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공허(空虛) 함입니다.
왜 허무합니까? 하나님을 떠난 곳이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 떠나면 인생이 벧아웬이 됩니다.
허무한 집이 됩니다. (성령의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삶이 허무해 집니다.
예수가 없는 세상은 공허 허무 흑암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창1:2)
지금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근 5년 사이 35%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치료비용이 1년에 1조 6천억이랍니다.
자살이 늘어나고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허무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랍니다.
우리들은 나실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허무한 벧아웬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3.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3절)
신앙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배운 것을 안다고 하는 것 아닙니다.
간증이 있는 신앙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1)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3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드리지 않고,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찢으셨고, 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엡1:17) 그렇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지식이나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서부터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 때,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축복하리라.(3절하)
비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이른 비는 12-2월 사이에 내리는 비입니다.
파종하는데 꼭 필요한 비를 말합니다.
늦은 비는 3-4월에 내립니다.
늦은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힘써 알 때,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여러분의 삶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삽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1)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2) 찢어졌지만 치료해 주십니다.
(3) 넘어진 우리를 일으켜주십니다.
(4)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이 다 길갈로 간다 할지라도 나만큼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리라고 고백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따르면 삽니다.
이 음성을 듣고 일어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