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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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편 2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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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6-죄의식과 죄책감


시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우리는 왜 우울해지는 걸까? 성경은 분명 항상 기뻐하라 명하였는데, 왜 우리에겐 때로 ‘싸~한 마음’과 함께 두려움과 우울함이 올까? 작년에 한국에 나가 오랫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강아, 넌 늘 기쁘냐?” 이 질문은 우리 절친 중 한명이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나눈 후, 목사인 저에게 던진 질문이라 심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늘 기쁠 수 없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지..” 진실을 말했지만 질문한 친구에겐 ‘막연한(?)’ 답이었던 모양입니다. “신앙문제란 말인가..” 그 친구는 자문하듯 말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지옥에는 네가지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지옥불의 고통이고, 둘째는 자신 때문에 지옥에 온 사람들의 미움과 괴롭힘 때문이고, 셋째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고, 넷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특별히 이 고통은 양심의 가책으로 오는 것으로 ‘우울함과 두려움’입니다. 다윗은 오늘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옵시고, 징계하지 마옵소서…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간절함에 여호와의 이름을 연속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한 답을 그의 서신에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고통을 인정하고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미 구원은 시작된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후7:10).


사람들은 ‘죄의식’과 ‘죄책감’을 같은 의미로 봅니다. 그러나 죄의식과 죄책감은 다릅니다. 죄의식(Sin Consciousness)는 성령께서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죄의식은 주님께서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실 때 갖게 되는 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죄의식은 자신이 지은 죄의 값이 하나님의 목숨값과 같음을 깨닫는 은혜입니다.


반면에 죄책감(Guilt)은 '내가 죄를 지었다'는 특정 행위에 대한 불쾌한 감정입니다. 회개나 보상으로 해소될 수 있지만, 과도하면 병리적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자기 합리화로 갑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자책하며 자신을 괴롭힙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죄책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핑계를 대고 판단함으로써 죄책감을 합리화하고 소멸하려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다 ‘죄책감’에서 나오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두려워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며 죄책감을 소멸시키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씀한 전자의 근심은 죄의식으로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지만, 후자는 죄책감으로 자신이 그 죄를 담당하려고 하나 그 끝은 사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특히 인터넷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인터넷 해킹과 스캠입니다. 이에 따른 미국내 인터넷 사기 피해액이 연간 5억불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을 대상으로 이런 사기 행각을 벌이는 자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몇개 나라 출신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오랜 식민지 생활로 착취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에 그 보복행위로 사기를 죄의식 없이 행한다고 합니다.


철저한 자기합리화입니다.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한 자기 합리화는 그 죄의 굴레에 가둘 뿐입니다. 죄책감은 벗어내야할 생각이고, 죄의식은 간직해야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두 단어와 치열한 영적 전투를 치루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말로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Brother, how is your soul today?(형제여, 오늘 형제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그 질문 후, 후속 질문이 따랐습니다.


Are you going on perfection? (거룩한 온전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웨슬리 목사님의 질문은 바로 ‘영혼의 연금술’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시대에 맞게 조금 다르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Means of grace(은혜의 수단)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 16)는 말씀에서 ‘거룩하라’는 명령을 진지하게 삶가운데 실현해 나아가는 것에 촛점을 둔 것입니다.


거룩의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죄의식과 죄책감의 문제입니다. 죄책감의 해결 없이는 거룩함도 담대함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누구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서면 누구나 부끄럽지만, 죄가 용서받았다는 믿음으로 나설 수 있게 되는 용기를 우리는 ‘의로움’이라 부릅니다. 이때 죄의 심각성을 깊이 깨달아 그 ‘죄의식’으로 더는 그런 죄에 빠지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되며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오 주여

오늘도 부끄럽지만 주 앞에

주의 보혈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옵니다

우리의 죄와 죄책감을 씻고 덮어주소서

주님 예비하신 흰 가운을 입고

정결한 신부가 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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