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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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30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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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9)-기적


행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제가 1990년대 초 처음 선교사역을 시작한 곳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여러 중소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선교에 대한 아무 정보도 전략도 없었습니다. 당시 종합상사 주재원 출신의 ‘무작정 세일즈 전략’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것이 선교학에서 ‘패러슛(낙하산) 전략’이라는 사실입니다.


시베리아 도시들은 주로 ‘-스크’라는 이름이 많았는데 이는 몽고어에서 유래된 ‘도시’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노보시비르스크, 베르스크, 톰스크, 옴스크, 프로콥피옵스크, 우스찌카메노고르스크, 등 수많은 ‘스크’입니다.


그곳들은 주로 탄광촌이 많아 외부와의 접촉이 적은 곳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여행허가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외국인의 방문은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그 중 한 조그만 도시에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 뉴욕에서 온 목사가 전도 집회를 한다는 것이 로컬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로컬 신문사의 주필이 새로 예수를 믿은 분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간증을 신문에 게재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가 붕궤된 러시아에는 이데올로기 공동현상(vacuum)이 있어서 기독교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집회가 열렸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렵고 떨림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안수를 받겠다고 단상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사람들의 믿음은 ‘손을 내밀어 병이 낫게 되는 이적과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기적을 눈으로 목격해야만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겠다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신앙이었습니다. 그 신앙이 붕궤되고 그 빈 공간에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 의심많은 그들은 눈으로 보고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저는 ‘믿음 세미나’를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가르쳤기에 안수는 필수적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감이나 감동이 생기질 않습니다.


마치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문득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보다 내가 믿음이 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솔직히 저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 없는 저를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수를 했습니다. 그 날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모르게 안수만 하면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 그 조그만 지방 로컬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관심이 나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결과, 안수의 결과에 대해서 지나친 관심을 갖고, 심지어는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어 오히려 안수를 못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에 대한 관심, 내가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 어떻게든 나를 지켜야 한다는 집착’이 너무 컸습니다. 나에 대한 ’관심‘에 내가 갇혀있어 믿음의 역사를 향해 한발짝도 제대로 떼지를 못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내일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내 앞 길을 챙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인데 실제로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이 그 때 그 ’안수 사건‘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나‘라는 자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개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나‘라는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고 평탄케 되는 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 어떤 기적도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영역에 마음을 열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용기가 우리의 믿음을 완성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에 담겨 있는 사도들의 믿음이고 염원입니다.


과감히 기적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기적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자아를 죽이는 참 기적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게 가장 완전한 기적입니다.


오 주여

오눌도 우리의 손을 내밀고

간구하며 표적과 기사를 구하게 하소서

병 낫기를 구하게 하소서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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