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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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1-35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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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 그리스도인임을 티가 나게 하라

본문 : 마 18:21-35


성도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자라가야할 것이 있고, 점점 더 줄여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넌 왜 그렇게 욕심이 많니 ”라는 말을 듣는다면 줄여야 합니다. ”넌 어떻게 너 밖에 모르냐”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 줄여야 합니다. “넌 어떻게 툭하면 염려하냐 좀 자신감을 가져봐”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고쳐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스인의 향기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밖에 모르는 외롭게 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사람을 만나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유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욕심, 이기심, 자기 중심주의, 의심, 염려로 가득찬 모습만 보인다면 누가 예수를 믿고 싶어 할까요?


누구를 만나든지 좋은 호감을 주고, 좋은 인상을 줄려면 늘려야 합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타심 입니다. 배려 입니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이해심 입니다. 그리고 용서 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일상의 삶은 계속해서 줄어야 할 것은 매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늘려야 할 것은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는 티를 내야 합니다. 그럴려면 자신의 내적 상태가 굉장히 중요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보여주어야 할 티 중에 하나가 바로 용서 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용서 할 때도 있었고, 용서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용서 할때는 좀 뻣뻣한 면도 있습니다. 내가 널 용서해 준다는 말 속에는 은근히 자신을 좀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받아야 할 때는 정말 간절 합니다. 용서 받기 전까지는 굉장히 불안 합니다. 용서해 줄까, 용서를 안해주면 어떻하지.. 별의별 생각이 자신을 괴롭힘니다.


그런 안절부절한 마음속에서 용서를 받았다면 기뻐 날뛸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을 털끝하나 남겨두지 않고 용서해 주었다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기쁨도 잠시뿐.. 또 반복된 죄를 짓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습니다 . 그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가슴을 찌릅니다. ”도대체 몇번째 용서를 받는 거야”


셀 수 없이 용서 받았다면 이젠 또 다시 반복된 삶에서 털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용서를 해 준 사람에게 대한 예의 입니다.


성도는 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서 용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먼저 용서를 받은 자 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 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습니다.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그런데 탕감을 받은 자는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는 용서 받기를 원하면서 타인에게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요?


내가 이미 벌써 용서를 받은 자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조취를 취할 수 있을까요? 결코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결코 이걸 용서해야 해 , 말아야 해..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미 내가 엄청난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일흔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해 주었다고 말씀 합니다. 우리는 늘 용서해야 하는 숫자와 용서 받아야 할 때가 같아야 합니다. 용서할때는 적고 용서 받아야 할 때는 많아야 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첫째, 일상 속에서 서로 간에 감정 상하게 하는 죄

마 18:21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이라도 용서 하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기가 가장 힘든 죄 .. 가 있다면..

감정을 상하게 하는 죄 입니다.


용서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감정을 상하게 한 일입니다. 다른 것 보다 감정에 의한 관계에 금이 가게 되면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간에는 다 감정이 있어요. 그것이 상처를 줍니다. 아픔을 줍니다 .이런 것들이 가족 간에나, 이웃 간에, 성도 간에 용서가 너무 어렵습니다.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입에서 욕이 막 나옵니다. 이런 모습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벌어집니다. 가족 간에 발생 합니다. 친구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단 교회 안에서도 상처를 서로 줌으로써 용서는  벽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 놈이, 그 자식이 나를 자존심 상하게 했다. 무시했다.. 업신여겼다. 격한 감정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지 못하셨다면 나는 죽어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심으로 나를 살려 주셨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여쭤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몇번이나 용서해야 할까요? 세상은 당한 만큼 갚아야 한다는 복수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복수 대신에

용서하라 고 하십니다 . 원수를 반드시 앙갚음 하기 보다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당한 만큼 갚겠다는 복수는 더 큰 범죄와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줄 뿐 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기독교적인 윤리를 제시 합니다 .용서를 즐거워 하라는 겁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타일러라. 그리고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하루 일곱 번 너에게 죄를 짓고 일곱번 너에게 와서 뉘우친다고 하면 그를 용서하여라』 (눅 17: 3~)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흔번씩 일곱번이나 용서하라는 의미는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 입니다.


이와 같이 왜 우리가 무한정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한정 용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골3:13절에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적 굴레에서 스스로를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용서하지 못하면 내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독소들이 내면을

망가트리게 할 뿐입니다.


둘째, 이제부터는 ‘입으로만 용서가 아닌 마음으로 용서하라.

마 18:35 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네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면 마귀는 기억나게 합니다. 당시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앙갚음 하고 싶어 합니다. 여전히 분노에 자신이 질질 끌려 다닙니다.


진리가 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진정한 용서를 하라. 용서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행동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마지막,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인생은 작은 잘못을 용서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로 가득합니다.


매일의 잘못을 용서하는 연습을 하면 평생의 습관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무례하게 대할 때, 자신에게 얼토 당토한 일로 화를 낼 때, 자신에게 칼을 들이 될때에 분노에 휩싸이기 보다는 용서하는 것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티를 내는 겁니다.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로 반응하는 겁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큰 빚을 진 종을 탕감해 주셨고 용서 받은 기쁨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자신이 용서 받은 기쁨을 나눠 주는 일이 바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연민입니다.누군가를 향한 파괴적인 행동은 자신과 이웃에게 더 힘들게 할 뿐 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파괴적인 에너지를 버리면 용서의 자유가 찾아옵니다. 용서할 때에 예상치 못한 더 큰 무언가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겁니다. 선을 악으로 갚으라.악 을 선으로 갚은다는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악을 선으로 갚는 용서를 하고 나면 기쁨이 있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우리 삶에 용서의 타이밍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렬하게 용서하는 마음을 주신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셉이 형들에게 보여준 용서 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용서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티를 냈던 것이 욕심, 이기심, 자기 밖에 모르는 모습이었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티를 내면서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의 향기로 티 를 내는 자 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티는 끊임없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먼저 녹아지는 소금, 스스로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용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그 바톤을 이어받는 본인이 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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