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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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 3-11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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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의 성품에 참예하자!(8)_사랑

본문 : 벧후 1:3-11

말씀 : 민경수 목사님


이제 8번째 마지막 신적 성품은 사랑입니다. 본문 7절 후반 “...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왜 신적 성품을 하나씩 더해가며 사랑으로 마무리 지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성품들 중 최고의 성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1서 4:8, 16).

“사랑”(아가페)은 신약에 116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7번 째 신적 성품인 “형제 우애, 필라델피아”보다 더 강한 뜻을 가집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신 사랑! 즉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신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10). 사랑은 바울이 표현한 바와 같이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도 가장 으뜸입니다 (고전 13:13). 뿐만 아니라 사랑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 등의 덕목들을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골 3:14). 예수님은 우리 신앙인에게 이러한 아가페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 5:44). 또한 우리에게 용서를 비는 형제의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18:22).


구체적으로 아가페 사랑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사랑[아가페]은 오래 참고 사랑[아가페]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아가페]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고귀한 신적 성품인 아가페 사랑에 참예하며 누구에게 시행할 수 있게 될까요? (이 질문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대상에게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음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1.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대상으로 할 때만 아가페 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세상이 사랑의 대상이 될 때는 신적 성품인 아가페 사랑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경우는 “아가페”사랑이 아니라 인간적인 “필로스, philos”사랑입니다. 희생적이며 숭고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휠라우토스] 돈을 사랑하며[휠랄귀로스]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2).


나아가 세상이나 세상 것들을 사랑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아가페]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1서 2:15-16).


2.둘째, 대상이 먼저는 하나님이 되고, 그 다음에야 이웃이 대상이 되어야 아가페 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율법사에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7-40).

왜 우선순위가 중요할까요? 이유는 아가페 사랑의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아가페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그래야 그 다음으로 이웃을 진정으로 아가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 구원을 위해 대신 죽으실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도 처절한 기도로 말미암아 친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우리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섬김을 통해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과 제자들 일행에게 제일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릴려고 마음이 들떠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마르다는 좋은 뜻으로 그렇게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주님을 잘 대접하려는 지나친 열심 바로 그것 때문에 그녀는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기 동생에 대하여 화가 났습니다. 또 주님에게 대해서도 “가서 일을 도우라”고 마리아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르다는 영적으로 은혜 받는 것을 소홀히 여기다가 심령이 괴로운 지경에 빠져 불평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엔 주님으로부터 책망까지 받고 말았습니다 (눅 10:38-42).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발 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르다처럼 봉사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1) 첫째 이유는, 마리아같은 마르다가 될 때 우리는 무슨 일을 하여도 마음이 분주하지 않아 하나님과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마음이 분주한지라 ...” was distracted (40절).

분주하다는 말은 “마음이 나뉘다”란 의미인데,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늘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여도 마음이 나뉘이지 아니 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벗어난 신앙생활은 나뉜 마음이 됩니다. 결국엔 극단적 형태의 신앙으로 흐르거나, 혹은 메마르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busyness 바쁨 또는 분주병은 (business 사업이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를 어렵게 합니다. 죄의 원인을 찾아 회개하거나 자신 안에 교묘히 숨겨진 증오, 교만, 거짓 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너무 분주해서는 아니됩니다. 생활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관계를 쌓아가며 주위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한다 하면서 일들로 너무 분주합니다. 결과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며 사랑받는 시간이 줄어집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게 됩니다. 이같은 상황은 아이러니입니다. 심지어 비극이기까지도 합니다. 


2) 둘째 이유는, 마리아같은 마르다가 될 때 많은 일에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네[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worried and upset (41절).

하나님을 먼저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 사랑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한테 구하지 않고 스스로 염려한다고 키 일 인치를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수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 늘릴 수 있습니까?(마 6:27) 사역하면서 염려함으로 사역을 더욱 잘할 수 있나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받을 경우에야, 우리는 풍랑중에도 잠잠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3) 마지막 이유로, 마리아같은 마르다가 될 때, 자기 의를 행함으로 인해 하늘 아버지에게 상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will not be taken away (42절).

자기 열심이나 자기성깔로 일하지 않게 됩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위에 불쾌해 하거나 참견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역을 다 마친 후에도 자기 자랑이나,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음으로 된 일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열심, 즉 성령의 열심으로 일하였기에 하나님에게 영광이요,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눠주었다는 사실로 큰 만족과 영적 성장이 있게 됩니다.  


오늘날 내가 왜 신앙생활이 짜증이 납니까? 왜 의욕과 열정이 식어져 갑니까? 왜 심령이 메말라 가나요? 심지어 왜 탈진, 번아웃되나요? 

원인은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말씀과 기도로 먼저 찾지 않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공급되어지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부족해서입니다.


나의 더럽고 추악한 모든 죄를 깨끗히 용서해준 예수님의 한량없는 은혜!!! 

하나님의 극진하신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감격이 세상적인 일상생활과 분주한 사역에 치우침으로 어느덧 희미하게 잊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특히 아가페 사랑이] 없는 자는 ...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9절).


예화) 목회학 박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했던 텍사스 소재 중형교회의 젊은 백인목사의 눈물섞인 고백: “나와 사모는 사역기계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먼저 충만해져 목회를 했어야 하는데, 사역에 너무 바빠 기계적으로 교인들을 대하였음을 회개했습니다. 아가페 사랑없이 시간과 할 일에 쫓겨 대충대충 때웠음을 통회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찾으십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가장 지고한 신의 성품인 아가페 사랑을 풍성하게 공급받으십시다. 

그 다음 다시금 부음받는 아가페 사랑으로 이웃을 무조건적으로 아가페 사랑하게 되시는 축복을 우리 모두 다시금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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