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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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7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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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29)- ‘말귀‘


행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말귀'는 순수한 우리 말로, ’말을 알아듣는 능력의 정도‘ 또는 ’알아 듣는 귀‘를 의미합니다. 말귀는 재미있게도 명암을 나타내는 ‘밝다, 어둡다'로 그 이해의 정도를 표현합니다.


말귀가 어두운 이유는 신체적으로는 청력 저하 때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주로 집중력 부족이나 듣는 이의 ‘confirmation bias(확증 편향)’ 또는 화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 때문입니다.


’말귀‘에 얽힌 옛날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며느리‘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나라 임금님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며느리를 간택해서 혼인을 시킬 때가 되었습니다.


태자비는 앞으로 왕후가 될 사람이기에 가장 슬기로운 처녀를 찾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임금님이 며느리를 뽑는다는 광고가 나가자 아름다운 처녀 수백 명이 궁전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임금님은 처녀들에게 시험문제를 냈습니다. ”너희들에게 쌀 한 되씩을 주겠다. 이것으로 한 달 동안을 먹다가 다시 모이도록 하라.” 처녀들은 큰 걱정이었습니다.


쌀 한 되는 사흘이면 다 먹어 버릴만한 적은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처녀는 멀겋게 쌀 물을 끓여서 마시기도 하고, 어떤 처녀는 처음부터 굶었습니다.


또 아예 처음부터 포기해버리는 처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처녀들 중에 달래라는 어여쁜 소녀가 있었습니다. 달래는 임금님의 쌀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연구를 했습니다.


‘훌륭한 임금님께서 이런 엉터리 시험문제를 내실 리가 없다. 임금님의 생각이 무엇일까?’ 아침이 되어서야 달래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릎을 ‘탁’ 치고 방실 웃었습니다.


달래는 곧 부엌에 가서 그 쌀 한 되를 가지고 몽땅 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쁜 옷을 차려입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임금의 며느릿감쯤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시장에서 떡을 파니까 잘 팔렸습니다.


특히 동네 총각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떡을 사 먹는 등,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달래는 떡 판 돈을 가지고 다시 쌀을 사서 떡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떡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달래는 떡 장사에 아주 재미를 붙였습니다. 다른 처녀들처럼 굶는 것이 아니라 장사해서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것도 실컷 사 먹다 보니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또 떡판을 이고 햇볕에 다니며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얼굴도 알맞게 타서 건강미가 두드러져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고 마감날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궁궐로 들어오는 처녀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인력거에 탔거나 아버지 등에 업혀 오는 처녀들은 모두 비썩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달래가 들어왔습니다. 달래는 힘차게 두 팔을 흔들며 들어왔습니다. 쌀가마니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주신 쌀 한 되로 장사를 하여 제가 잘 먹고 남은 것이 한 달구지나 되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임금님은 달래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선언하였습니다. “달래는 받은 것을 앉아서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불릴 줄 아는 참으로 지혜로운 규수구나. 이 나라의 왕후는 일하기를 즐거워하고 지혜가 있는 달래가 되어 마땅하다.”


‘말귀’는 ‘상대방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총기’입니다.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는 못 알아듣기 보다는 알아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총독 서기오 바울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그의 듣고자 하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복음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전파됩니다. ‘말귀가 밝은’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오늘 스토리에 그 반대입장을 보인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인 엘루마가 등장합니다.


그는 결국 사도 바울의 저주를 받아 눈까지 멀어버리고 맙니다. Confirmation bias(확증 성향)의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기도 전에 자기 입장이 정해진 상태입니다.


확증 성향은 이미 마음이 닫혀있어 상대의 말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로 실제로는 거부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8:18).


우리가 말씀 묵상을 할 때 말씀의 뜻을 깨달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아무리 귀에 가득히 차도 귀가 뚫리지 않으면 그 말씀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말귀가 열린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때 귀가 비로소 뚫리기 시작합니다. 말씀은 주님이 피를 흘리는 순종을 통해 오기에 Blood Covenant(피의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받으면서 피를 흘리는 순종을 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기록된 말씀’으로 남게 됩니다. 순종은 이 말씀을 ‘들려진 말씀’으로 변하게 합니다.


오 주여

우리의 말귀를 밝게 하소서

오늘도 들려진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종’이 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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