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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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1-9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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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사53:1-9

제   목: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upon him;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Isa53:5)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마다 주의 나라가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소개했습니다.(요1:29)


구약시대에 양을 제물로 바침으로 사람의 죄를 속죄 받았는데,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과 죽으심을 상세하게 예언했습니다.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증거하셨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가장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수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성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고난과 대속함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세상 속에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경은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 고난을 온전히 체험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이 이사야 53장의 핵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의도 곧 구속사(救贖史) 가 이루어지고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에게 가로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고 외치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가로 막힌 담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외침이셨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천국 가는 길이 열리고 소통함이 이루어집니다. 


오직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떠나서 찾아오는 복은 완전한 형통함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떠나서 찾아오는 존귀함은, 썩어질 면류관이라는 사실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했으면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은,


1.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1-2)


1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


이는 메시아에 대해서 전했건만 믿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팔, 곧 하나님의 구원이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예언된 말씀이 분명하게 이루어졌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음에도 인간들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을 깨달을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복 받은 자들 입니다.


그는 연한 순 같이 성장했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흠모할 만한 아무모습이 없다고 했습니다.(2절)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 이란 작은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나약한 집안에서 조용하게 성장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호감을 줄 만한 모습도 없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가난하여 옷도 남루했고 체격도 못 먹고 자라서 마른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그를 메시아로 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인간들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평가하실 때 절대로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모보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또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큰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3절)


만약에 예수가 제사장 집 자손으로나 왕족의 자제로 태어났다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멸시 천대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대와 멸시속에서 간고를 많이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는다.’(3절) 는 것은 가난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겪을 것 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자란 나사렛에서도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자(3절) 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리웠다는 행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문둥병 환자에게나 보이던 행동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문둥병자 보듯이 얼굴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자들도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아니 했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솔직히 예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십니까?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 


예수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우리들도 예수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나의 하나뿐인 생명보다도 더 귀한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은,


2. 우리의 모든 고통을 대신 지고 가십니다. 


 왜 이런 멸시와 천대를 당 하십니까? (4-6절)


1) 예수는 우리의 질고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질고(疾苦)는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병은 육체의 질병이 있는가 하면, 영적 질병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병을 다 치료함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질병은 크고 영적 질병은 소홀하게 다루는데, 오히려 육체의 질병보다 영적 질병이 더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육체의 질병은 약을 먹고 병원에서 치료하면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영적 질병은 병원에서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병도 영적인 병도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병 때문에 죽으신 예수를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사53:4) 라고 생각한답니다. 


육체의 병이든 영적인 병이든 모두 예수께 치료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6)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나의 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어떤 병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가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시고 창에 찔리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

  이었습니다.(5절)


인간은 허물투성인 존재입니다. 


허물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간들은 상대방의 허물을 가지고 놀리고 비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그런 허물을 없애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는 허물이 있었고, 사도 요한에게도 자기만 살겠다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허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는 무지의 허물이 있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의 허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모든 자들의 허물을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허물이 있으십니까? 


그 허물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예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담대히 예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나의 허물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모두 덮어 버렸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담대하게 예수 앞에 나오셔서 나의 허물이었던 죄를 고백하시면 예수의 피가 나의 허물을 씻어주시고 영적인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예수의 상함으로 우리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습니다.(5절)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셨습니다. 


빌라도 뜰에서 채찍에 맞으셨는데 당시에 채찍 끝에는 쇠갈고리가 

달려있어서 맞으면 살점이 뜯겨져 나왔다고 합니다.


지칠 대로 지친 예수는 수 없이 쓰러지셨고, 결국에는 구경 나온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지게 하였는데 그 사람이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상할 대로 상하셨습니다. 


머리에서도 굵은 가시로 만든 가시관 때문에 피가 흐르고 계셨고, 등에는 채찍으로 맞아 찢겨진 살을 통해 피가 흐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상한 몸보다 더욱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섭고 큰 죄인지도 모르고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일곱 마디 중 첫 번째로 외치는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몸과 마음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상함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구속

(救贖) 함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마음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죄 때문에 당하신 예수님의 상하신 몸과 마음을 

생각하시면서 위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것들로 내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너무나도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속에서 인간들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 모든 징계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면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세상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참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5) 예수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인간에게 최고 무서운 것은 병입니다. 


병에 대한 자유 함을 가지고 산다면, 가장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암 병 발생율이 세계 1위 국가입니다. 


그 중에서 위암, 간암, 유방암은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179명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육신의 질병도 무섭지만, 더욱 무서운 것이 악한 영들에게 붙잡혀 살아가는 영적질병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질병은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고 내가 느낄 수 있지만, 영적 질병은 내가 느끼지 못한다는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오늘날 육신의 질병보다 영적 질병에 걸린 자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육신이 병들면 우리는 병원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할 병들이 오늘날 현대사회에 얼마나 많습니까? 


병원에서조차 병명을 모르는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께 오셔서 고침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는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께 나와야 합니다.


 영적인 질병 즉, 악한 원수 마귀에게 걸린 병도 예수님이 피 묻은 손으로 안수 받으면 악한 귀신들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가 진실로 나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당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을 때,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에게 안수하실 때 먼저 질문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요9:35)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나의육적, 영적치료자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을 찢으시고, 온 몸에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사실을 믿으십니까? 


진실로 믿으신다면 어떤 병중에서라도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눅18:38)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낫겠나이다.’(렘17:14, 마8:8)


진실로 고백하는 자들이 될 때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각기 제멋대로 세상 속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악을 예수께 담당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6절)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난과 죽으심을 깨달았다면 예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오면 그 허물, 그 죄악, 그 아픔, 그 고통을 세상이 주지 못한 평강을 주시고 치료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여 읽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어둠 속에서, 죄악 속에서 더 이상 고통당하지 말고, 병 속에서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예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은,

3.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7)  


이사야 선지자는 약 700년 후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모습을 보고 기록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와 천대와 멸시와 핍박을 받으실 것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처럼 

그 고난을 감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너무나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거짓 것들의 심문 앞에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했습니다.


거짓된 세력 앞에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도 않으셨고, 변명도 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거짓된 세력 앞에 저항하지도 않으셨고, 악한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의 온유함을 지키셨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욕을 하고 비웃고 비방한다 할지라도 같이 더러운 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분통이 나지만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잠24:1)


예수님을 비웃고 비방하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였던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A.D 70년에 로마에 멸망하여 2천년 동안 나라가 없이 떠도는 방랑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거짓세력들은 망하였지만 예수님은 왕성케 되리라는 말씀이 10-12절 까지 기록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완성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이 땅에 진정한 예수의 몸 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마음놓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날은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며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소리치셨습니다.


이러한 승리는 예수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와도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싸움에서 지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마다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절대로 양보는 없습니다. 


반드시 원수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반드시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


예수님이 누구를 위하여 이런 고난과 수모와 천대와 멸시를 당하셨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으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의도를 모르고서는 절대로 예수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십자가의 색깔이 변색되어져 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 하셨습니다.(고전2:2)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갈6:14) 


오직 예수그리스도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시길 축복합니다.


영원한 우리의 자랑이며, 십자가 승리임을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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